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뉴욕특파원 박신영입니다.
월가의 이야기를 샅샅이 해부하는 ‘월스트리트 아나토미’ 첫 회를 시작합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국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Buyback·조기 환매)입니다.
치솟는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해 꺼내든 카드이지만, 당장의 금리 하락 효과 뒤에는 훗날 치러야 할 막대한 대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국채 시장과 금리 급등의 배경, 바이백의 구조적 함의와 향후 파장까지 짚어보겠습니다.
미국 국채금리가 장기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8월 17일 월요일부터 상승세가 가팔라지며 30년물 국채금리는 19년 만의 최고치인 5.3%를 넘어섰고, 10년물 금리 역시 2025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국채금리의 급등은 기본적으로 신규 발행 채권의 금리가 올랐음을 의미합니다. 은행 대출에 빗대어 보면, 상환 능력이 검증된 전문직이나 담보가 있는 대출에는 낮은 금리가 적용되지만, 상환 신뢰도가 낮으면 높은 금리가 요구됩니다. 미국 정부의 국채 발행 역시 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하는 과정인데, 최근 재정 건전성과 상환 능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며 요구 금리가 급등했습니다. 신규 발행 국채의 금리가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기존 저금리 채권을 매도하고 신규 채권으로 갈아타기 때문에 기존 유통 채권의 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연방정부 부채가 8월 19일 기준 40조 달러를 돌파하며 신규 국채 공급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 장기화 및 대이란 제재로 유가가 반등하며 물가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웃돌고 있음에도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포워드 가이던스를 폐지한 채 정책 시점을 늦추며 불확실성을 키웠습니다. 아울러 빅테크의 대규모 AI 투자용 회사채 발행 급증과 주요국의 국채 증발 경쟁까지 맞물리며 미국 국채 금리를 지속적으로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연간 집계인 2025년 기준 미국의 한 해 재정적자는 약 1조 80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를 메우기 위한 공격적인 국채 발행이 이어지며 누적 부채는 40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연간 국채 순차입 규모는 2조 달러 안팎에 이릅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순이자 비용만 올해 연간 1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하루 평균 약 28억 달러, 주당 약 200억 달러(약 30조 원)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한국 정부의 1년 전체 예산(약 730조 원) 규모를 미국은 단 25주(약 6개월) 만에 순수 국채 이자로만 지급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 순이자 비용이 2036년에는 연간 2조 1000억 달러까지 불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치인 2%대로 쉽사리 내려오지 못하는 핵심 배경에는 이 같은 유가 및 에너지 비용의 반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재점화하고 있음에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대응 시점은 지연되고 있습니다. 케빈 워시 의장 취임 이후 연준은 사전 신호를 제공하던 포워드 가이던스를 폐지하고 철저한 데이터 의존형으로 선회했습니다.
워시 의장의 매파적 발언과 견조한 노동시장 지표에도 불구하고 7월과 9월 FOMC에서 실질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으면서 시장은 정책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채권 투자자들은 이러한 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해 장기 국채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AI 기업 및 데이터센터 관련 회사채 발행 규모는 2024년 170억 달러에서 2025년 1090억 달러로 급증했으며, 올해는 2790억 달러, 2027년에는 최대 3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오라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수조 달러 규모의 설비투자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회사채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공급 물량이 쏟아지자 투자자들은 AI 회사채에 대해서도 국채 대비 더 높은 가산금리(스프레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채 대비 스프레드는 2~4년물이 기존 30bp에서 40bp로, 5~7년물이 50bp에서 60bp로 확대됐으며, 20년 이상 초장기물은 108.5bp에서 118bp까지 벌어졌습니다.
미국 정부의 막대한 국채와 빅테크의 천문학적인 회사채가 한정된 유동성을 두고 정면으로 경쟁하면서, 국채 역시 금리를 높이지 않고는 매각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전 세계적인 재정지출 확대와 인플레이션 지속, 예상 밖의 경기 방어력이 맞물리며 글로벌 투자자 전반이 장기 채권 보유에 대해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래 수익 할인율 상승으로 고평가된 테크주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지고, 기업들의 전반적인 회사채 조달 비용이 증가합니다. 또한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가 함께 뛰며 가계의 이자 부담과 주택 경기 침체를 심화시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만기 도래 채권을 고금리로 차환해야 하므로 이자 지급액이 급증하며, 타국 역시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재무부가 유통시장에서 장기채를 직접 사들이면 채권 가격이 오르고 금리는 하락합니다. 실제로 조치 발표 직후 30년물 금리는 약 9bp 급락하며 5.19%로 내려앉았습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계와 기업의 고금리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개입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단기채는 수시로 만기가 돌아오므로 고금리나 시장 불안이 지속될 경우 훨씬 비싼 금리로 빚을 갈아타야 하는 차환 리스크를 안게 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시장가격 결정기능’이 훼손된다는 점입니다. 시장가격 결정기능이란 투자자들이 물가, 재정적자, 국채 공급량 등 경제 기초체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채권의 적정 가격과 금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시장 본연의 메커니즘을 뜻합니다. 그런데 금리가 뛸 때마다 정부가 개입해 채권을 사주면, 시장은 경제 여건이 아니라 '정부가 언제, 얼마나 개입할 것인가'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결국 시장이 자율적으로 적정 금리를 산정하는 기능이 무력화되고 정부에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무엇보다 바이백은 만기 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꿀 뿐, 막대한 재정적자라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베선트 장관은 20일 인터뷰를 통해 30년물 시장 유동성을 매우 열악하다고 진단하며, 바이백 한도를 종목당 40억 달러 이상으로 추가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그러나 개입이 상례화될수록 시장은 내성을 갖게 되며, 향후 바이백 규모 축소 자체가 금리 급등을 촉발하는 악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시장이 미 정부의 재정 상태와 장기금리 방어 능력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면 달러화와 미 국채 전반의 정책 신뢰가 흔들릴 위험이 큽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1코인의 가치를 1달러로 유지하기 위한 준비자산의 대부분을 미국 단기국채로 보유합니다. 즉, 정부는 장기채를 사들이고 단기채를 발행하며, 암호화폐 시장의 스테이블코인이 이 단기채를 받아내는 일종의 유동성 우회로를 구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기채 중심의 자금 조달과 인위적 장기금리 억제 정책은 필연적으로 통화 가치 하락, 즉 달러 약세를 수반합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셈법과 맞아떨어집니다. 완만한 달러 약세는 미국 제조업 부활과 무역수지 개선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준금리를 올려 대출 이자를 높이거나 정부 지출을 삭감하는 정책은 유권자의 직접적 반발을 사지만, 달러 약세는 체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택과 주식시장의 고금리 부담을 덜기 위해 달러 약세를 정책적 비용으로 감수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초기에는 장기금리가 안정되는 듯했으나, 근본적인 재정 건전성이 회복되지 않자 시장의 신뢰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JP모건 등 월가 주요 기관들이 현재 미국의 바이백 확대를 보며 2022년 영국의 전철을 경고하는 이유입니다.
국채 발행의 만기 구조를 바꾸고 바이백을 늘리는 기술적 수단만으로는 40조 달러에 달하는 부채와 만성 재정적자가 유발하는 금리 상승 압력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습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