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오후 8시가 되면 홍콩 빅토리아하버 양쪽의 고층 빌딩에서 레이저와 조명이 쏟아졌다. 홍콩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침사추이 해변에 서서 봤을 ‘심포니 오브 라이트(A Symphony of Lights)’다. 지난 17일 찾은 침사추이의 야경은 달랐다. 음악도, 레이저도 없었다. 22년 동안 홍콩의 밤을 밝혀온 불빛이 꺼진 것이다.
홍콩 관광사무국은 지난 9일부터 심포니 오브 라이트 공연을 별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중단했다. 2004년 시작해 홍콩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은 공연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일시적인 중단이 아니다. 홍콩 정부가 20년 넘게 이어온 공연을 퇴장시키고 새로운 야간 관광 콘텐츠로 교체하기로 했다.
대신 홍콩 정부가 택한 것은 ‘빛과 그림자 여행’ 형태의 새로운 공연이다. 중추절과 핼러윈, 크리스마스 등 시기에 따라 내용과 장소를 바꾼다. 매일 볼 수 있는 관광상품이 아니라 특정 기간 홍콩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빅토리아피크 같은 기존 관광명소에 새로운 빛 공연을 입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 센트럴에서 선보인 몰입형 빛 공연이 콘텐츠를 빠르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홍콩 문화체육관광국은 특히 재방문객을 겨냥했다. 처음 홍콩을 방문하면 빅토리아피크를 찾지만 여러 차례 온 관광객에게는 더 이상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가 아닐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새로운 야간 콘텐츠를 계속 입혀 ‘다시 갈 이유’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홍콩 관광산업은 이미 코로나19 충격에서 상당 부분 벗어났다. 지난해 홍콩 방문객은 4990만 명으로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홍콩 정부는 올해 관광객이 53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관광객 숫자를 되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체류기간과 소비를 늘리는 쪽으로 관광 전략을 바꾸고 있다. 최근 발표한 정책방향에서도 대형 이벤트와 관광을 결합해 관광객의 체류기간과 지출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홍콩에서 한류가 소비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 중심축 가운데 하나였던 K뷰티의 존재감이 약해진 자리를 음식과 외식 경험이 파고들고 있다. 임대료가 비싼 침사추이 핵심 상권에서도 한국 음식점들이 자리를 잡았다. 현장에서 만난 외식업계 관계자들은 홍콩 소비자들이 주거비 부담은 크지만 외식과 경험에는 상대적으로 지갑을 여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맛은 한식당 밖으로도 나가고 있다. 홍콩 맥도날드는 지난 17일 한국에서 개발한 고추장 버터를 활용한 치킨버거와 맥너겟 소스를 내놨다. 소스는 한국맥도날드가 개발하고 동원홈푸드가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한다. CJ제일제당이 공급하는 추로스와 제주 감귤 원료를 활용한 음료도 메뉴에 들어갔다. 글로벌 외식기업의 아시아 메뉴 안으로 한국 식품기업의 공급망이 들어간 셈이다.
홍콩 정부는 올해부터 대형 이벤트를 계절별로 묶는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를 축제·대형 이벤트 시즌으로 정하고 중추절·핼러윈 행사부터 와인앤다인 페스티벌, 윈터페스트, 몰입형 빛 공연, 새해 카운트다운 등을 연속적으로 배치한다. 관광객에게 ‘홍콩에 한 번 가봤다’가 아니라 계절마다 다시 방문할 이유를 주려는 시도인 셈이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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