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라는 전세 사기 여파 이후 전세를 찾는 사람이 급감하면서 갭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가 어려워지고 분양이 안 되다 보니 결국 건설업체가 외면하는 사업이 되었습니다. 오피스텔도 비슷한 이유로 공급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전·월세난이 다시 몰아치면서 빌라 거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서울 연립 및 다세대주택 거래는 2만3701건으로 지난해 상반기(1만7845건)보다 32.8% 증가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시대 직후 아파트값이 급등하자 2021년 상반기 빌라 거래는 3만6546건으로 치솟았으나, 전세 사기 여파가 터진 2023년 상반기에는 1만1505건으로 급감했습니다. 이후 거래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반면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거래는 지난해 상반기 4만3389건에서 4만2186건으로 2.8% 감소했습니다. 서울 전체 주택 거래에서 빌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34.3%로 다시 늘어났습니다.
강북 지역까지 전·월세 물건이 소진되고 임대료가 급등하자, 가격 부담이 덜한 빌라로 수요가 이동하거나 임대수익을 노린 임대사업 수요가 증가했습니다. 더욱이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지만 빌라는 허가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실거주 의무 없이 갭투자로 매수하는 흐름도 포착됩니다.
정부는 수도권 전·월세 공급난을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비아파트(빌라) 공급 대책을 내놨습니다. 전세 사기 이후 빌라·연립·다세대 등 민간 비아파트 공급 생태계는 붕괴 상태였습니다. 올해 상반기 비아파트 착공 물량은 1만4773가구로 지난해 동기 대비 6.2% 감소했습니다. 2021년 6만9274가구였던 착공 물량은 2022년 4만8690가구, 2023년 2만3129가구, 2024년 1만7366가구, 2025년 1만5749가구로 5년 사이에 78.7% 폭락했습니다. 전세 사기 여파 외에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냉각, 미분양, 공사비 급증에 따른 사업성 악화가 원인입니다.
정부는 결국 가장 빠르게 건설이 가능한 비아파트, 즉 빌라에 대한 규제 완화를 발표했습니다.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상가 리모델링 등을 앞세워 2030년까지 총 1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빌라는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치면 기존 5층에서 6층으로 층수를 올려주고, 일조권 규제도 완화해 건물 높이 10~17m 구간의 정북 방향 이격거리를 5m로 단일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공사비와 인건비 급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진 빌라의 층수를 올려 사업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일조권 규제까지 완화하면서 층수만 올리는 방식은 자칫 '닭장 빌라'를 양산할 우려가 큽니다. 아파트 전세를 구하지 못한 전·월세 수요자의 임시 주거용 건물만 늘리는 셈입니다. 단순히 층수만 올려줄 것이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형 빌라 디자인을 적용할 경우 층수와 용적률을 대폭 완화해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집 마련용 주택이 시장에 공급될 수 있습니다.
이미 서울시는 2023년 2월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 방안'을 통해 민간 분야 특별건축구역 지정 시 용적률을 120%까지 상향하고 건폐율도 완화해 주는 파격 인센티브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실제 이 방안으로 사업성을 확보한 강남의 하이엔드 오피스텔과 호텔 사업에 대기업들이 참여하며 사업이 정상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 혁신이 하이엔드 아파트나 오피스텔, 호텔의 전유물일 필요는 없습니다. 유럽 여행 시 보게 되는 2~3층짜리 빌라처럼 멋진 주거 공간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과거 1기 신도시 조성 당시 일산 단독주택 단지에 다양한 디자인의 주택이 들어서며 시청자의 눈길을 끈 사례가 있습니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재개발이나 모아타운이 어려운 지역에 층수만 1개 층 늘려준다면, 디자인이 배제된 채 아파트 입성 전 스쳐 지나가는 임대용 주거 공간만 늘어나게 됩니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하면 멋진 빌라 디자인을 쉽고 빠르게 설계할 수 있고 공사비 차이도 거의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축심의를 거치지 않다 보니 기존 도면으로 대충 지어 임대사업용으로만 공급하는 상황입니다.
가장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빌라라고 할지라도 건축심의 과정에서 층수 완화와 디자인 심의를 병행해야 합니다. 디자인 우수 건축물에 용적률 20% 이상의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전세만 전전하는 집이 아니라 '평생 살고 싶은 빌라'로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빌라는 리모델링이 쉽기 때문에 디자인이 뛰어날수록 용적률을 더 높여주는 방식을 유도한다면 은퇴자와 고령층이 선호하는 빌라 단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3기 신도시와 택지개발,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은 최소 8년 이상 걸립니다. 반면 빌라는 전체 사업 기간이 짧게는 1년, 늦어도 1년 반 정도면 입주가 가능합니다. 이제는 임대 전용 빌라가 아니라 가족과 평생 거주해도 좋은 명품 빌라가 공급되도록 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연세대 미래부동산개발 최고위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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