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 넘는 미술사
이지호 지음 | 한경arte | 2만2000원
“예술은 언제 외설이 되는가? 누가 그림을 위험하게 만들었는가?”
그림 속 벌거벗은 몸 하나를 두고도 어떤 시대는 신성한 비례와 숭고한 아름다움을 보았고, 또 다른 시대는 감춰야 할 수치와 위험을 보았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선 넘는 미술사’는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대중 미술서다. 시대와 불화했으나 그래서 시대를 앞서갔던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미술이 ‘선을 넘었던’ 찰나의 순간들을 색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그래서 미술 입문서이자 표현의 자유와 검열의 역사를 함께 읽어보는 인문 교양서의 가치도 높다.
책은 1857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조각 ‘다비드’를 보고 그의 몸 일부를 가릴 장치로 탈착식 ‘무화과 잎사귀’를 만들게 한 일화로 시작한다. 그 뒤 19세기 접어들면서 사진 기술과 정신분석학이 등장했고, 이상화된 신화 속의 몸 대신 욕망을 드러내는 현실의 몸이 화폭에 올려지면서 그렇게 누드화는 점차 예술과 외설 사이의 충돌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저자는 흥미로운 사건과 스캔들을 중심으로 미술의 역사 속 한 장면을 포착해낸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예술가들이 실제로 겪었던 체포와 재판, 작품 압수와 전시 논란 등의 사건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늘의 걸작이 아이러니하게도 어제의 스캔들이었고, 오늘의 문화유산이 한때는 범죄로 취급됐던 역사를 통해 예술이 사회와 맺어온 긴장 관계를 되짚어보고자 한 것이다.
책은 유명 화가들의 ‘누드화’로 치른 사건을 다룬다. 귀스타브 쿠르베는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누드화로 인해 살롱에서 평가를 거부당했고, 에두아르 마네는 그림 속 벌거벗은 여성이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이유만으로 스캔들의 중심에 섰다. 또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그림에 그려 넣은 털 하나 때문에 전시회 당일 철거 명령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는 몽마르트르 환락가 여성들의 일상과 휴식을 그렸고,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는 현실 속에서 만난 여성들의 쾌락과 성적 환희를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담아내며 사회에 반기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행보는 모더니즘 회화 탄생의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이처럼 책은 오늘날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들이 당시에는 법정과 전시장, 거리에서 조롱당했던 냉혹한 현실을 통해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낸 규범의 산물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책을 읽는 동안 그림 속 벌거벗은 몸보다 그 앞에 서 있었을 법한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림을 불태우려 했던 사람, 몰래 수집하며 훔쳐봤던 사람, 분노하고 경멸했던 사람, 그리고 훗날 이를 걸작이라 칭했던 사람. 결국 누드의 역사는 사람의 시선과 사회의 인식 변화기도 하다.
책은 미술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부담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책을 쓴 이지호 작가는 요즘 눈에 띄는 아트 칼럼니스트로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에서 현대미술사와 철학, 조소와 회화를 공부했고 20세기 미국 디자인을 대표하는 거장 조지 처니를 사사한 뒤 서던캘리포니아대로 옮겨 아트&테크놀로지, 미디어아트를 섭렵하며 전방위 예술의 식견을 쌓았다.
“모든 예술은 에로틱하다”라고 했던 클림트의 말처럼 결국 선 너머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액자 뒤편에 숨겨진 격렬하고 혼란스러운 명화의 진짜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지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안내서가 될 것이다.
글= 이혜영 한경매거진&북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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