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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몰랐던 히든카드, 소송에도 투자자가 있다 [신정아의 글로벌 분쟁시대]

입력 2026-10-03 14:00  

우리만 몰랐던 히든카드, 소송에도 투자자가 있다 [신정아의 글로벌 분쟁시대]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종종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 그 시장의 수요가 어떻게 변화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서 어떤 아이디어가 성공할지 미리 알 수 없다. 기업 인수 역시 마찬가지다. 투자한 가치가 현실화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감수하고 내리는 결정이다.

하지만 결과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운에 맡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결과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전략은 더욱 중요해진다. 어떤 전략을 택할 것인지, 언제 얼마만큼의 자본을 투입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어떻게 감수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판단이 필요하다.

소송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각종 소송과 분쟁은 말그대로 골칫덩어리다. 적지 않은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대충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대응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해외분쟁이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익숙하지 않은 법과 제도 아래에서 현지 로펌을 선임해야 하고, 사건에 따라 전문가와 증인도 필요하다.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히 긴 호흡이 필요한 싸움이다. 실력 있는 법률대리인과 탄탄한 소송전략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전략을 끝까지 실행할 수 있는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
자본은 보존하고, 권리는 실현하다


소송금융은 기업이 자체 자본을 쓰지 않고서도 법적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을 제시한다.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소송 비용과 리스크를 제거한다는 것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필자가 만나본 경영진들도 이러한 점에 크게 공감했다.

사건이 패소할 경우 투입된 자본 손실은 오롯이 투자자가 감당하기 때문에 기업은 그 어떠한 상환 의무도 없다는 점이 바로 핵심이다. 반대로 사건이 성공적으로 해결되어 상대방으로부터 회수가 이뤄진 경우에는, 사전에 정한 조건에 따라 투자자와 회수금을 배분하게 된다. 이 경우 기업은 소송에 필요한 비용이나 그에 따른 손실 위험을 직접 부담하지 않으면서도 회수금의 일부를 확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법적 권리를 행사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먼저 투입해야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회수(recovery)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승소하더라도 상대방의 자산이나 지급 능력에 따라 실제 회수까지 또 다른 절차가 필요할 수도 있다. 결국 기업은 법률비용뿐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과 자본이 장기간 묶이는 부담까지 함께 떠안게 된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이에 소송금융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기업이 법률비용과 그에 따른 리스크를 외부 자본과 나눔으로써, 자본은 보존하면서도 충분한 근거가 있는 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송금융은 이미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해외 시장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부터 대기업, 글로벌 기업에 이르기까지 이용자의 범위도 넓다. 다만 기업의 규모와 상황에 따라 소송금융을 찾는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의 경우 자금의 제약이 가장 현실적인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의 접근은 조금 다르다. 소송에 자체 자본을 투입하는 대신 외부 자본을 활용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회사의 자금은 R&D, M&A 나 사업 확장 등 보다 전략적인 영역에 집중하기 위해 소송금융을 선택한다.

소송금융의 활용 범위 역시 넓어지고 있다. 대형 상사소송이나 국제중재는 물론 특허분쟁, 공정거래 분쟁, 판결금 및 중재판정의 집행과 회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소송금융이 활용되고 있다.
소송금융의 구조도 진화하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나아가 여러 분쟁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묶어 관리하거나, 향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판결금이나 합의금의 일부를 미리 현금화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이를 통해 기업은 소송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분쟁경영’의 시대


우리는 왜 공장 증설, R&D, M&A, 마케팅 등에는 유독 ROI(return on investment)를 따지면서 법률비용은 당연히 회사 자본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소송비용의 문제는 단순히 기업이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기업이 가진 자본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향후 몇 년간 소송에 투입될 자본을 핵심 사업에 투입했을 때 더 높은 전략적·재무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승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기업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기업이 소송비용을 감당할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금이 충분하다는 것과, 그 자금을 소송에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충분한 자본을 가진 기업일수록 자본의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디에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과 집중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필자에게 의뢰한 한 국내 기업 역시 자본을 R&D와 제품 개발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소송금융을 고려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분쟁을 단순히 법무팀이 처리해야 할 법률 이슈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보유한 법적 권리의 가치와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본, 시간,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것. 필자는 이러한 접근을 ‘분쟁경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분쟁은 더 이상 법무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권리에 얼마의 자본을 투입하고, 어떤 리스크를 감수할 것인지 판단하는 하나의 자본배분 문제이자 경영의 영역이 된다. 결국 분쟁도 하나의 투자이고, 자본배분의 문제인 셈이다.

이기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소송금융의 역할은 자본 제공에서 끝나지 않는다. 소송금융사는 투자 기준을 충족하는 사건에 선별적으로 투자한다.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고 사건의 쟁점, 예상 회수액, 소요기간, 집행 가능성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투자자의 자본이 직접 위험에 노출되는 만큼 사건을 바라보는 기준 역시 엄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실사 과정은 기업이 해당 분쟁의 법률적·경제적 가치를 바라보는 데 또 하나의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소송금융사가 자신의 자본을 투입한다는 것은 독립적인 전문 투자자가 해당 사건에 유의미한 법률적·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송금융사가 철저한 실사를 거쳐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이 국제분쟁 시장에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도 이러한 판단에 무게를 더한다.

