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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名醫), 어향숙 [더 라이프이스트-한시공방(漢詩工房)]

입력 2026-09-29 10:02   수정 2026-09-29 13:46



[원시]
명의(名醫)

어향숙

요즘 사람들 병은 모두 속병인 겨
말을 못해서 생기는 병이지
사람들 말만 잘 들어줘도
명의 소리 듣는데 그걸 못 혀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자기 말만 들으래
내가 의사 양반 주치의인가?

홍씨 할머니
처방전 들고 약국 들어서며
혼잣말처럼 하신 말씀
내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태헌의 한역]
名醫(명의)

今世人病皆內病(금세인병개내병)
原因來自不吐言(원인래자불토언)
善聽人言爲名醫(선청인언위명의)
醫爲聽言是勞煩(의위청언시로번)
慣曰勿言唯聽我(관왈물언유청아)
余何醫員主醫員(여하의원주의원)
洪婆持箋入藥局(홍파지전입약국)
獨白不離吾耳邊(독백불리오이변)

[주석]
* 名醫(명의) : 명의, 이름난 의사.
* 今世人病(금세인병) : 요즘 세상 사람들의 병. / 皆(개) : 모두, 다. / 內病(내병) : 속병, 마음의 병.
* 原因(원인) : 원인. / 來自(내자) : ~로부터 오다, ~에서 나오다. / 不吐言(불토언) : 말을 토해내지 못하다, 말을 털어놓지 못하다.
* 善聽人言(선청인언) :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다. / 爲名醫(위명의) : 명의이다, 명의가 되다.
* 醫爲(의위) : 의사들은 ~라고 여기다. / 聽言是勞煩(청언시로번) : 말을 듣는 것은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이다. ‘是’는 ‘~이다.’라는 뜻이다.
* 慣曰(관왈) : 습관적으로 말하다, 버릇처럼 말하다. / 勿言(물언) : 말하지 말라. / 唯(유) : 오직, 다만. / 聽我(청아) : 나의 말을 들어라.
* 余何(여하) : 내가 무슨, 내가 어찌. / 醫員主醫員(의원주의원) : 의사(醫師)의 주치의(主治醫)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 洪婆(홍파) : 홍씨 할머니. / 持箋(지전) : 처방전을 들고, 처방전을 가지고. 역자는 ‘箋’을 처방전(處方箋)을 약칭한 말로 사용하였다. / 入藥局(입약국) : 약국에 들어가다.
* 獨白(독백) : 혼잣말, 혼잣말하는 소리. / 不離(불리) : ~을 떠나지 않다. / 吾耳邊(오이변) : 나의 귓가, 나의 귓전.

[한역의 직역]
명의

요즘 세상 사람들의 병은 모두 속병인데
원인은 말을 털어놓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거야
남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명의가 되는데
의사들은 말 들어주는 것을 성가신 거라 하네
습관처럼 ‘말하지 말고 내 말만 들으시오.’라니
내가 무슨 의사의 주치의란 말이냐?
홍 할머니가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들어서며
혼잣말하는 소리가 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한역노트]
귓전을 떠나지 않는 말

어향숙 시인의 「명의」를 처음 읽었을 때, 역자는 이 시가 그저 재치 있는 풍자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약사이자 시인인 작가가 실제로 겪었을 어느 하루의 풍경, 그 안에 담긴 숨결이 행간마다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의 첫 구절은 단호하다. “요즘 사람들 병은 모두 속병인 겨 / 말을 못해서 생기는 병이지.” 역자는 이 구절을 옮기면서, ‘속병’이라는 우리말이 지닌 이중의 무게를 어떻게 한자로 담아낼 것인가를 오래 고민하였다. 속병은 몸속의 병이면서 동시에 마음속에 쌓인 응어리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둘을 굳이 나누지 않는다. 말을 하지 못해 쌓인 마음의 응어리가 결국 몸의 병으로 드러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익히 알면서도 자주 잊고 사는 진실이 아닌가! 그리하여 역자는 애초에는 ‘속병’을 ‘심병(心病)’으로 옮겼다가 말뜻 그대로 ‘내병(內病)’으로 고쳤다.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실은 특정한 증상보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문턱을 넘는다. 혈압약을 타러 와서도, 소화제를 사러 와서도,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식 이야기, 배우자를 먼저 보낸 이야기, 무릎이 쑤셔서 잠을 설친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진단서에 기록되지 않지만, 그 사람의 하루를 이루는 실질적인 무게이다.

시는 중반부에서 날카로운 반전을 이룬다. “사람들 말만 잘 들어줘도 / 명의 소리 듣는데 그걸 못 혀 / 아무 소리 하지 말고 / 자기 말만 들으래.” 역자는 이 대목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아무 소리 하지 말고”를 오래도록 고민한 끝에 ‘勿言(물언)’이라는 단 두 글자로 옮겼다. 환자의 말을 잘라내고 자신의 지시만을 전달하는 태도, 그것이 오늘날 진료 현장에서 마주치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전하는 데는 간략한 말일수록 더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러한 풍경은 특정 의사 개인의 무성의함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는 언제부턴가 ‘3분 진료’라는 말로 요약되어 왔다. 밀려드는 환자, 수가(酬價) 구조에 얽매인 병원 경영 등과 같은 조건 속에서 의사가 환자 한 사람의 사연을 온전히 들어줄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다. 시인이 포착한 것은 의사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이 구조가 만들어 낸 씁쓸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되묻는 이는 시인이 아니라, 진료실에서 막 나온 그 환자, 바로 뒤에 등장하는 홍씨 할머니이다. “내가 의사 양반 주치의인가?”라고 한 이 구절은, 의사에게 제 사연 한 자락 풀어놓을 새도 없이 “말하지 말고 내 말만 들으라”는 말을 듣고 진료실을 나선 할머니의 억울함이 고스란히 담긴 반문이다.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의사가 도리어 환자에게 듣기만을 요구하니, 할머니는 마치 자신이 의사의 말을 받들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것 같다고, 쓴웃음 섞인 하소연을 풀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소연은 진료실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처방전 한 장에 실려 약국으로 옮겨 온다.

