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철도 덕후'의 경제학…"아이돌보다 옛 기차에 열광" [도쿄나우]

입력 2026-08-30 11:08   수정 2026-08-30 11:18

日 '철도 덕후'의 경제학…"아이돌보다 옛 기차에 열광" [도쿄나우]



일본인의 철도 사랑은 유별나다. 수십 년 된 철도 차량이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관광자원과 문화상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도권에서 은퇴한 전철이 지방 사철에서 다시 달리고, 폐차된 차량은 숙박시설로 변신한다.

철도 부품은 가방과 가구로 재탄생하고, 해외로 건너간 일본 열차를 타기 위해 팬들이 현지 투어까지 떠난다. 차량의 ‘데뷔’와 ‘은퇴’, ‘제2의 인생’을 사람처럼 받아들이는 일본 특유의 철도 문화가 관련 시장까지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이부철도는 최근 다른 철도회사에서 중고 차량을 사들여 자사 노선에 맞게 개조하는 ‘서스테나 차량’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2029년도까지 오다큐전철과 도큐전철에서 모두 약 100량을 구입할 계획이다. 대형 철도회사끼리 대규모로 중고 차량을 거래하는 것은 드문 사례다.

지난 6월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세이부철도 차량기지에서 열린 옛 도큐전철 차량 촬영회에는 30분 촬영에 참가비가 7700엔인데도 약 100명이 몰렸다. 행사 전체 방문객은 약 8300명에 달했다.

철도 팬들은 차량 자체에 자신의 추억과 이야기를 투영한다. 한 60대 참가자는 “오랫동안 달린 차량이 다른 곳에서 제2의 인생을 보내는 모습에 나 자신을 겹쳐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지방 철도에서 더욱 뚜렷하다. 나가노전철이 운행하는 차량은 현재 모두 수도권에서 사용하던 중고 차량이다. 오다큐전철의 로망스카를 넘겨받은 특급 ‘유케무리’를 비롯해 JR동일본의 나리타 익스프레스, 도큐전철 8500계, 도쿄메트로 히비야선 03계 등이 나가노에서 운행되고 있다.

철도회사 입장에서는 신차를 구입하는 것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지역 입장에서는 과거 수도권을 달리던 유명 차량 자체가 관광자원이 된다. 특히 약 48년 동안 도큐선을 달리다 은퇴한 8500계 등을 보기 위해 일부러 나가노를 찾는 팬도 적지 않다.

일본 철도 차량의 ‘제2의 인생’은 해외로도 이어지고 있다. 태국에서는 JR홋카이도의 키하183계와 14계 객차가 관광열차로 운행되고 있으며, 올해 4월에는 JR고노선 등에서 사용된 키하40계가 통근열차로 투입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인 철도 팬을 대상으로 키하183계와 14계 객차를 전세내는 태국 철도 투어도 열렸다. 참가비 약 2만엔에 당초 60명을 모집할 계획이었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커 대학생부터 70대까지 약 12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차량에 남아 있는 일본어 표기나 도색이 벗겨진 곳에서 드러나는 과거 색상을 찾아 촬영하며 과거 일본 운행 시절의 흔적을 즐겼다.
폐차량, 숙박시설로 개조했더니 '만실'

폐차량도 새로운 비즈니스로 활용되고 있다. 지바현 이치하라시의 ‘다카타키호 글램핑 리조트’는 고미나토철도에서 57년간 운행한 ‘키하203’을 넘겨받아 숙박시설로 개조했다. 차량 내부에는 손잡이와 선반, 좌석, 운전석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철도 팬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여름철에는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다.

오사카에서는 2027년 은퇴 예정인 JR서일본 500계 신칸센을 테마로 한 호텔 객실도 등장했다. 비아 인 신오사카 웨스트의 ‘500계 신칸센 룸’에는 실제 사용된 좌석과 테이블이 설치돼 있다. 객실은 내년 3월까지 예약이 거의 찰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철도 부품을 재활용하는 사업도 성장하고 있다. 오사카의 봉제업체 선워드는 오사카메트로와 한큐전철 등 16개 철도회사의 폐부품을 활용해 가방과 스마트폰 거치대, 의자 등을 제작하고 있다. 좌석 시트나 차량 연결부 자재 등 원래 폐기될 부품이 철도 팬을 겨냥한 상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팬들이 직접 차량 보존에 뛰어드는 사례도 있다. 지바현 이스미시의 철도차량 테마파크 ‘폿포노오카’에는 옛 국철 차량과 침대특급 블루트레인, 옛 영단지하철 마루노우치선 차량 등 모두 34량이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 16량은 철도 팬들이 만든 보존회가 들여왔다.

한 보존회는 옛 국철의 583계 식당차를 보존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으로 약 2000만엔을 모아 2024년 아오모리에서 지바까지 차량을 운송했다. 팬들이 직접 보관료를 내고 차량 정비까지 맡는다.

전문가들은 일본 철도문화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사회적으로 형성된 문화라고 분석한다. 일본에는 200개가 넘는 철도회사가 있어 차량과 노선의 작은 차이를 즐길 수 있고, 철도 행사와 전문매체 등이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면서 팬층을 확대해왔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철도 차량을 사람처럼 의인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새 차량은 ‘데뷔’하고, 운행을 끝내면 ‘은퇴’하며, 지방이나 해외로 옮겨가면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표현한다.

1872년 철도가 개통된 이후 일본의 근대화는 철도와 함께 진행됐다. 최근에는 인구 감소와 자동차 이용 확대, 물가 상승으로 지방 철도의 경영난이 심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오래된 차량을 보존하고 재활용하려는 팬들의 움직임이 새로운 관광과 소비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본에서 철도는 여전히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의 존재인 셈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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