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추격이 시작됐다. 2016년 이세돌 9단이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승4패로 밀린 지 10년 만이다. 이 9단의 뒤를 이어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신진서 9단이 신호탄을 쐈다. 이번에는 더 센 상대였다. 알파고가 3점을 깔고 둬야 한다는 카타고.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3연전에서 신 9단은 카타고에 맞서 2점 접바둑으로 2승1패를 기록했다. 제1국에서 패배한 후 2·3국에서 이겼다.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인간과 AI 간 실력 차는 계속 벌어졌다. 이듬해 등장한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100승 무패였다. 카타고는 2017년 업그레이드가 종료된 알파고 제로를 앞선 현존 최강의 바둑 AI로 평가받는다. 프로기사들은 그동안 카타고에 3점을 깔고는 버티기 어려웠고, 4점을 깔고도 지기도 했다. 인류 최강인 신 9단이라고 하더라도 카타고를 2점 접바둑으로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만큼 이번 승리는 값질 수밖에 없다.
신 9단은 2국 승리 후 인터뷰에서 “초반과 후반에서는 인간의 바둑도 많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큰 중반이다. 수십만 가지 경우의 수를 동시에 계산하는 AI에 비해 인간이 가장 취약한 영역이다. 신 9단은 1국 중반에 중앙 백 대마를 공격하다 실패하고 결국 패배했다.
신 9단은 이후 다시 ‘인간 바둑’의 힘을 보여줬다. 2국에서 내내 지키는 바둑을 두다 중반에 중앙 백을 끊으며 승기를 잡은 160수가 대표적이다. 신 9단은 “전투에서 AI를 이긴 첫 사례”라고 했다. 어떤 수는 장외 AI가 추천한 블루스폿(최적의 착점)보다 승률이 높은 경우도 있었다. 마치 내비게이션이 추천한 경로와 다른 길로 가니 도착 시간이 단축되는 것과 비슷하다. 미지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바둑 중반을 인간이 정복한다면 AI와의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고, 신 9단은 이번에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본 바둑계 전설인 재일동포 조치훈 9단의 말처럼 AI와 달리 인간에게는 “목숨을 걸고 둔다”는 집념이 있다.
AI를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AI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도 다시 확인했다. 2국 초반이 이를 보여준다. 우하귀 흑 화점에 삼삼으로 침투한 카타고를 상대로 신 9단은 초대형 정석으로 대응해 반상의 거의 4분의 1을 마무리했다. 그만큼 향후 전개의 불확실성을 줄이며 2점 접바둑의 유리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정석은 ‘알파고 정석’으로 불린다. 인간의 바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삼삼 침입을 알파고가 유행시키면서 새로운 정석이 탄생한 것. 이번 기신전은 AI가 탄생시킨 정석을 이용해 인간이 AI에 승리한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카타고가 1국 초반에 화점에서 세 칸 떨어져 걸친 듯, 갈라친 듯 둔 ‘변칙 수’도 앞으로 새로운 정석이 될지 모른다.
인간의 기보를 데이터 삼아 바둑 실력을 쌓은 AI처럼 인간도 AI의 도움으로 기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바둑은 이렇게 인간과 AI가 경쟁하고, 협업하고, 같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이번 기신전은 인간과 AI가 파트너가 될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임도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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