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절약하는 생활문화 정도로 인식되던 리커머스(중고 거래)가 새로운 커머스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포토카드와 한정판 굿즈, 중고 스마트폰 등 취향과 가치에 기반한 거래 확산으로 경제적 가치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에서 사용된 제품을 찾는 해외 소비자가 늘면서 K-리커머스는 새로운 수출산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리커머스 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이해도는 여전히 낮은 듯하다. 리커머스는 상품 거래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검수·수리·물류·플랫폼 등 연관 산업을 육성하며, 국경을 넘어 상품과 돈의 이동을 만들어 낸다.
중국과 일본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이미 관련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중국은 중고품을 일반 신제품과 다른 거래 유형으로 보고 별도의 세제체계를 운영 중이다. 현재 중고품 판매에는 일반 상품과는 다른 2%의 간이과세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중고품 유통 인프라 구축, 품질 평가와 거래 신뢰 체계 구축, 전문 거래 플랫폼 육성 등 관련 정책도 함께 펼치고 있다. 지방정부도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라 중고 명품과 스마트폰, 가전제품을 위한 보세구역 운영 등 해외 유통 거점을 조성 중이다.
일본 역시 리커머스 산업 육성을 공식화했다. 환경성은 올해 3월 ‘리유스(reuse) 등의 촉진에 관한 로드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리유스 시장을 4조 6000억 엔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24년 3조 5000억 엔에서 32% 늘리겠다는 것이다.
동 로드맵은 또한 일본 리커머스 제품의 해외 판매를 외화 획득과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으로 평가하고, 해외 유통 실태를 조사해 ‘Used in Japan’에 대한 신뢰를 높이겠다는 계획도 담고 있다.
반면 한국의 리커머스 시장은 이미 국경을 넘어 성장하고 있지만 제도는 산업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세제다. 리커머스 기업은 개인으로부터 상품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 매입세액 공제에 제약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제도는 없다. 결국 리커머스 기업들은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한다.
통관도 마찬가지다. 중고품은 사용기간과 상태, 수리 여부 등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증명할 기준이 없다. 중고품과 폐기물의 구분 문제까지 발생하면서 수출 기업이 불필요한 통관 리스크를 감수한다.
이러한 리커머스 수출과 관련된 문제는 개별 법령을 하나씩 고치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리커머스는 매입 단계의 세제, 거래 단계의 품질 검수 및 인증, 이동 단계의 물류 및 통관이 서로 연결된 산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커머스를 하나의 산업으로 정의하고 세제·품질·수출과 관련된 인프라 정책을 하나의 틀에서 연결하는 ‘리커머스 진흥법’ 제정이 필요하다.
진흥법에는 리커머스 산업의 정의와 사업자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중장기 산업 육성계획을 수립할 근거를 담아야 한다. 또한 리커머스 제품에 대한 의제매입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제품의 상태·품질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표준과 인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리커머스 제품의 특성을 반영한 통관 기준과 수출 물류체계를 구축해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해야 한다.
한국의 리커머스는 이미 성장하는 글로벌 시장을 가지고 있다. 번개장터의 글로벌 플랫폼 ‘번장글로벌’은 2026년 상반기 거래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했다. 국내 리커머스 관련 플랫폼들은 리커머스 제품은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리커머스 산업은 기업의 역량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이 정책 지원 없이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일본처럼 리커머스를 새로운 유통산업이자 수출산업으로 인정해야 한다. ‘리커머스 진흥법’은 그 전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글 글로벌리커머스산업협회 이신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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