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 전문가들조차 대규모 국제 미술전을 뜻하는 비엔날레를 보고 나면 녹초가 되곤 한다. 끝없이 펼쳐진 전시장에 모르는 작가의 작품 수백 점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 호추니엔(50)도 그랬다.
"비엔날레에 갈 때마다 작품을 다 못 볼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올해 자신이 예술감독을 맡은 광주비엔날레를 확 바꿨다. 아시아 최대 비엔날레인 이 행사의 올해 참여 작가는 43팀에 불과하다. 베네치아비엔날레(111팀)는 물론 2년 전 광주(72팀)보다도 크게 줄었다. 호추니엔은 "일반적인 비엔날레처럼 작가 하나하나를 잠깐 보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같은 작가의 작품을 여럿 배치해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도록 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전시관 '신체와 관계' 가운데에는 탁구대가 있고, 천장에서 물음표 깃발이 내려온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이 무력으로 진압된 뒤 율리우스 콜러가 만든 작품이다. 탁구는 두 사람이 경쟁하는 경기지만, 상대가 받아쳐 주지 않으면 경기가 끝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최경화 큐레이터는 "한 사람의 변화는 상대가 있어야 이어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5·18로 가족을 잃거나 다친 여성들의 모임 '오월어머니집'이 만든 작품 322점도 함께 볼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이 모여 역사가 되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 방 '풍경과 배움'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지역을 가꾸는 변화를 주목한다. 한국화의 대가 허백련(1891~1977)은 그림을 그리면서 농사를 짓고 차를 기르고 학교를 세웠다. 이 방에는 그가 무등산에서 기르던 춘설차를 실제로 마셔 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이어 영상 작품을 중심으로 한 네 번째 전시실 '우주와 변화', 투명한 비닐 풍선이 부풀었다 꺼지는 '공기와 발화'로 전시가 마무리된다. "변화는 결국 내 호흡에서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재클린 키요미 고크의 대규모 설치작품이 대미를 장식한다.

다만 '대만관 논란'의 여파는 개막일에도 계속됐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는 중국은 앞서 대만 측이 전시관 명칭을 ‘대만관(Taiwan Pavilion)’으로 하는 데 강력 항의하며 중국관 전시를 철수시켰다. 이날 행사장 밖에서는 대만관 명칭 사용에 반대하는 중국인들의 시위도 벌어졌다.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호추니엔 감독은 "본전시와 파빌리온 전시는 서로 상관없는 별개의 전시"라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관계자는 "본전시와 파빌리온이 별개인 건 맞지만, 호추니엔이 정치·사회적 요소를 즐겨 다룬 작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에도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본전시 외에 파빌리온 전시 27곳(국가관 16·기관관 11)은 광주 전역에서 열린다. 대만관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캐나다관은 양림동 이강하미술관, 스위스관과 오스트리아관은 동구 은암미술관, 이탈리아관은 광산구 동곡뮤지엄에 자리 잡았다. 중국관은 빈자리로 남았다. 본전시 입장료는 성인 2만원, 파빌리온은 무료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전남광주=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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