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원자력발전 업체들이 미국 본토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정부의 대미 전략투자 기금 중 최대 1200억달러를 투입하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2기는 한국형 원전인 ‘APR1400’으로 채워진다. 외국 원전 노형이 원전 종주국인 미국 본토에 들어서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한·미 양국은 한국 기업들의 미국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를 병행해 향후 글로벌 원전 시장 공동 공략에도 나서기로 했다.
이를 통해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지난해 초 지식재산권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맺었던 타협협정(SA)도 개정된다. 해당 협정은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꼽혀왔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프레임워크에는 대미 펀드를 활용해 미국에 한국형 APR1400 2기를 건설한다는 내용이 명시되며, 이에 맞춰 기존 SA를 개정하기로 확약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양국 기업 간 발목을 잡아온 핵심 쟁점들도 한 번에 풀릴 전망이다. 이번에 짓는 2기 원전에 한해 기술사용료와 시공 등 역무 분담, 핵연료 공급 문제를 일괄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내린 원자력 행정명령과 맞닿아 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내건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 착공’ 목표 중 8기를 이번 한·미 협력으로 채우는 것이다. 공식 합의문상 구체적인 건설 부지는 상업성 검토를 거쳐 추후 확정하기로 했다. 다만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한국의 대미 투자 발표 행사에서 오하이오주와 테네시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켄터키주 등 4개 주를 유력 후보지로 직접 거론했다.
미국 시장 진출은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 장관은 “웨스팅하우스 역시 가격과 에너지 효율 면에서 한국의 APR1400이 자사 원전 모델인 AP1000보다 낫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APR1400의 미국 시장 진출이 2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계심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웨스팅하우스는 설계 역량만 있을 뿐 시공과 기자재 공급망이 무너진 상태”라며 “뛰어난 시공 능력을 갖춘 한국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성사된 상생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200억달러의 예비비는 과거 미국 원전 사업에서 반복됐던 공사비 초과 위험에 대비한 안전장치다.
김 장관은 “200억달러는 쓰지 않더라도 한·미 전략투자 집행 금액으로 전액 인정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등에서 입증된 국내 시공사들의 공기 준수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며 “당초 정한 순수 건설비 1000억달러 안에서 공사를 마치고, 200억달러 전액을 남겨 회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과거 미국 조지아주 보글 원전에서 빚어진 대규모 공기 지연의 주원인은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원전 인허가를 18개월 이내로 끝내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이 같은 위험도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연내에 상업적 합리성을 검토하고 국회 보고를 거쳐 집행할 예정인 선급금은 최대 100억달러다. 핵심 기자재를 미리 확보하는 데 쓰인다. 원자로 용기와 증기발생기처럼 제작에만 수년이 걸리는 핵심 부품이 대상이다. 달러 자금이 미국으로 건너가더라도, 해당 기자재를 직접 제작해 납품하는 한국 공급망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구조다.
양국은 AP1000 원전 사업에서 생기는 상업적 이익을 나누기 위해 한국 기업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 인수도 함께 추진한다. 부채가 200조원을 넘는 한전과 한수원은 상징적인 수준으로 최소한의 자금만 넣는다. 대신 세계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공급망 진출을 노리는 국내 민간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지분 인수에 나설 방침이다. 지분 10%를 확보해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안을 놓고는 웨스팅하우스 측과 막판 조율을 이어가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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