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미국 정부가 시장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금리 상승 저지' 임무를 진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20일(미국 동부시간) 채권시장에 사실상 선전포고를 날렸습니다.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를 회당 20억달러에서 최소 40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린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입니다.
하루 전 ‘깜짝’ 바이백 카드에 7~10bp 하락했던 장기 금리는 바로 다시 튀었습니다. 유동성이 적은 미국채 30년물 금리는 바이백 발표 전 5.28%대에서 발표 후 5.18%까지 내렸다가 5.25%대를 회복했고, 시장의 벤치마크인 10년물 금리는 4.69% → 4.63% → 4.71%로 오히려 더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베센트가 다시 나선 겁니다. 그는 CNBC에 나와 "회당 바이백 규모가 40억달러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우리에게는 큰 정책 도구상자(big toolkit)가 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장기 금리를 억누르기 위해 단기채를 더 찍고 장기채를 사들이는 방식을 직접 ‘트레저리 트위스트(Treasury Twist)’라고 부르면서 “이런 조치까지 할 의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베센트는 시장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장기 금리가 오르면 재무부가 직접, 더 통 크게 나서겠다는 의지를 더 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장기 국채를 팔아치우며 금리를 끌어올리는 채권시장에 '계속 한 방향으로 베팅하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지요.

그러나 아직 시장은 베센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발언 직후 살짝 꺾이는 듯했던 금리는 금세 상승을 재개, 10년물 금리는 22일 4.736%까지 뛰었습니다. 실적이 확실한 일부 대형 반도체와 AI 하드웨어주를 제외하고 증시는 다시 억눌렸고요. 반대로 달러는 약세를, 금과 비트코인·에너지·원자재는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비트코인은 이틀 만에 20% 가까이 급등해 5월 이후 처음으로 78000달러를 상회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를 주지 않는 금이나 비트코인에는 악재라는 것이 전통적인 시장의 문법입니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는데 달러는 하락하고 금, 비트코인은 오른다는 것은 이번 금리 상승의 성격이 좀 다르다는 신호입니다.
부채 위기를 지속적으로 경고해온 레이 달리오는 이날 "바이백 확대는 미국 재정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시그널"이라며 "지금의 경로대로라면 3년 안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채권 비중을 낮추고 금을 포트폴리오의 10~15% 만큼, 그리고 여기에 비트코인을 조금 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월가를 강타했던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가 떠오르는 움직임입니다. 막대한 부채를 진 정부들이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고 화폐 가치를 희석시킬 것이란 우려가 커질 때 자금이 법정화폐 밖의 가치저장 수단으로 피신하는 거래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만연할 땐 수익률이 높아져도 장기국채 투자는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금리는 상승 압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센트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상품·서비스 모두에서 내려오고 있다"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의 2차 파급효과가 근원 인플레이션으로 번지고 있다는 신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란 사태가 해결되고 물가 하향 추세가 다시 확인되기 전까지 채권시장의 의심은 쉽게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②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재정적자입니다.
각국 정부는 이자와 국방비,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용, 각종 감세와 AI 산업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더 많은 국채를 찍어내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긴축은 누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금리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채권 투자자들은 막대한 공급을 떠안는 대가로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합니다. 미래에도 공급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 지금부터 국채 가격 하락, 즉 금리 상승에 베팅합니다.
MIT의 리카르도 카바예로 교수는 이 변화를 ‘안전 프리미엄(safety premium)’에서 ‘흡수 프리미엄(absorption premium)’으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합니다. 과거에는 미 국채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들이 낮은 금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제는 쏟아지는 국채 물량을 떠안는 대가로 오히려 우량 회사채보다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2015년 이후 미국채 금리 상승분 2.5%포인트 가운데 30%(0.75%포인트)가 이 때문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 부담은 장기물일수록 큽니다. 앞으로 수십 년간 이어질 인플레이션과 국채 공급의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만큼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단기금리보다 장기금리가 더 가파르게 오르는 이유입니다. 미국만의 일도 아닙니다. 일본과 독일, 영국에서도 장기·초장기 국채금리가 수년 또는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습니다.

③ AI 투자를 위한 기업들의 기록적인 자금조달도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등장했습니다.
바클레이스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올해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액은 1년 만에 32% 늘어나 사상 최대인 1조9000억달러에 이를 전망입니다. 정부들이 기록적인 재정적자를 메우려 국채를 쏟아내는 바로 옆에서, 빅테크와 하이퍼스케일러들도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에 투자할 돈을 빌리려 줄을 서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제 미국 정부보다 AI 기업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블라인캐피털의 제프리 셔먼 부CIO는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민간의 AI 투자와 정부 재정이 채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미국 정부에 30년 동안 돈을 빌려줄지, 마이크로소프트에 5년 동안 빌려줄지의 선택지가 생겼고, 상당수 투자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업은 적어도 돈을 쓰면 그만큼 매출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달 초 나온 3분기 국채 발행 계획에서는 향후 장기채 발행량을 줄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표현도 포착됐습니다. 대신 그만큼 단기채 발행을 늘리는 방식입니다. 시장에 풀리는 장기채 공급이 줄어들면 장기채 가격을 높이고 금리는 낮출 수 있습니다.
베센트는 바이든 정부 시절 옐런 전 재무장관이 이 전략을 썼을 땐 "단기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건 롤오버(차환) 리스크를 높이는 도박"이라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이 전략을 계승했습니다.

