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8월이면 미국 캘리포니아의 평화로운 해안 도시 몬터레이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슈퍼리치와 하이엔드 자동차들의 엔진음으로 진동한다. 단순한 신차 전시회를 넘어 글로벌 1%의 취향과 부가 교류하는 거대한 사교의 장, 몬터레이 카 위크(Monterey Car Week) 이야기다.

지난 8월 16일, 카 위크의 하이라이트이자 세계 최고의 클래식카 경연대회인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가 75주년을 맞이했다. 화려한 현재의 모습과 달리 1950년 11월 첫 행사 당시 콩쿠르는 메인 이벤트가 아니었다. 당시 주인공은 해안 도로를 질주하던 ‘페블비치 로드 레이스’였으며, 콩쿠르는 단지 사람들을 모으고 사교적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막바지에 기획된 부대행사에 불과했다. 참고로 이 첫 레이스에서는 훗날 미국의 첫 F1 월드 챔피언이 되는 필 힐(Phil Hill)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초기 몬터레이 카 위크는 거대 기업의 마케팅 부서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동차를 사랑하는 소규모 마니아들의 모임에서 자생적으로 태동했다. 그러나 75년이 흐른 지금, 주객은 바뀌어 콩쿠르와 카 위크 자체가 북미 최고의 자동차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흙먼지 날리던 아마추어 레이서들의 소박한 무대가 이제는 전 세계 부호들의 취향과 천문학적인 자본이 교차하는 하이엔드 마켓의 런웨이로 진화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동차 쇼의 성공을 넘어, 럭셔리 모빌리티가 명실상부한 예술품이자 자산 클래스로 완전히 편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결국 이들에게 몬터레이는 단순한 자동차 전시장을 넘어, 비슷한 취향과 안목을 공유하는 이들만의 거대한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대중에게 노출되는 전통적인 모터쇼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는 대신, 실질적으로 지갑을 열 수 있는 극소수의 VIP에게 브랜드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 특별한 주간에는 기술과 예술, 초개인화(Bespoke)가 결합된 경이로운 서사들이 탄생한다. 올해도 대단했다.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는 단연 페라리다. 1980년 애플 상장(IPO) 당시 초기 투자자로 대부호가 된 87세의 억만장자 허버트 A. 베르트하임(Herbert A. Wertheim)이 애플의 전 디자인 수장 조니 아이브의 손길이 닿은 페라리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Luce) 섀시 넘버 ‘0’을 4000만 달러에 품에 안았다. 하이엔드 모빌리티가 실리콘밸리의 IT 혁신과 결합해 새로운 자산 클래스가 되었음을 완벽하게 증명한 사건이다. 이 경매 수익금 전액은 페라리 재단을 통해 교육 환경 개선 사업에 기부돼 남다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기도 했다.
경매 시장 전체의 열기도 상상을 초월했다. 올해 몬터레이 카 위크 경매 총액은 약 7억 5560만 달러에 달했다. 특히 캐럴 셸비가 직접 소유했던 1964년형 셸비 코브라 데이토나 쿠페(Shelby Cobra Daytona Coupe)가 4,290만 달러에 낙찰되며 이번 주간 전체 최고가를 기록, 희귀 클래식카의 폭발적인 가치를 증명했다.

75주년 페블비치 최고의 영예인 ‘베스트 오브 쇼(Best of Show)’는 과거 할리우드 전설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이 소유했던 1935년형 듀센버그 SSJ 스페셜 스피드스터에게 돌아가며 헤리티지의 가치를 입증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의 개인 소유 모델과 거의 동일하게 맞춤 제작(MANUFAKTUR Made to Measure)한 최신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680을 선보여 과거와 미래를 잇는 럭셔리를 뽐냈다. 애스턴 마틴은 1951년 팩토리 레이싱 팀에서 활약한 DB2 레이스카 3대에서 영감을 얻은 DB12 S 쿠페 한정판을 특별 제작(Q by Aston Martin)해 공개하며 자사의 깊은 레이싱 뿌리를 극적으로 재조명했다.

몬터레이 카 위크의 푸른 잔디밭 위에서 벌어지는 이 화려한 축제는 우리에게 럭셔리의 본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분명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하이엔드 자동차는 이제 A에서 B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나, 제원표상의 최고 속도로 우열을 가리는 단순한 기계를 넘어섰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헤리티지, 혁신적인 첨단 테크놀로지 그리고 개인의 미학이 결합된 ‘움직이는 마스터피스’이자, 비슷한 안목을 가진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커뮤니티의 매개체다.
한국의 럭셔리 카 시장 역시 세계 최상위권 규모로 성장했지만, 우리의 소비 문화는 여전히 “누가 더 비싸고 희귀한 차를 타는가?” 혹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이른바 ‘하차감’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몬터레이가 증명한 진정한 하이엔드 문화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확고한 취향을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 앞서 언급한 억만장자가 남들이 정해준 시장 가치가 아닌, 자신의 테크 헤리티지가 담긴 페라리 루체에 기꺼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 것처럼 말이다.
이제 럭셔리 모빌리티 문화도 가격표의 숫자나 브랜드 엠블럼의 후광에만 기대는 1차원적인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메이커가 제시하는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그 위에 나만의 독창적인 이야기와 라이프스타일을 덧입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성숙한 큐레이션의 영역으로 도약할 시점이다. 진정한 럭셔리는 남을 압도하는 과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가장 완벽하고 우아하게 표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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