물론 소송금융사의 투자 결정이 사건의 승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 판단은 어디까지나 법원이나 중재판정부의 몫이다. 다만 소송금융사는 복잡한 분쟁에 투자하며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에 소요될 기간이나 회수 가능성, 판결 또는 중재판정의 집행에 따르는 리스크 등을 평가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송금융은 단순히 소송비를 제공하는 자금 공급자를 넘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협상의 문을 열다



소송금융의 또 다른 전략적 가치는 분쟁 당사자들이 협상과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는 데 있다.

상대방이 청구권을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거나,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굳이 먼저 합의를 제안할 이유가 없다. 이때 소송금융은 자금 부족 때문에 정당한 청구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재정적 제약이 줄어들면 당사자들은 사건 자체의 법률적 타당성과 경제성을 중심으로 협상과 해결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소송금융은 이러한 계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소송금융사가 자본을 투입한다는 것은 법률적·경제적 실사를 거친 전문 투자자의 투자 판단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기업은 이를 통해 소송의 각 단계는 물론 필요할 경우 해외에서의 판결이나 중재판정 집행까지 이어갈 수 있는 자본과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소송금융은 기업의 법적 권리 행사를 제약할 수 있는 재정적 부담을 줄여, 자금 사정 때문에 정당한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 간의 분쟁에서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 양측 모두 충분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면 누가 먼저 돈이 떨어지느냐는 애초에 핵심 변수가 아닐 수 있다. 소송금융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청구의 지속여부가 자본 운용상의 부담만으로 좌우되는 상황을 줄여준다.

소송금융은 기업이 분쟁을 끝까지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본과 법률 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자금 압박 때문에 충분한 근거가 있는 청구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성급하게 합의해야 하는 가능성을 줄이고, 분쟁의 실질적인 양상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청구의 법률적 근거가 탄탄하다면, 양측은 자금 사정에 좌우되기보다 분쟁 자체의 법률적 타당성과 경제성을 중심으로 협상과 해결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소송금융이 활용된 분쟁 중 상당수는 최종 판단까지 가지 않고 합의로 마무리된다. 버포드 캐피탈(Burford Capital)의 2026년 2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당시까지 2.5년간 투자자금이 회수된 사건 중 77%가 합의를 통해 종결됐다.

결국 소송금융은 단순히 소송비용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기간 이어지는 분쟁의 휘둘리지 않고 기업이 자신의 법적 권리를 끝까지 행사할 수 있는 제정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법무팀의 변신: value generator로

법무팀은 오랫동안 기업의 대표적인 ‘cost center’로 인식되어 왔다.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지만, 매출을 직접 만들어내기보다는 계약을 검토하고, 규제 리스크를 관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로펌과 함께 기업을 방어하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분쟁이 발생하면 이러한 인식은 더욱 두드러진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변호사 비용과 전문가 비용은 증가하지만, 그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CFO의 관점에서 보면 매달 발생하는 법률비용은 명확한 현금 유출인 반면, 몇 년 뒤 받을지도 모르는 판결금이나 합의금은 불확실한 미래의 가치다.

하지만 분쟁을 하나의 경제적 자산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업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법적 권리가 존재한다.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부터 해외 미수채권, 국제중재 청구권, 특허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대부분 처음부터 ‘자산’의 형태로 기업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개 ‘문제’의 형태로 법무팀에 넘어온다. 거래처가 계약을 위반했다. 해외 고객이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경쟁사가 특허를 침해했다. 합작투자 파트너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법무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로펌을 선임하고 비용을 지출한다. 그러다 보니 경영진의 눈에는 자연스럽게 “얼마를 회수할 수 있는 권리인가”보다 “앞으로 얼마의 법률비용이 발생할 문제인가”가 먼저 보이게 된다.

소송금융은 이 문제를 반대 방향에서 바라본다. “이 분쟁에는 얼마의 경제적 가치가 숨어 있는가?” 그리고 청구금액이 얼마인지, 법률적 근거가 얼마나 탄탄한지, 승소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판결이나 합의까지 얼마나 걸릴지, 실제 회수가 가능한지, 상대방에게 지급능력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이에 따라 법무팀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 법무팀이 기업의 손실과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업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법적 권리 가운데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가진 권리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

비용과 불확실성 때문에 그동안 행사하지 못했던 청구권이 있을 수도 있고, 비용 부담 때문에 본래 가치보다 낮은 수준에서 조기 합의를 고려했던 사건이 있을 수도 있다. 외부 자본이라는 선택지가 생기면 법무팀은 이러한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 결과 기존에는 비용과 리스크로만 인식되던 분쟁이 잠재적인 현금 회수 가능성을 가진 자산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달라지는 것은 분쟁 자체가 아니라, 기업이 분쟁을 바라보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비용으로만 보이던 분쟁에서 자산을 발견하고, 회사가 부담하던 리스크를 관리하며, 필요에 따라 외부 자본을 활용해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 이를 통해 법무팀은 cost center라는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비로소 ‘value generator’로 그 역할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글로벌 분쟁시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불확실성이 따르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시간,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의 무대가 세계로 넓어지면서 해외분쟁 역시 피할 수 없는 경영의 과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에 따른 모든 자본과 리스크까지 기업이 홀로 짊어질 필요는 없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만큼, 누구와 함께 싸울 것인가도 중요한 전략이 된 시대다.

글로벌 분쟁에 직면한 우리 기업들에게 소송금융은, 그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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