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달 사무직 근로 우수자로 홍길동 사원이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달 총 80시간의 연장근로를 기록하며 회사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한 중소기업의 '사내 소식'이다. 게시물에는 회사 로고가 박힌 현수막 앞에서 직원이 상장을 들고 서 있다. 현수막에는 '사무직 이번 달 근로 우수자(야근 만근 80시간)'라는 문구가 적혔고, 대표로 보이는 남성이 웃으며 옆에 서 있다. 얼핏 보면 실제 회사에서 장시간 근무한 직원을 포상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게시물은 중소기업 직장인들이 한 번쯤 접해봤을 법한 장면을 과장해 이어간다. 야근할 때마다 도장을 찍어 10개를 채우면 반차, 15개를 채우면 또 반차, 20개를 채우면 연차를 주는 '야근 도장판'이 대표적이다. 회사 측은 이를 가장 먼저 완성한 직원을 두고 "바쁜 업무 일정 속에서도 맡은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덕분에 원활한 업무 진행에 큰 도움이 됐다"고 치켜세웠다.
육아휴직자를 주제로 한 게시물도 있다. "육아휴직 기간은 정상 출근일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별도 사무실에서 근무하도록 안내하는 공지가 올라왔고, 실제로 직원들이 '육아휴직자 전용 사무실'이라고 적힌 공간에서 일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사내식당 게시물에는 반찬 몇 점이 놓인 식판과 함께 '정량 배식, 다른 사우들이 밥을 못 먹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추석 명절 상여금을 소재로 한 게시물도 비슷한 결이다. 직원당 3만원을 지급한 이체 내역을 공개하면서 "입사일을 기준으로 실제 근무 개월 수를 환산해 상여금이 차감 지급된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적은 상여금마저 근무 개월 수에 따라 다시 나눠 지급하는 상황을 희화화한 것이다.
각각의 장면은 과장돼 있지만 소재 자체는 낯설지 않다. 장시간 야근을 성실함으로 포장하거나, 휴가·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직원을 눈치 보게 만드는 분위기, 작은 복지나 상여금을 두고도 생색을 내는 조직문화 등 일부 직장인들이 온라인에서 꾸준히 토로해온 '웃픈 현실'을 한 회사 안에 몰아넣어 풍자한 셈이다. 채용과 인사, 복지, 사내식당, 포상 제도까지 설정이 이어지다 보니 계정 전체는 하나의 실제 회사처럼 구성돼 있다.
댓글에서도 처음부터 풍자임을 알아챈 반응과 실제 회사로 받아들인 반응이 뒤섞였다. "야근을 해야 연차를 주는 거냐", "진짜 이 정도로 식사를 주느냐", "3만원 줄 거면 그냥 주지 말아라", "이걸 잘했다고 올린 건 아니겠죠?" 같은 반응이 달린 반면 "AI인 줄 알았다", "콘셉트 계정 아니냐"며 설정을 눈치챈 이용자들도 있었다.
상당수가 눈치 채고 있듯, 실제로 이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가상의 중소기업과 직장 문화를 만들어 올리는 콘셉트 계정이다. 사무실과 직원, 현수막, 상장 등 게시물 속 장면 상당수가 AI로 만들어졌고 계정에도 'AI 콘텐츠' 표시가 붙어 있다.
풍자라는 전제를 알고 보면 과장된 직장 문화를 비트는 콘텐츠지만, 문제는 일부 이용자가 이를 실제 회사의 사내 제도나 복지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AI로 만든 인물과 사무실, 문서 이미지가 실제 사진처럼 정교해지면서 젊은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AI 이미지가 가상의 회사나 풍자 콘텐츠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다루면서 현장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붙이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최근 한 네이버 블로그에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소개하는 글이 올라왔다. 대표 이미지에는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거대한 검은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도로에는 소방차 수십대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만 보면 상당한 규모의 화재가 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불이 난 것은 맞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진화했고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블로그에 실린 사진은 실제 현장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AI로 만들어진 이미지였다.
해당 지역에 사는 A씨는 포털에서 이 게시물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사진만 보고 동네에서 큰불이 난 것으로 생각해 곧바로 관련 뉴스를 찾아봤다는 것이다. A씨는 "처음 사진을 봤을 때는 아파트 주변 전체가 난리가 난 줄 알았다"며 "실제 기사를 찾아보니 내가 본 사진과 상황이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해당 블로그에는 비슷한 형식의 게시물이 반복해서 올라와 있었다. 김해·화성·김포 등에서 발생한 공장 화재와 산불, 아파트 화재 등을 소개하면서 검은 연기와 불길, 소방차가 가득한 이미지를 함께 배치하는 방식이다. 실제 사고가 있었던 장소와 날짜에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을 덧붙이는 셈이다.
이런 콘텐츠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꾸며낸 허위정보와는 조금 다르다. 화재가 발생한 지역과 날짜, 사고 자체는 사실인 경우가 많아 이용자가 검색하면 실제 사건도 확인된다. 그렇다 보니 함께 붙은 AI 이미지까지 실제 현장을 담은 사진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가 지난해 공개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 세계 1만2500여명이 참여한 약 28만7000건의 이미지 판별 결과를 분석한 결과, AI 생성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를 구분한 평균 정답률은 62% 수준이었다. 특히 사람 얼굴보다 자연·도시 풍경에서 AI 생성 여부를 가려내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지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진 데다 실제 장소명과 날짜, 기사체 문장까지 함께 붙으면 이용자가 게시물 전체를 사실로 받아들일 여지도 커진다. 앞서 천호동 화재 사례처럼 사건 자체가 실제로 존재할 경우 함께 제시된 이미지의 출처까지 따로 확인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혼동을 줄이기 위해 AI 생성물임을 알리는 표시도 도입되고 있다.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이미지나 영상 등에 AI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방식이다. 다만 원본 게시물에 표시가 붙어 있어도 이미지가 잘리거나 다른 커뮤니티·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표시가 함께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일부 플랫폼에서는 AI로 생성되거나 편집된 게시물에 'AI 콘텐츠'라는 안내 문구를 붙이고 있지만, 이용자가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실제 사건이나 장소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이미지가 먼저 소비되는 만큼 AI 생성 여부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AI 콘텐츠 표시가 붙어 있더라도 이용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면 표시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뉴스나 사고·재난처럼 사실 여부가 중요한 콘텐츠는 AI 생성 여부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한니 파리드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최근 강연에서 "손가락이 여섯 개이거나 얼굴이 이상한 걸 보고 AI를 알아채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이미지들은 극도로 사실적"이라며 "온라인에서 읽고 보고 듣는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기 매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새로운 현실"이라고 경고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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