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도박은 한 끗 차이인가? [양동운의 금융관찰기]

입력 2026-07-20 10:20   수정 2026-07-20 10:24

금융과 도박은 한 끗 차이인가? [양동운의 금융관찰기]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필연적인 '돈'의 발명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래 수백만 년 동안 자연과 마주하며 음식, 땔감 등 필요한 물자를 얻어 냈습니다. 그러다 약 1만년 전 농경과 목축의 기술을 익혀 생산경제로 전환되는 '신석기 혁명'을 맞이했습니다. 생산력 증대에 따라 남는 물자가 거래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통되는 물건들의 가치를 측정하고 손쉽게 교환을 매개해 줄 '돈'의 발명은 필연에 가까웠을 겁니다. 고대 문명에서 두루 발견되는 '돈'의 흔적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돈'만 있으면, 필요한 물건과 용역을 얻는 데에 투입할 노동과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생산에 투입된 타인의 노동(시간)을 '돈'으로 사는 셈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타인의 생(노동 시간)을 나의 생에 더하는 마법입니다. 결국 '돈'과 교환되는 물건(재화), 서비스(용역)가 지닌 경제적 가치, 그리고 이를 얻어내려는 욕망으로부터 '돈'의 힘은 끝없이 생성됩니다.

'돈'의 기능과 능력은 경제발전과 함께 증대되어 왔고, 물자에 대한 생존본능의 감정은 어느덧 '돈'을 향하게 된 듯합니다. 마침내 시장경제 체제의 현대인들은 자연과 직접 대면해 물자를 마련할 능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돈'을 희구할 수밖에 없고 '돈'을 굴려야 하며, 지류로부터 모여든 거대한 '돈'의 흐름은 경제를 순환시키고 다시 사람들을 굴리게 됩니다.
또 다른 문화의 뿌리인 '놀이'와 결합한 '돈'
네덜란드의 역사·문화이론가 호이징가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존재)'라 칭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묘한 놀이(게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인류 역사를 보면, 수긍되는 호칭입니다. 호이징가는 한발 더 나아가 놀이가 철학, 학예, 법률, 정치 등 문화의 뿌리이고 문화를 유지하는 요소라 주장합니다. 이 주장이 타당하다면, 문명(역사)의 전개에 '돈'(금융)이 크게 개입해 왔던 점을 고려할 때, 놀이와 '돈'이 결합할 개연성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주사위, 골패, 화투, 마작, 트럼프 등 숫자를 지향하며 대결하는 놀이(게임)는 역시 수량 단위로 셈하는 '돈'과 금방 결부되었습니다. 놀이가 흥겹고도 짜릿한 이유는 인간의 일상, 본래 삶(즉, 자연 속에서 노동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인간의 고단한 삶)을 잠시 내려놓을 자유와 전복의 틈새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쾌와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토록 흥겨운 놀이가 일확천금으로 연결된다면, 그 흡인력의 정도는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놀이와 '돈'의 결합물, 즉 도박은 사람의 영혼을 홀렸다 잠식해 버리는 강력한 '마약'으로 작용합니다.

도박의 수렁에 빠져든 무수한 사람 중 유명한 사람은 단연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일 것입니다. 그는 룰렛 게임에서 거액을 따낸 뒤 도박의 쾌락에 빠져 무려 8년 동안 유럽의 카지노를 전전했다고 합니다. '죄와 벌' 같은 위대한 작품이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절박함 속에서 쓰였다고 하니 기가 막힌 '노름'입니다. 소설이 잘 팔려야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실의 사건들과 대중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든 역작을 내놓게 된 것입니다.
범죄행위로 규제되는 도박, 놀이도 막을 수 있을까


