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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를 끄고, 새로운 빛을 켜다…도시의 밤을 바꾼 조명 [조수민의 빛이 채우는 시간]

입력 2026-10-02 10:42  

샹들리에를 끄고, 새로운 빛을 켜다…도시의 밤을 바꾼 조명 [조수민의 빛이 채우는 시간]

궁전의 샹들리에, 도시의 PH
여행지에서 해질 무렵 거리를 산책할 때, 나는 주변 건물들의 창문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있다. 해가 진 이후 이 지역의 사람들은 어떤 빛 아래서 사는지는 조명디자이너의 큰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코펜하겐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어느 건물의 창이었다. 클래식한 석조 외관과 화려한 몰딩으로 만들어진 창문 안을 비추고 있는 것은 화려한 샹들리에가 아니라 극도로 절제된 모던 펜던트였다. 광원을 갓 속에 감춘 낮고 단정한 형태, 그 대비가 덴마크라는 나라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 같았다.

덴마크는 여전히 왕실이 존재하는 나라다. 오래된 궁전과 유서 깊은 호텔의 연회장에는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지금도 매달려 있다. 수백 개의 전구가 수천 개의 유리 조각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빛을 내쏘고, 그 반짝임은 여전히 충실하게 한 나라 왕실의 영광과 부를 과시한다.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궁전을 조금만 벗어나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정집의 식탁 위, 시청의 로비, 도서관의 열람석, 동네 카페의 창가. 그 천장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PH 조명이 당연하다는 듯 걸려 있다. 특별한 집이라서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어서 오히려 눈에 띄는 조명이다. 여행 내내 나는 이 도시의 천장에서 같은 실루엣을 수도 없이 다시 만났다.

왕실이 있고 궁전에는 샹들리에가 걸린 나라가, 어떻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모던의 나라'가 되었을까. 이것은 취향의 역사가 아니다. 어떤 특별한 한 사람이 평생을 걸고 벌인 싸움의 결과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은 이 글에 이미 언급되었다.
샹들리에를 괴물이라 부른 사람
그 이름은 폴 헤닝센(Poul Henningsen), 줄여서 PH라 불리는 사람이다. 루이스폴센이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유명한 디자이너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 인물은 단순한 조명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언론인이었고, 건축 비평가였고, 반파시즘 운동가였다. 1920년대에 그는 문화비평지 〈크리티스크 레비(Kritisk Revy)〉의 편집자였다. '비판적 검토'라는, 그 이름부터가 선전포고인 잡지로, 그는 기득권의 조명 문화를 글로 맹렬하게 두들겼다. 그의 펜이 겨눈 핵심 표적이 바로 크리스탈 샹들리에였다.

샹들리에는 당시 가장 비싸고 화려한 조명이었다. 크리스탈이 촘촘히 박혀 흔들리는 샹들리에는 높은 천장 한 가운데 매달려 사방으로 반짝이는 빛을 반사했다. 빛을 내던 수십개의 양초는 전기의 시대가 열리자 작은 백열전구로 대체되었다. 기존보다 더욱 밝은 빛을 내는 샹들리에는 부와 함께 기술의 상징까지 더해져 사람들이 더욱 선망하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폴 헤닝센은 그 샹들리에를 ‘괴물’이라 불렀다. 그의 비판은 셋으로 요약된다. 첫째, 기술의 지체다. 전구라는 새로운 광원이 나왔는데 여전히 촛불 시대의 샹들리에 틀에 전구만 갈아 꽂는 것은 새 기술에 대한 모독이자 디자인의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둘째, 천박한 과시다. 샹들리에는 빛을 내는 도구가 아니라 부와 계급을 과시하는 유리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 셋째, 빛의 폭력이다. 제어되지 않은 채 사방으로 쏘아대는 눈부심은 인간의 눈을 피로하게 하고 실내의 아늑함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인간적인 반전이 하나 숨어 있다. 정작 청년 헤닝센이 처음 의뢰받아 만든 조명이 놋쇠로 된 여덟 구짜리 전통 샹들리에였다는 사실이다. 훗날 거장이 된 그가 그 첫 작품을 다시 마주하고는, 미친 자전거 수리공이 대충 이어 붙인 괴물 같다며 스스로를 향해 독설을 날렸다고 전해진다. 나는 이 일화가 그의 어떤 걸작보다 좋다. 그의 투쟁은 바깥의 적을 부수기 이전에, 자신의 과거까지 깨부수는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 조명계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새로 개발된 백열전구가 너무 밝다는 점이었다. 양초나 오일램프와 달리, 깨끗한 유리 속 가느다란 필라멘트가 가열되며 빛을 내는 백열전구는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밝고 눈부셨다. 그냥 쓰자니 불편했고 무언가로 감싸자니 빛의 효율이 떨어졌다. 북유럽의 밤은 너무 길고 어두웠고, 전구 하나의 불빛은 너무나 귀했던 시절이었다.


