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두 명이 서로 치고받고 싸웠다. 양측은 치료비를 정산하고 서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도 썼다. 그런데도 한 학생은 수사를 받고 두 학생 모두 학교폭력 심의를 받아야 한다면 어떨까.
한 학생의 행위는 단순폭행죄에, 다른 학생의 행위는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가정해보자. 서로 때리고 합의했더라도 각자가 마주하는 법적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단순폭행죄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가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면 형사처벌 절차는 종결될 수 있다.
상해죄는 다르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수사와 재판은 계속될 수 있다. 합의와 피해회복은 처분이나 형량을 정할 때 고려되지만 형사처벌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같은 합의서를 쓰고도 상대방의 폭행 사건만 끝날 수 있는 이유다.
단순폭행이라도 소년보호사건으로 심리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소년보호재판은 학생의 교정과 재범 방지를 위해 보호관찰 등의 처분을 정하는 절차다. 이때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고 합의는 처분 여부와 수위를 판단할 때 참작된다.
그래서 입건 단계부터 죄명이 실제 행위와 피해에 맞는지, 절차는 어떤 절차에 따르는지 따져봐야 한다. 변호인은 상해가 성립할 증거가 있는지 검토하고 고소대리인은 피해에 맞는 죄명이 적용되도록 자료를 갖춰야 한다. 이 판단에 따라 합의의 효과와 조건도 달라진다.
한편 학교폭력 절차는 완전히 별개다. 합의로 폭행 사건이 종결됐다고 해서 때린 사실이 없어지거나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판단된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 조치는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교육하기 위한 것으로, 형사처벌 여부와 별도로 판단한다.
합의를 통해 피해학생과 보호자가 심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면 법정 요건을 갖춘 경미한 사안은 학교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 교육지원청의 심의를 거치지 않는 ‘학교장 자체해결’이다. 반면 2주 이상의 신체적,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진단서가 발급됐다면 합의했더라도 심의 절차는 계속된다.
합의서와 처벌불원서에는 사과의 내용과 피해회복 과정, 피해학생 측의 화해 의사를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과 학폭 심의에서 선처를 바란다는 뜻도 구분해 적을 필요가 있다.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만으로는 학폭 조치에 관한 의사까지 분명히 전달하기 어렵다. 변호사는 양측의 의사를 확인해 표현을 조율하고 합의금으로 정산할 손해의 범위와 서류 제출 시기도 정리한다.
합의금을 마련하고 거듭 사과했는데도 형사절차나 학폭절차가 계속되면 부모로서는 허탈할 수 있다. 그런 실망을 줄이려면 합의 전에 무엇이 정리되고 어떤 절차가 남는지 차분히 확인해두는 편이 좋다. 양측 학생과 보호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살피며 합의의 범위와 조건을 야무지게 조율할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이유다.
원희영 법무법인 YK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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