심지어 앞으로는 단기채 비중을 더 큰 규모로 늘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날 인터뷰에서 베센트가 직접 언급한 '트레저리 트위스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트레저리 트위스트는 과거 Fed가 했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의 주체를 재무부(트레저리)로 바꾼 말입니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Fed가 단기 국채를 줄이고 장기 국채를 사들여 장기금리를 낮추려 했던 정책이라면, 트레저리 트위스트는 재무부가 단기채를 더 발행하고 그 돈으로 장기채를 사들이는 ‘만기 갈아타기’입니다.
핵심은 같습니다. 시장에 풀린 장기채 공급을 줄여 장기금리를 낮추고 기업 투자와 주택시장에 가해지는 부담을 완화하는 것입니다. 케빈 워시 Fed 의장이 대차대조표 확대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재무부가 ‘트위스트’의 주연으로 나서려는 모양새입니다.
바이백은 늘려도 전체 국채 발행 잔액 대비 규모가 2.4%에 불과해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과거 2011~12년 Fed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매입 규모가 최대 19%에 달했습니다. 재무부 단독으로 그만한 규모의 장기물을 사들이려면 발행 만기 구조 자체를 단기물 위주로 바꿔야 합니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ISI 부회장은 "어려움에 처한 국가들은 종종 단기물 발행에 의존한다"면서 "우리는 미국이 다른 국가와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 차이가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베센트 풋(put)’도 반복되자 약효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히려 금리 상승을 더 부추기는 역효과도 날 수 있습니다. ④ 투자자 신뢰의 균열 때문입니다.
제프리스의 토머스 사이먼스 미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바이백 확대의 발표 방식 자체가 부적절했다고 비판합니다. 불과 2주 전 분기 발행 계획을 발표할 땐 아무 언급이 없다가 기습적으로 바이백 계획을 바꾼 건 재무부가 수십 년간 지켜온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regular and predictable)’ 부채관리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구하는 이것이 미 국채 숏 투자자를 불시에 공격해 손실을 입히고 한쪽 방향으로의 쏠림을 막기 위한 ‘전술적 게릴라 작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게릴라전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습니다. 금리가 너무 빨리 오르는 건 막을 수 있지만 “펀더멘털을 따라 움직이는 몇 달 뒤 금리 수준 자체에는 지속적인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JP모건의 제이 배리 금리전략가도 “실질적인 재정 건전화가 없다면 시장은 바이백 확대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무부가 정공법을 피하고 예측 가능한 원칙에서 더 멀어진다면 기간 프리미엄과 장기 금리는 더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베센트 역시 바이백만으로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직후부터 그는 지속적으로 '성장으로 빚을 녹이는 것(grow our way out)'이 근본 해법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미국 경제와 세수가 부채보다 빠르게 커지면 부채의 절대 규모가 늘어나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담은 낮출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번 CNBC 인터뷰에서도 베센트는 "국가부채 40조달러는 큰 의미 없는 숫자다. 성장을 통해 부채 부담을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재정적자가 늘어난 것은 기업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늘려줬기 때문인데, 이는 단기적으로는 세수를 줄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과 과세 기반이 커지는 '미래 성장 투자 비용'이라고 했습니다. "국가의 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자본의 세후수익률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는 게 베센트의 논리입니다.
베센트는 "조만간 백악관 예산관리국과 재정 건전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재정긴축도 병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필요할 경우 채권시장 문제를 놓고 Fed와 ‘함께 일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시장 일각에선 결국 지금의 금리 상승세가 관리되지 못한다면 결국엔 Fed가 직접 개입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옵니다. 노무라증권의 크로스에셋 전략가 찰리 맥엘리곳은 "바이백 확대는 총상에 반창고를 붙인 격이었다"며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 실물 경제에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수준이 되면 결국 Fed가 수익률곡선 통제(YCC)나 직접적인 양적완화(QE)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지금의 금리 상승이 일시적인지, 아니면 5% 금리가 '뉴노멀'이 되어가는 과정인지 예민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아직 국채 시장의 구조적 균열을 말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셔먼 부CIO는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5%를 돌파하고 그 위에 안착하는지, 수익률곡선 전체가 상승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절대적인 수준만큼 속도도 중요합니다. 미국 경제 성장이 계속 받쳐주는 와중에 금리가 질서 있게 올라가면, 자산 가격도 시간을 두고 높아진 금리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단기간에 급등하면 주식, 회사채 등 다른 자산의 동반 디레버리징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금리 상승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고금리가 굳어질수록 주식시장에서는 막연한 성장 기대보다 실제 생산성과 현금흐름을 증명하는 기업으로 차별화가 심해질 수 있습니다. 또 정부부채와 화폐가치에 대한 불신이 금리를 밀어올린다면 금·비트코인·원자재처럼 달러 밖의 가치저장 수단으로 돈이 몰리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베센트는 “8월이라 사람들이 별로 할 일이 없어 시장이 성급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이백 확대와 구두개입 카드에도 금리가 하루 만에 반등한 것도 "노이즈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습니다. 오는 24일 기자회견에서 이란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시장은 모르는 "비대칭적인 정보"를 갖고 기자회견을 열겠다고도 했습니다.
곧 거래량이 되살아나는 9월입니다. 시장이 5%를 향해 계속 베팅할지, 베센트의 ‘큰 도구상자’가 그 속도를 꺾을지가 다음 시험대입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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