폴 헤닝센이 평생에 걸쳐 다듬은 PH 조명은 그 세 가지 비판에 대한, 동시에 이 딜레마에 대한 해답이었다. 핵심은 대수나선 곡선을 이용한 여러 겹의 갓 시스템이다. 전구의 거친 직사광이 사람의 눈에 단 한 번도 직접 닿지 않도록, 빛이 반드시 갓의 곡면에 한 번 이상 반사된 뒤 부드러운 산란광으로만 아래로 떨어지게 계산했다. 갓의 안쪽에는 미세한 붉은 기를 입혀 전구의 차가운 파장을 눈이 가장 편안해하는 따뜻한 색으로 보정했다. 여행 중 그 아래 식탁마다 놓여 있던 부드러운 가장자리의 빛 원은, 우연이 아니라 백 년 전에 계산된 결과였다.

폴 헤닝센이 했던 모든 노력은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노동자의 식탁이든 부잣집이든, 밤이 되면 누구나 눈이 피로하지 않은 건강하고 평등한 빛을 누려야 한다는 것. 결국 그의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광학의 성취이기 이전에 사회적 발명이었고, 일종의 시각적 복지였다. 시청과 도서관과 가정집에 같은 조명이 걸려 있는 오늘의 풍경은, 그 이념이 성공했다는 물증이다.


그 삼중 갓 시스템이 세상에 나온 것이 1926년이다. 그 전해 파리 국제장식미술전에서 금메달을 받은 '파리 램프'를 다듬어 완성한 결과였다. 그리고 〈크리티스크 레비〉의 첫 호가 나온 해도 1926년이다. 잡지와 램프가 같은 해에 나왔다. 그에게 펜과 갓은 같은 무기였다. 그러니까 올해가 딱 백 년이다. 루이스폴센은 이를 기념하는 컬렉션을 내놓았고 최근에는 서울에 루이스폴센의 새로운 쇼룸을 오픈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아름다운 그 조명들을 보며 감탄과 축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질문들이 떠올랐다.
백 년 뒤, 헤닝센이라면
만약, 폴 헤닝센이 살아 있다면 지금을 보며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헤닝센이 샹들리에를 쳤던 첫 번째 논리가 '새 광원이 나왔는데 옛 틀에 꽂아 쓴다'는 것이었다면 지금 루이스폴센을 포함해 수많은 20세기의 브랜드 조명들을 LED의 시대에, 여전히 백열전구를 위해 설계된 형태를 그대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헤닝센의 논리를 헤닝센의 유산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쩌면 그것도 기술의 지체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는 청년 시절의 자기 샹들리에를 괴물이라 불렀던 사람이니까.
한편으로는 이들 회사의 끊임없는 노력도 보인다. PH시리즈는 조금씩 진화하며 이제는 전선이 없는 포터블 버전도 만들어지고 있다. 효율이 좋은 LED와 충전 배터리라는, 헤닝센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이 만나야만 성립하는 물건이다. 광원이 바뀌자 조명이 놓일 수 있는 자리의 자유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지체가 아니라 확장이다.