이렇듯 도박이 사람을 잠식하는 속도와 정도는 무서울 정도입니다. 노동을 매개로 사회와 연결되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전면 중단시킬 정도입니다. 그래서 도박한 사람에게 최고 1천만 원의 벌금형 제재가 따르되, 상습적으로 하면 최고 3년의 징역형으로 중하게 처벌됩니다. 도박장을 개설한 경우 최고 5년의 징역형으로 가장 중하게 벌합니다. 다수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을회관, 회식 자리, 경기 등 사람이 모일 만한 곳이면 도박판은 쉽게 벌어집니다. 도박은 '돈'과 결부된 놀이입니다. 놀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시 오락 정도에 불과한 도박의 경우 처벌하지 않도록 법에 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허가받은 카지노와 같은 도박장에서의 도박행위도 처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박죄가 문제 되는 형사재판에서 놀이(일시 오락)냐 도박이냐 하는 문제는 범죄 성립 여부를 좌우하는 첨예한 쟁점이 됩니다.
금융투자와 도박의 유사성
금융투자와 도박에 '돈'(재산)을 요소로 하는 것 말고 다른 공통점이 있을까요? 개념상으로는, 그 요소 외에 다른 공통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도박은 돈을 걸고 우연한 승부에 따라 그 돈을 차지하는 게임입니다. 즉, '돈 놓고 돈 먹기'입니다. 판돈 외에 실체가 없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기도 합니다.

반면 금융상품의 경우 실체가 있습니다. 주식투자는 S 주식회사의 기업가치를 보고 이루어지고, 리츠(REITs) 투자는 해당 부동산을 보고 이루어지는 등 실체의 경제가치를 보고 금융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치가 변동되는 이상 금융투자는 제로섬 게임이라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천적 관점에서는 꽤 가까이 있습니다. 주식회사가 발명된 초기부터 현재까지도 자본시장에서 끊임없는 구조적, 우발적 요인들(투자 대상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 부족, 위험분석 미비, 정보 비대칭, 도덕적 해이, 주가조작, 미공개정보 이용, 국가 간 법제 차이 등)로 인해 불확실성이 크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일반투자자들은 '투자'가 아닌 요행에 따라 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기'로 나아가며 점점 '사행성', 즉 도박에 가까운 실천을 보이곤 했습니다.
개념상 도박에 접근하는 금융투자상품


그런데 자본시장법은 증권사, 은행, 운용사 등이 금융투자업을 하는 경우 도박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도박과 금융투자가 개념상 명확히 구분된다면, 굳이 이런 규정을 둘 필요가 있을까요?

이 규정은 금융투자 중에 도박과 구분하기 힘든 영역이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실물이 아닌 위험을 사고파는 것조차도 가능하게 만드는 파생상품의 등장으로 금융투자상품 중 도박에 근접한 상품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은 1천만 원이 넘는 증거금을 내고 증권사의 FX마진 상품에 투자하며 10배의 레버리지를 이용하게 됩니다. 동시에 2개의 통화를 선택해 매수(달러)·매도(엔화)하게 되는데,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환차익을 실현하고, 10% 포인트 상승 시 레버리지 효과로 100%의 큰 수익률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FX마진 투자를 간절히 원하나 증거금이 부담되어 못하는 개인을 위해 사설업체들이 생겨나 FX마진 상품을 팔았습니다. 사설업체는 인허가 없이 금융투자업을 한 것이므로 자본시장법에 위반되어 처벌될까요? 대법원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는 금융투자상품의 판매가 아닌 도박이나 게임으로 보았고, 자본시장법 위반의 점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그 본질이 도박인 금융상품이 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는 소위 '삼전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품 투자도 도박에 가깝습니다. 이는 'Exchange Traded Fund'의 약자로, 거래소(Exchange)에 상장되어 사고팔 수 있는(Traded) 펀드(Fund) 상품인데, 특정 주가지수나 자산의 가격을 따라가도록 설계된 상품입니다.

본래 분산투자로 위험을 줄인다는 상품이었으나, 오직 한 개의 종목에만 연동시킴으로써 단일종목의 변동성에 전면 노출되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 ETF 상품에 대한 열풍과 단타 매매로 1일 회전율이 200%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 과정에서 증권사가 얻는 수수료 수입을 연간 적게는 5조 원에서, 많게는 10조 원까지 추산한다고 하니, 투자수익을 향한 집념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시 불확실성의 세계로
자연의 불확실성은 인류에게 큰 위협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신석기 혁명'이니 '문명'이니 하는 것들은 인류의 정신 능력을 활용해 불확실성을 극복하며 나아가는 과정이자 장(場)이었습니다. 우리의 교육과 법제는 촘촘해졌고, 경제와 문화는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철학과 질서와 실천은 이토록 빈곤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전쟁, 거대 플랫폼, AI, 방산 등이 한편으로는 사회자원을 흡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해체하며 불확실성으로 나아가는 이때, 욕망과 불안과 행복에 관한 근본적 문제를 사회와 개인 차원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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