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칠흑 같은 밤을 보내야 하지만 남한은 대낮같이 휘황찬란하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는 남북한의 성공과 실패 사례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자연환경과 언어, 문화가 동질적인 남한과 북한의 운명이 갈린 ‘분기점’으로는 분단 이후 남북한 지도자의 선택이 꼽힌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시장경제를 채택한 남한과 사유재산을 불법화하고 중앙계획경제를 도입한 북한의 결정은 처음에는 미세하던 간극을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수준으로 벌렸다.책에는 남북한뿐 아니라 저자가 ‘포용적 경제제도’와 ‘착취적 경제제도’로 명명한 사회 시스템이 자리 잡는 결정적 순간에 관한 다양한 사례가 제시된다. 국가의 풍요와 빈곤은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지 여부에 좌우됐다.
뜻밖에도 각국의 실패 사례 중에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연상되는 장면이 적지 않다. 18세기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거주 지역의 총가구 수, 신규 가구 허용치, 신혼가구 조건 등을 세세하게 제약한 데선 실거주 규제 등 깐깐한 부동산 정책이 떠오른다. 수도인 빈에 새로운 공장 건설을 금지하고 철도 건설을 반대한 합스부르크제국의 퇴행적 행태에선 자율주행 같은 신기술·신제도 도입에 미온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이 겹친다.
노벨상 수상자의 지적 중 가장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행정부와 사법부 간 갈등이다. 저자가 반복해서 성공 사례로 언급하는 미국과 실패의 대명사 아르헨티나는 비슷한 시기에 국가 지도자가 마음대로 대법관을 임명하려고 시도했다.
1946년 포퓰리스트 후안 페론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의회에선 전 정권 때 임명된 대법관 탄핵안이 발의됐다. 9개월 만에 하원은 대법관 네 명 중 세 명을 탄핵했다. 나머지 한 명은 사임했다. 페론은 곧바로 ‘자기 사람’으로 네 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에선 신임 대통령이 대법관을 직접 발탁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행정부의 권력에 제재를 가하던 정치제도가 사라졌다”는 게 저자의 일갈이다.
비슷한 움직임이 일었던 미국의 선택은 달랐다. 1935년 미국 대법원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가 1933년 발효한 뉴딜 법안 중 전국산업부흥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미 대법원은 “(대공황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이례적인 조치가 필요할 수 있지만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해서 초헌법적 권력을 창출하거나 확대할 순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변담화에서 “세 마리 말 중 세 번째 말(사법부)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고 비판한 뒤 70세 이상 대법관은 의무 퇴진하고 자신에게 여섯 명의 신임 대법관 임명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루스벨트의 주장에 미국 내 여론은 냉담했다.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마저 소극적으로 대하면서 소위 ‘법관 개혁안’은 물거품이 됐다. 이를 두고 아제모을루는 “미국 상·하원은 대통령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면 힘의 균형이 무너져 자신들도 무사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2012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여러 문제를 마주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포용적 경제제도’의 ‘성공 모델’이던 한국에서 ‘실패의 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면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앞으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개정판이 나온다면 한국은 계속 성공 사례로 남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어떤 길을 걸을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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