
안경을 사러 갔다가 미술관을 만났다
여름을 맞아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성수동을 찾았다. 다양한 아이웨어 스토어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매장을 방문하며 눈길을 사로 잡은 것은 실험적인 디자인의 안경이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웅장하게 서 있는 조형물, 매장 깊숙한 곳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설치물들이었다. 안경을 구매하러 간 발걸음은 어느새 거대한 미술관을 둘러보는 발걸음이 되어 있었다.사실 이러한 아이웨어 브랜드 운영의 정점에는 젠틀몬스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13년, 서울 논현동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선보였다. 주택을 개조한 매장 마당에 거대한 뱃머리가 벽을 거칠게 뚫고 들어가는 파격적인 형태의 전시였다. 그들의 실험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 홍대에서 진행한 ‘퀀텀 프로젝트’를 통해 무려 25일마다 매장 전체를 완전히 새로운 예술적 시도로 리뉴얼하는 행보를 지속했다. 비용이 넉넉하지 않아 임대료와 운영비 걱정을 하면서도 지켜온 확고한 브랜드 철학이자 방향성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헤리티지는 2025년 완공된 사옥 ‘하우스 노웨어 서울(HAUS NOWHERE SEOUL)’에서 선명하게 구현된다. 사옥 자체를 하나의 독창적인 조각 작품처럼 구성해 대중의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물론, 내부 층마다 대형 설치작품을 배치해 상업 매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뮤지엄으로 정의될 만한 공간을 구현해냈다. 나아가 사옥 앞 빌딩을 임대해 철거한 뒤 브랜드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며 그들의 세계관을 건물 안이 아닌 도시의 풍경까지 확장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딩 방식이 아이웨어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급 호텔은 왜 가장 좋은 자리에 서점을 두었을까

성수동에서 산 안경을 챙겨 이른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고향인 부산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기장의 푸른 바다를 마주한 호텔 ‘아난티 앳 부산 코브’였다. 넓은 객실과 고품격 서비스로 유명한 이곳으로 온 가족이 호캉스를 온 것이다.
그곳에서 필자의 이목을 강렬하게 집중시킨 것은 호텔의 심장부인 1층에 자리 잡은 ‘이터널저니’라는 대형 서점이었다. 대개 호텔의 서점이라 하면 구색 맞추기용으로 한편에 작게 마련해두기도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1층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면적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웬만한 도심의 대형서점을 압도하는 웅장하고 깊이 있는 공간감을 뿜어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은은한 조명, 기분 좋은 향기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이 방문객을 압도했다.
서가에 꽂힌 책들 옆에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겨 고풍스러운 아우라를 풍겼고, 책과 맥락이 연결된 잡화들이 곳곳에 정교하게 큐레이션되어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방문객들은 서점 한쪽에서 커피를 즐기며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었다. 말 그대로 호텔이 서점을 온전히 품고 있었다. 호텔 부지 중 가장 귀하고 중심이 되는 1층 공간에 흔히 말하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서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질적인 결합에는 논리가 숨어 있다
서울 성수동에서 마주한 젠틀몬스터도, 부산 기장에서 마주한 아난티 호텔도 어찌 보면 참으로 기묘한 풍경이다. 안경점은 미술관으로 변모했고 고급 호텔은 거대한 서점을 심장부에 심었다. 상업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이 이질적인 결합들 앞에서 대중은 거부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다른 어떤 곳보다 깊고 선명하게 기억한다. 평당 효율을 극대화하여 제품을 하나라도 더 빽빽하게 진열하는 것, 왜 이 제품을 사야 하는지 소비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 접근이 된 지 오래다.그렇다면 단순히 어울리지 않는 이종(異種)의 요소를 무작위로 붙이기만 하면 대중이 매료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이 브랜드들의 행보를 단순히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유별난 마케팅으로만 바라본다면 브랜드 본질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젠틀몬스터와 아난티 모두 엉뚱한 결합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정교한 논리적 결이 흐르고 있다. 젠틀몬스터의 경우, '시각 교정'이라는 안경의 도구적 목적과 '시각 자극'이라는 뮤지엄의 유희적 가치가 결국 ‘시각 경험’이라는 거대한 상위 개념의 기반 위에서 완벽하게 수용된다. 동시에 이는 젠틀몬스터가 늘 강조해 온 ‘심미성’의 개념과도 단단한 축을 이룬다.
나아가 안경을 판매하는 곳을 뮤지엄으로 정의하고 시각화함으로서 그 맥락에 놓인 안경 역시 단순한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서 투영된다. 평범한 진열대 위에서는 거부감이 들던 디자인의 안경도 뮤지엄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놓이면 '실험적이다', '도전적이다'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공간의 정의가 상품의 해석 방식에 투영되는 것이다.

아난티가 보여준 방식은 한층 더 과감하다. 한번 구축하면 수정과 변경이 극도로 어려운 고급 호텔의 중심부에 커다랗게 배치한 서점은 표면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머무름’이라는 층위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나아가 서점이 함의하는 머무름은 단순히 공간에 체류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사유를 탐색하고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며 끊임없이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확장된다. 아난티는 서점을 통해 이러한 머무름의 방식을 호텔 안으로 옮겨놓음으로써, 단순한 '숙박(Stay)'을 정서적 영감으로 향하는 '여정(Journey)'으로 격상시킨다. 젠틀몬스터가 뮤지엄이라는 공간의 맥락을 빌려 안경의 의미를 조정한 것처럼, 아난티 역시 서점을 매개로 자신들이 제공하는 호텔이라는 상품의 속성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 결과 이용객은 자신을 단순히 숙박 서비스를 소비하는 고객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책과 문화를 향유하고 사색을 즐기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재해석하게 된다. 호텔을 떠나는 순간 기억에 남는 것은 객실의 크기나 침구의 촉감 만이 아니다. 그 공간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는지가 함께 남는다.

결국 남는 것은 여백
사실, 이러한 시도는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다. 평당 매출을 극대화하는 대신 공간을 비워 두고 단기적인 판매보다 오래 남을 경험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브랜드에는 언제나 작은 용기가 숨어 있다. 숫자로 증명하기 어려운 가치를 믿고 소비자가 뛰어놀 수 있는 정서적 여백을 기꺼이 남겨두는 용기 말이다.그 용기 있는 브랜드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것은 설명이 아닌 해석이었다. 안경을 사러 가서 뮤지엄을 마주할 때, 호텔에서 서점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되묻게 된다. 쉽게 이해되는 정보가 아니라 해석해야 할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가온 경험은 각자의 해석으로 채워진다. 누군가는 브랜드 안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라이프스타일을 읽어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투영할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소비자는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수동적인 '객체'가 아닌 낯선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취향을 뒤적이고 기꺼이 의미를 직조해 나가는 능동적인 '해석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는 훨씬 더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밖에 없다.
결국 두 브랜드가 보여준 것은 이질적 결합을 통한 이목 끌기가 아니다. 소비자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고 완성할 수 있는 경험의 구조, 그리고 저마다 브랜드를 자기 기준으로 해석해 나갈 수 있는 여백이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