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우고 그슬린 시간의 겹으로 엮인 책

입력 2026-09-01 14:52   수정 2026-09-01 15:08



아버지는 책의 모서리를 도려내고, 어머니는 천을 잘랐다. 김민정 작가가 오리고, 태우고, 물들이며 남긴 자국은 그렇게 세상에 남기 시작했다.

한지와 먹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김민정 작가는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기억 안에서 산다고 믿는다. 어릴 적 인쇄소를 운영하던 작가의 아버지는 제본한 책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고, 어머니는 자른 천을 기워 이불을 만들었다.



그 기억은 고스란히 작가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어머니처럼 천 대신 종이를 재단하고, 아버지의 책처럼 한지를 동그랗게 오려낸다.

김민정 작가는 40여 년간 한지와 먹, 불을 탐구해왔다. 흔히 서예나 수묵화에 쓰이는 한지와 먹에 추상을 적용해 자신만의 독창적 언어를 완성했다.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망라한 최초의 모노그래프 <Minjung Kim: Ink, Paper, Fire>가 출간됐다. 연작별로 구성한 이 책은 작품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확장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수년 뒤 연작이 다시 변용되는 흐름을 함께 보여준다.

그의 연작 ‘Encounters’에선 불이 핵심 재료다. 작가는 특정한 모양으로 잘라낸 한지의 가장자리를 향불이나 촛불에 태우고, 그슬린 형상들을 겹쳐가며 화면을 채운다.

또 하나의 대표작인 ‘Mountain’ 연작은 새벽녘 안개가 낀 듯 은은한 산세를 담았다. 두 연작 외에도 총 50여개 연작 가운데 엄선한 작품 150여 점이 이번 모노그래프를 통해 펼쳐진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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