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가 손 내밀었다…러트닉, 트럼프에 '韓기업' 콕 집은 이유

입력 2026-08-11 06:00   수정 2026-08-11 06:10


핵심광물이 글로벌 산업 패권 경쟁의 중요 자원으로 떠올랐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배터리, 방위산업 등 전방위 첨단산업 경쟁력이 안정적 광물 공급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각국 경쟁도 단순한 자원 확보를 넘어 제련·정제 역량 확보가 관건이 되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이 핵심광물 공급망을 자국과 동맹·우방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광산에서 원료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공·정제와 제조까지 자국 내 산업 기반으로 연결하는 것에 역점을 둔 게 포인트다.

이 같은 미국의 공급망 재건 과정에서 국내 기업인 고려아연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핵심광물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문제”라고 규정하면서 미국 내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사례로 고려아연을 직접 거론했을 정도다.

고려아연은 수십년 동안 쌓아온 통합제련 기술과 운영 경험을 보유한 데다 미국 내 기존 제련소·광산·인력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한국의 제련 기술과 미국의 자원·산업 기반을 결합하는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이 한미 핵심광물 공급망과 경제안보 협력의 대표 사업으로 주목받는 배경이다.
러트닉 장관이 직접 꺼낸 'Korea Zinc'
미국 의회 전문 매체 ‘롤콜’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에서 관련 업계 관계자 200여명과 원탁회의를 열어 핵심광물 공급망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러트닉 장관은 “첨단 제조업과 AI, 반도체, 에너지, 국방 분야에서 주도권을 가지려면 우리 산업의 기반이 되는 원료를 해외 적대국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목표를 “미국에서 채굴하고, 가공하고, 정제하고, 제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러트닉 장관은 고려아연의 74억달러 규모 미국 핵심광물 제련소 프로젝트를 미국 정부의 주요 공급망 투자 사례로 직접 언급했다. 그러면서 동맹국과의 협력 필요성도 강조했다. 러트닉 장관은 “신뢰할 수 있는 공급을 확보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며 “전 세계 동맹국들과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려아연 경쟁력은 '핵심광물·통합제련'
업계는 이처럼 미국이 고려아연에 주목하는 것은 다양한 핵심광물을 하나의 통합공정에서 생산·회수할 수 있는 ‘멀티메탈’ 경쟁력 때문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의 미국 통합제련소는 총 12종의 비철금속과 반도체급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아연·연·동·은을 비롯해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팔라듐·갈륨·게르마늄 등 11종이 미국 정부가 지정한 60개 핵심광물에 포함된다. 특히 갈륨과 게르마늄, 인듐, 안티모니 등은 반도체와 방위산업, 통신·에너지 등에 사용되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광물이다.


통합제련소에서 여러 핵심광물을 동시에 확보 가능한 게 미국 입장에선 효율적으로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한국 입장에서도 양국간 산업협력이 반도체·배터리·자동차를 넘어 핵심광물과 제련·정제 단계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제련·정제 기술과 친환경 사업 모델도 고려아연의 경쟁력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국 내 제련·정제 산업 기반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광석을 확보해도 이를 고순도 금속과 산업용 소재로 만드는 과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완결된 공급망을 구축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고려아연은 매력적 대안으로 간주되는 셈. 울산 온산제련소에서 수십년간 아연·연·동 등을 생산하면서 복잡한 저품위 원료를 처리하고, 제련 부산물에서도 희소금속과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통합공정 기술을 축적해왔다. 또한 폐기·적치될 수 있는 제련 부산물과 스크랩까지 원료로 재활용해 자원 활용도를 높이고 폐기물을 다시 자원화한다는 점에서 자원순환형 친환경 사업 모델로 평가된다.

실행 가능성도 강점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내 기존 아연제련소와 관련 광산 등을 확보해 ‘크루서블 징크(Crucible Zinc)’를 출범시켰다. 신규 제련소가 부지 선정부터 인허가, 원료망 구축, 숙련인력 확보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과 달리 기존 산업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현지 제련소 폰드장 5곳에 쌓인 약 62만t의 부산물에서 핵심광물을 회수하는 계획도 추진한다. 기존 자산과 인력, 원료망에 검증된 제련 기술을 결합해 사업 위험을 낮추고 상업생산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얘기다.
美자원·韓기술 결합…'동맹 공급망' 구축
미국 정부의 적극 참여 자체가 프로젝트 크루서블의 전략적 성격을 보여준다. 미 연방정부가 프로젝트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 데 이어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사업으로는 처음 미국의 대형 인프라 인허가 신속처리 제도 ‘FAST-41’ 대상으로 지정됐다. 미국이 이 사업을 단순한 해외 기업의 투자 프로젝트가 아니라 핵심광물 공급망 재건과 직결된 산업 인프라로 여긴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의 제련·정제 기술이 미국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요한 공급망 역량으로 평가받는다는 의의도 크다. 미국의 자원·산업 인프라와 정책 지원, 한국의 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결합하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광물자원을 보유한 반면 산업에 사용할 수 있는 소재를 만드는 제련·정제 역량은 비교적 부족해 검증된 기술을 가진 동맹국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한국의 제련 기술과 미국의 자원·시장·정책 역량을 결합한 ‘한미 경제안보 협력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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