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챈 의과대학의 리보핵산(RNA) 치료제 연구소를 이끄는 필립 재모어 소장은 최근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로 옮기기로 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받기로 한 연구비 집행이 18개월이나 미뤄지고 있어서다. 그는 “연구실 규모를 줄여야만 했다”고 털어놨다.
그를 캐나다로 끌어들인 것은 캐나다 정부가 마련한 17억캐나다달러(약 1조6520억원) 규모 ‘글로벌 임팩트+연구인재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재모어 소장에게 연간 110만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수십 년 동안 세계 인재를 빨아들여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던 미국에서 인재들이 속속 빠져나오고 있다. 미국에 인재를 빼앗기는 현상을 일컫는 ‘두뇌유출’ 현상이 이제 미국의 문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캐나다는 지난달 28일 재모어 소장과 같은 미국 내 최고 수준의 학자 48명을 캐나다 21개 대학으로 한꺼번에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유명 천문학자인 세라 시거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컴퓨터 단백질 설계 분야의 브라이언 쿨먼 UNC채플힐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연구자 중 상당수는 미국의 연구 자금 지원 불확실성이 이동을 결정한 주요인이었다고 네이처지는 전했다. 지속가능성, 기후, 환경 등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싫어하는 분야의 연구진도 다수 포함됐다. 트럼프 정부를 비판해 온 예일대 역사학 부부인 티머시 스나이더와 마샤 쇼어 교수도 캐나다 토론토대로 둥지를 옮겼다.
유럽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올초 프랑스는 ‘과학을 위한 프랑스 선택’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기반을 둔 연구자 41명을 영입했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부부는 스위스 취리히대에서 가르칠 예정이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도 악재로 작용했다. 올 들어 트럼프 정부는 외국인 학생이 받는 F 비자와 교환 연구자를 위한 J 비자의 체류 기간을 4년으로 제한하는 방침을 공포했다. 학교를 마친 뒤 인턴십 등을 위해 추가 체류를 허용하는 임시 취업허가 제도(OPT)는 훨씬 제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미국 내 취업을 위한 전문직 취업(H-1B) 비자는 10만달러를 내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받은 노벨상 104개 중 37개가 외국 출신 미국 학자에게 돌아갔지만 앞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가 다양성(DEI) 관련 지원 내역을 조사한다며 감시 및 통제를 강화하고 학계 길들이기에 나선 것도 연구자의 반감을 사는 요인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미국 컬럼비아대가 반유대주의 대응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4억달러 규모의 연방 지원금을 철회했다. 이는 적지 않은 연구자의 실직으로 이어졌다.
중국에 적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자 귀국길에 오르는 중국계 연구자도 많다. CNN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국에서 중국 연구기관으로 완전히 이직한 과학자가 최소 85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미·중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중국을 택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오마르 야기 UC버클리 화학과 교수는 중국 칭화대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중국이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마이클 루벨 뉴욕시립대 교수는 미국의 인재 유출은 “전적으로 예측 가능했던 일”이라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린 파스퀘렐라 미국대학협회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미국이 연구자뿐 아니라 그들의 아이디어, 발견, 혁신까지 잃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