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열분해유 생산의 절반가까이를 담당하는 지평선에너지의 창업자가 한 투자사로부터 85억원을 투자받은 지 약 2년 만에 회사 지분 전부를 넘겨줄 처지에 놓였다. 투자사가 대표의 사생활을 약점으로 잡아 자금을 쓰게 한 뒤 계약상 불리한 조항을 이용해 지분을 가져가려 한다는 게 회사 측 주장이다. 금전적 보상을 약속한 투자사 측의 회유로 이 과정에 참여했다는 당시 지평선에너지 부대표는 현재 공갈 등 혐의로 구속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투자조합은 이미 지분 전량을 가져가겠다고 통지한 상태로, 다음달이면 지분 이전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지평선에너지는 전남 영광과 전북 군산에서 폐비닐 등을 활용해 ‘재활용 석유’로 불리는 열분해유를 만드는 업체다. 영광과 군산에서 총 14기의 열분해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회사 측은 현재 국내 열분해유 생산량의 약 49%를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올해 매출 추정치는 약 160억원, 보조금 등을 더한 순이익은 160억원에 달한다. 회사측은 높은 수익성과 성장성이 투자사인 투자사인 팍스톤매니지먼트 측의 관심을 끈 배경으로 보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김재흥 지평선에너지 대표의 개인사였다. 2024년 초 사적인 문제로 한 회사 여직원이 김 대표를 고소하겠다고 하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시 부대표였던 최씨는 합의금의 명목으로 약 10억원을 받아갔다. 이 돈은 회사 장부에 대표이사 가지급금으로 남았다. 이후 최씨는 10억원을 이용한 사실을 두고 “횡령으로 형사고발할 수 있다”며 팍스톤 측 자금을 사용하도록 김 대표를 압박했다. 실제 제3자를 통해 형사고발 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기술보증기금 보증을 활용한 약 71억원의 은행대출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이를 포기하고 2024년 8월 팍스톤이 주도한 에코리사이클링신기술투자조합으로부터 85억원을 조달했다.
계약에는 회사가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 등을 김 대표 개인도 함께 책임지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대표가 자기 돈으로 회사 빚을 대신 갚더라도 회사에 그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조합이 회사 지분을 가져갈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기한이익 상실’이었다. 조합은 지난 5월 HD현대케미칼이 지평선에너지와의 거래를 일시 중단한 점 등이 기한이익 상실 사유가 된다며 조기상환과 담보 실행을 예고했다. 이후 팍스톤측은 지난 8월 김 대표가 보유한 지분 전량을 약 93억9000만원으로 평가해 가져가겠다고 통지했다. 김 대표 측은 HD현대케미칼의 거래 중단은 설비 수리에 따른 한 달짜리 일시적 조치였고 다른 납품업체에도 같은 내용이 적용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후 설비 수리가 끝나면서 거래도 정상적으로 재개됐다.
김 대표는 애초부터 회사를 뺏기 위한 계획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대표 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인물은 부대표였던 최씨다. 최씨는 지난 8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공갈, 협박 등) 혐의로 구속돼 전주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최씨는 팍스톤 측 직원으로부터 회사 인수를 도우면 향후 공장 운영을 맡기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지시에 따라 김 대표에게 가지급금을 빌미로 형사고발 가능성을 전달하고 지분 담보 설정에 필요한 서류를 내도록 압박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금 흐름도 확인됐다. 팍스톤은 지난해 4월 최씨가 대표인 한양산업에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2750만원을 지급했다. 최씨는 같은 날 이 돈 전액을 김 대표의 횡령 관련 고발에 관여한 변호사 계좌로 송금했다. 최씨는 검찰에서 팍스톤이 형사고발 관련 변호사 비용을 지원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처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 측은 대표 개인의 약점을 이용해 특정 자금을 사용하도록 한 뒤 연대책임과 구상권 포기, 지분 전량 담보 등 불리한 계약조건을 받아내고 이를 토대로 경영권까지 확보하려 한 일련의 과정이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보고 금융감독원에 불공정거래 조사를 요청했다. 금감원은 현재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사건을 검토하고 있다.
논란은 팍스톤이 결성한 에코리사이클링신기술투자조합과 같은 신기투의 제도적 허점으로도 번지고 있다. 과거 벤처투자조합이 대표 개인사를 문제삼아 회사를 뺏는 일이 반복되자 벤처투자조합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투자받은 기업이 져야 할 의무를 대표이사 등 제3자에게 함께 부담시키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반면 신기술사업투자조합에 적용되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에는 이에 상응하는 금지 규정이 없다. 국회에도 관련 자료가 제보됐다. 한 의원실은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규제 차이와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의 투자 관행을 문제 삼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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