확장은 한 가지 더 있다. 우리에게 '아이코닉한 펜던트의 브랜드'로만 익숙했던 이름들 ㅡ루이스폴센, 플로스, 아르떼미데 등ㅡ 이 지난 십수 년간 조용히 넓혀온 영역이 바로 건축화조명이다. 천장이나 벽의 구조 속에 광원을 숨기고 빛만 남기는 조명. LED라는 광원과 발전된 제어 시스템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분야다.

흥미로운 것은 이 흐름이 지금 한국의 주거 시장에 도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의 특화 설계에서 이 이름들을 만나는 일이 부쩍 늘었다. 화려한 펜던트 하나가 아니라, 조명이 '기구'에서 '공간의 일부'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광원을 감추고 빛만 남긴다는 발상을 제품의 차원에서 먼저 관철한 사람이 헤닝센이라면, 이 확장은 그의 노선에서 또 한 단계 나아간 지점이다.
끝까지 지켜진 것
그러나 여기서 두 번째 아이러니를 피할 수 없다. 이 브랜드들이 그렇게 확장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다름 아닌 '과시'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루이스폴센은 늘 멋진 카피와 함께 소비된다. 빛을 디자인하다, 북유럽 감성, 프리미엄 조명.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매끄러운 마케팅이 지워버린 것이 있다. PH가 태어난 자리의 거칠고 뜨거운 맥락이다. 대니시 모던은 미니멀리즘이라는 취향이 아니라, 그 시대 기득권의 과시에 맞선 선전포고였다. 그 조명이 아름다운 이유의 절반은 곡선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그 곡선이 겨누었던 것에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조명의 가격표는, 대중의 식탁을 위해 설계된 물건이 아니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작은 펜던트 한 대가 웬만한 가전제품 값이고, 아티초크는 작은 자동차 한 대 값에 가깝다. 그래서 오늘의 PH는 헤닝센이 겨눴던 두 번째 표적, 과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의 거실에서 그 조명은 빛을 내는 도구이기 이전에, 취향과 여유를 증명하는 물건으로 소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백 년 전의 유리 덩어리가 했던 역할과 그리 멀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조명을 계속 좋아하고 존중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의 표적 중 세 번째, 빛의 폭력에 대한 답만은 백 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PH 조명 아래에 실제로 앉아 보면 안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전구가 보이지 않는다. 켜져 있는데 광원이 없다. 빛은 있는데 눈부심이 없다. 취향은 마케팅으로 만들 수 있지만, 눈이 편안하다는 감각은 계산으로만 만들 수 있다. 비싸게 팔리는 동안에도 그 계산만은 정직하게 지켜졌다. 값을 지불한 사람에게든, 남의 집 창문으로 올려다본 사람에게든, 그 빛이 눈에 편하고 공간을 아늑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나는 폴 헤닝센이 한 브랜드의 디자이너로만 생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가 남긴 진짜 유산은 대수나선의 갓도, 삼중의 층도 아니다. 자기 시대의 샹들리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깨어부술 수 있는 용기,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집요하게 연구하고 답을 만들어내는 노력, 그리고 비판의 대상에는 자신의 예전 작업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염치까지. 이러한 그의 태도는 매 세대가 다시 꺼내보아야 하는 자세다..
백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질문을 우리 쪽으로 돌려보면 이렇게 된다. 헤닝센의 시대에 괴물은 백열전구를 꽂은 크리스탈 샹들리에였다. 그렇다면 게으르고 천박하고 불편한 우리 시대의 샹들리에는 무엇인가. 의미없이 효율만으로 반복 설치된 천장조명들일까, 꺼질 줄 모르는 원색의 간판과 건물을 뒤덮는 전광판인가, 아니면 브랜드로 과시되는 조명들인가.

빛을 만들고 또 빛에 대해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늘 서성이고 있다. 다만 하나는 안다. 헤닝센이라면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대답이 표적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백 년을 기념하는 가장 헤닝센다운 방식은, 그의 램프를 한 대 더 사는 일이 아니라 그 질문을 다시 꺼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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