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고 왜소한 여성이 동승객 없이 자동차를 운전해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향하고 있다. 그녀는 신호등이 파란불인데도 차들이 가지 않아 클랙슨을 ‘살짝’ 눌렀다. 앞차에서 키 큰 중년 남성이 내리더니 그녀의 차로 걸어와서 운전석 창문을 주먹으로 세게 두들겼다. 그녀가 차창을 내리자마자, 남자는 차마 필설로 옮길 수 없는 ‘쌍욕’들과 “확 죽여버릴까.” 등의 협박을 그녀에게 쏟아부었다. 피해여성은 운전대를 잡은 채 얼어붙었다. 가해남성의 얼굴을 본 순간, 단순한 분노조절장애를 초월하는 ‘쎄함’에 소름이 돋은 터였다. 그녀는 “죄,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가해남성은 되돌아가 자신의 차 운전석에 탔다. 그도 동승자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차에서 내려 그녀의 차 운전석 창문으로 되돌아오더니, 또 쌍욕들과 협박을 해댔다. 광기(狂氣)였다.이윽고 가해남성은 여태 분노가 해소되지 않은 채 제 차로 돌아가 승차했다. 정작 정말 무서운 일은 그다음부터였다. 자신의 아파트 동 주차장 입구 안으로 차를 운전해 들어가던 피해여성은 백미러를 보고는 기겁했다. 가해남성의 차가 그녀의 차를 뒤쫓고 있는 게 아닌가. 피해여성이 평소 주차하는 지하 2층 주차장 한 지점에 차를 주차시키자, 가해남성은 거기서 15미터 정도 앞 주차 공간에 제 차를 주차하고는 시동을 끈 채 운전석에 그대로 앉아 그녀를 주시했다. 이게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란 말인가.
얼이 나간 피해여성은 간신히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가 있는 자동 개폐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등 뒤로 자동차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가 벌벌 떨며 뒤를 돌아보자 가해남성의 차가 주차장 출구 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 자는, 그녀가 사는 곳을 확인하고 사라진 것이다. 집에 돌아온 이 독신여성은 의문과 불안에 시달렸다. 저 ‘사이코’의 속셈은 뭘까? ‘분명한 사실’은, 그녀는 ‘이미 범죄행위의 피해자이며 그 가해자로부터 더 큰 범죄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충분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점’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피해여성은 다음 날 가까운 경찰 지구대로 갔다. 그러나 그곳이 난관의 해결처는커녕 새로운 고통의 시작점이 되리란 건 상상조차 못했다. 피해여성은 경찰들(1인은 여성 경찰) 앞에서 사건의 전부를 설명했다. 우선, 가해남성의 범행들이 담긴 CCTV 촬영본들을 확보해주길 원했다(그녀 차량 블랙박스의 녹화본은 다운을 받아놓은 터였다). 증거란 하루라도 지나면 오염되거나 지워질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그러나 경찰은 그 가해남성을 고소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CCTV 촬영본을 법률상 구청(도로 촬영본)이든 아파트 관리사무소(주차장 촬영본)든 피해호소인에게는 보여줄 수 없다고도 했다. 피해여성은 답답했다. 고소를 하면, 그 가해남성은 그녀의 인생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게 된다. 처벌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도 모르고, 그 자를 교도소로 보낸들 출소 후 보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여성은 일단 증거만 보전하되 직면한 위험 가능성으로부터 보호는 받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이런 ‘현행법의 경직성’과 여성이라는 ‘약자의 딜레마’보다 그녀가 더 큰 절망을 느꼈던 것은, 경찰의 무례와 나태와 외면이었다. 경찰은 이런 말까지 했다. “TV에 나오는 사건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아요.” 그녀는 실감했다. 아, ‘제주도 부 경장 사건’이 최소한 이런 분위기와 베이스에서 벌어지겠구나. 부 경장이 근무했던 약 1년4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접수된 성인 실종 사건이 1048건이나 됐고 그중 그는 298건을 자체 종결했다. ‘일부’ 경찰이 영화에서처럼 범죄조직과 연관이 있다면 오히려 낫다. 도려내면 되니까. 한데 만약 이게 직업과 조직의 질병이 굳어진 경찰 전반의 ‘체질’이라면 어쩔 것인가. 피해 당사자가 되기 전에는, 범죄는 관념적이다.
이건 내가 경찰서까지 따라가 직접 취재한 ‘작은’ 케이스에 불과하다. 여성과 미성년, 노약자와 장애인은 다양성과 강도와 빈도와 복잡성이 무한대인 범죄들에 노출돼 있다. 오늘부로 이 나라 국민들에게 범죄에 맞서 믿을 건 경찰밖에는 없게 됐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 말고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이 현실을 두려워 말라고 강요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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