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 인프라 전문 사모펀드(PEF) 운용사 맥쿼리자산운용의 가비아 공개매수가 행동주의펀드 공세에 밀려 좌초됐다. 일종의 공식처럼 통용되던 공개매수 방식의 상장사 인수합병(M&A)이 저지된 첫 사례다.
맥쿼리의 특수목적법인(SPC) 디씨케이인베스트먼트는 지난 두 달간 가비아 공개매수를 진행한 결과 발행 주식의 5.4%만 응모했다고 18일 공시했다. 최소 매수 조건인 24.3%를 채우는 데 실패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 가비아는 시가총액이 5000억원대인 클라우드·정보기술(IT) 기업이다. 얼라인파트너스와 미리캐피털 등 행동주의펀드들은 중복 상장 구조로 주가가 저평가됐다며 이를 해소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선 얼라인 측 후보 두 명이 가비아 이사회에 진입하기도 했다.맥쿼리는 행동주의펀드들의 타깃이 된 가비아의 ‘백기사’로 7월 등판했다. 공개매수 전 김홍국·원종홍 대표 등 창업자들의 지분 24.4%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도 체결했다. 공개매수 가격은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차이를 두지 않고 주당 4만8000원으로 정했다. 공개매수 성공을 전제로 최대주주와의 주식 매매를 종결하는 조건도 걸었다. 그러나 공개매수가 실패해 최대주주와 맺은 SPA는 해지될 처지에 놓였다. 딜이 최종 결렬되면 행동주의펀드에 의해 M&A가 무산된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일반주주는 지분 청산하는데…최대주주만 경영권 그대로 유지"
얼라인과 미리캐피털의 반발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 충돌 우려가 있는 거래 구조에서 비롯됐다. 창업자들은 보유 지분을 맥쿼리에 매각하지만, 세금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 매각 대금을 가비아의 모회사가 되는 디씨케이인베스트먼트에 고스란히 재투자한다. 가비아를 맥쿼리로 넘기고도 가비아의 모회사를 통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일반주주는 공개매수에 응해 주식을 팔고 떠나거나 환금성이 떨어지는 비상장사 소액주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얼라인과 미리캐피털이 “지배주주의 폐쇄기업화(상장폐지) 거래여서 구조적 이해상충 우려가 크다”며 공개매수에 반발한 이유다.
가비아 이사회는 공개매수에 ‘중립’ 의견을 내세우며 사실상 얼라인 측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독립이사와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거래 조건의 공정성 등을 검토한 결과 이사회에 중립 의견을 밝힐 것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적대적 M&A가 아니고선 이사회가 지배주주 측 공개매수에 중립을 표명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특별위와 이사회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데는 개정 상법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넓히고, 이사에게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를 부과했다. 이 법에 따라 올해 초 법무부는 지배주주의 상장폐지 거래에서 이사의 행위 규범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지배주주가 주도하는 공개매수로 일반주주의 이익 침해 가능성이 있다면, 이사가 일반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특별위 설치와 의견 표명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PEF업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 이후 1년 만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바뀌었다”며 “소액주주 눈높이가 치솟고 행동주의펀드와 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견제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맥쿼리는 김 대표 등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유지한 채 공개매수를 재추진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얼라인은 입장문을 내고 “향후 자진 상장폐지를 다시 추진한다면 현금을 받고 투자 관계가 종료되는 일반주주에게 기존보다 더 나은 조건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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