시의 마지막 대목은 이 시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아픈 장면이다. “홍씨 할머니 / 처방전 들고 약국 들어서며 / 혼잣말처럼 하신 말씀 / 내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역자는 이를 “洪婆持箋入藥局(홍파지전입약국), 獨白不離吾耳邊(독백불리오이변)”으로 옮겼다. 앞서 “말하지 말고 내 말만 들으라”던 의사의 말도, “내가 의사 양반 주치의인가?”라던 반문도, 실은 모두 이 할머니가 약국 카운터 앞에서 혼잣말처럼 풀어놓은 넋두리였음을, 이 두 구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獨白(독백)’이라는 두 글자를 고르면서, 역자는 이 말이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향한 것이라는 이중성을 살리고 싶었다. 혼잣말이되, 그 말은 결국 시인이자 약사인 화자의 귀를 향해 던져진 것이었으니까.

이 마지막 두 구절이야말로 이 시를 단순한 풍자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점이다. 시인은 홍 할머니의 넋두리를 귀찮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에는 체념도, 짜증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의 말을 온전히 받아 안은 자의 무게가 있을 뿐이다. 진료실에서는 끝내 다 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말이, 약국 카운터 앞에서야 비로소 임자를 만난 셈이다. 역자는 이 대목을 옮기며, 시인이야말로 이 시 속에서 스스로 ‘명의’가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처방전에 적힌 약을 조제해 주는 일을 넘어, 한 노인의 하루치 외로움을 들어주는 일. 그것이 진짜 치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시를 옮기며 역자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동네 약국의 풍경이 떠올랐다. 약국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특히 오래된 동네의 작은 약국들은 흔히 노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겸한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들고 온 노인이 약을 받아 들고도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약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자식들이 멀리 떨어져 살고,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하루 종일 말 붙일 사람 하나 없는 노인들에게 약국의 작은 카운터는 세상과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창구가 되어준다.

약사는 본디 약을 짓고 복약을 지도하는 전문직이지만, 현실에서는 이처럼 상담자이자 말벗이자 때로는 유일한 청자(聽者)의 역할까지 떠안는다. 혈압약을 받으러 온 할머니가 “며느리가 전화를 안 받는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을 때, 진통제를 사러 온 할아버지가 “요즘은 밤에 잠이 안 온다.”며 두서없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약사는 조제실의 분주함 속에서도 그 말을 끊지 못한다. 아니, 끊을 수가 없다. 그 말이 그 사람에게는 오늘 하루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동네 약국이 지닌,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 사회적 기능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독거노인의 고립은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되어가는데, 정작 이를 완충하는 역할의 상당 부분을 병원도 복지관도 아닌 동네 약국이 조용히 떠맡고 있는 셈이다. 약사들은 이 일을 업무 매뉴얼에서 배우지 않는다. 다만 카운터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몸으로 익혀갈 뿐이다.

우리나라의 약사들은 대체로 고단한 노동 환경 속에 있다. 조제 건수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인건비는 늘어가고, 복잡해지는 복약 지도와 재고 관리, 여기에 보험 청구와 관련한 행정 업무까지 겹치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약가 정책과 수가 구조의 변화 속에서 동네 약국들이 겪는 경영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온라인 유통이 늘어가는 환경 속에서, 작은 동네 약국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도 노인들의 넋두리를 마다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은, 어쩌면 약사 개인의 인내심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자는 그것을 의사들이 회피하는 것으로 설정한, 원시에도 없는 말인 ‘勞煩(노번)’으로 부르고 싶다.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이라는 뜻이다. 적어도 시인은 그 번거로움을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번거로움을 끝까지 받아 안는 데에서 시가 완성되었다. 역자는 이 지점에서, 이 시가 단순히 의료 현장을 풍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 ‘듣는다는 것’의 넉넉함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의 제목은 「명의」다. 그러나 시 어디에도 명의라고 불릴 만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말을 충분히 들어주지 않는 의사와, 끝내 그 말을 받아 안는 약사가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이 시는, 진짜 명의란 화려한 진단이나 첨단 처방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 할머니의 혼잣말이 시인의 귓전을 떠나지 않았듯, 이 시 역시 역자의 귓전을 오래도록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한역을 마치고 나서 역자는, 이 짧은 여덟 구절 속에 우리 시대 의료 현장의 축소판이 담겨 있음을 새삼 느꼈다. 말할 곳을 잃은 사람들, 말을 들어줄 여유를 잃은 제도, 그리고 그 틈새에서 묵묵히 양쪽을 이어주는 이름없는 이들…… 시인이 약국 카운터에서 마주했을 무수한 얼굴들을 생각하며, 역자는 이 시를 옮기는 내내 옷깃을 여미는 마음이었다. 오늘도 어느 동네 약국에서는, 처방전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이가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아직 살 만한 곳이다.

역자는 2연 11행으로 구성된 원시를 8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言(언)’·‘煩(번)’, ‘員(원)’·‘邊(변)’이다. 앞의 두 운자(韻字)와 뒤의 두 운자는 속한 운목(韻目:운의 제목)이 다르다.

2026. 9. 29.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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