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릴 적 흙장난하며 부르던 이 노래가 요즘 많은 서울 구축 아파트 거주자에게 간절한 염원입니다. 서울 아파트 3채 중 1채는 이미 서른 살을 넘겼고, 신축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됐습니다. '이슬기의 새집다오'는 복잡한 재건축·재개발의 실타래를 풀고, 우리가 살고 싶은 '내일의 집'을 탐구합니다. 여러분의 '새집' 꿈이 선명해질 수 있도록 투명하고 쉽게 쓰겠습니다. [편집자주]
"263억원"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된 숫자입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 한남' 전용면적 273㎡가 지난 8월 기록한 실거래가입니다. 기존 최고가였던 235억원을 8억원 웃돌며 신고가를 갈아치웠습니다. 대출 규제를 비롯한 실거주 의무 등 규제가 강화하면서 고가 아파트 거래가 뚝 끊기고, 웬만한 강남 아파트 단지들의 호가가 꺾인 상황에서 나온 소식입니다. 초고가 주택 시장은 철저히 '그들만의 세상'임을 입증한 셈입니다.
이 단지의 행보는 그야말로 독보적입니다. 올해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거래된 이른바 '200억 클럽' 아파트가 총 9건인데, 그중 무려 7건이 나인원 한남에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신고가는 한남동이란 입지가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나인원 한남, 한남 더힐과 같은 최고급 주거 단지와 바로 맞닿아 있는 곳에서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 한남뉴타운이 마침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20년 넘는 기다림…'미니 신도시'로 거듭나는 한남 뉴타운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등지고 보광동 일대로 접어들면, 지은 지 40년 이상 된 노후 붉은 벽돌 빌라들이 비좁은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차량 교행조차 버거운 이 조용한 동네는 현재 대한민국 정비사업의 최대 격전지입니다.
2003년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된 한남뉴타운은 용산구 한남동, 보광동, 이태원동, 동빙고동 일대 약 111만㎡를 5개 구역으로 나누어 재개발하는 매머드급 사업입니다. 잦은 설계 변경과 조합 내홍 등으로 20년 가까이 부침을 거듭했으나, 최근 3구역이 첫 삽을 뜨기 위한 9부 능선을 넘으며 사업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개발이 완료되면 이 일대는 1만3000가구가 거주하는 거대한 '미니 신도시'로 재탄생합니다. 남산과 한강을 품은 배산임수 명당에 나인원 한남, 한남 더힐 등 기존 하이엔드 주거단지와 맞닿아 있어, 대형 건설사들 역시 앞다투어 '강남을 뛰어넘는 하이엔드 설계'를 내세우며 깃발을 꽂고 있습니다. 재개발 이후 강남을 넘어설 서울 최상위 부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입니다.
구역별로는 현재 어느 단계까지 와 있을까요? 한남 뉴타운 각 구역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속도전에 돌입했습니다.
우선 전체 한남뉴타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넓고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한남 3구역은 사업 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현재 주민 이주를 거의 마치고 곳곳에 '공가(빈집)' 스티커가 붙은 채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말 역사적인 착공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이르면 내년쯤 일반 분양 시장에서 3구역의 물량을 만나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은 이곳에 '디에이치 한남'이라는 단지명을 내걸고, 남산 자락의 구릉지 지형을 살린 테라스 하우스 형태의 특화 설계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상권과 가깝게 맞닿은 한남 2구역 역시 이삿짐 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이주율 99%를 달성하며 3구역의 뒤를 바짝 쫓고 있습니다. 이곳은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아 변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업성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남 4구역은 최근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낙점되며 래미안 타운으로의 변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주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투자자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일반 분양 비율이 높아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알짜 구역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내년 관리처분인가를 거쳐 2028년 이주, 2033년 입주라는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세웠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남 5구역은 한강 접근성과 조망권 측면에서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남 뉴타운 내 최고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곳입니다. 평지 비율이 높아 쾌적할 뿐만 아니라, 설계를 통해 모든 조합원 가구가 집 안에서 '한강뷰'를 누릴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DL이앤씨가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ACRO)를 적용해 시공할 예정입니다.
한때 구역 해제의 아픔을 겪었던 한남 1구역도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2017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됐으나, 2025년 3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방식으로 정비계획 수립 절차를 다시 밟으며 재개발의 불씨를 살렸습니다.
"4년 만에 10억 빌라가 40억으로"…거래는 '올스탑'

낡은 골목길 위로 화려한 새 아파트의 구체적인 밑그림이 선명해지자, 일대 시세는 그야말로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불과 6년 전인 2020년만 하더라도 약 10억원 정도에 매입할 수 있었던 구역 내 빌라 매물들의 호가가 현재 40억원 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인대 중개업소들은 한남뉴타운 입주가 본격화되는 2031년 이후에는 전용면적 84㎡ 기준 75억원 이상의 시세를 형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아파트 중 최고가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84㎡의 신고가(71억 5000만원)를 훌쩍 넘어서는 숫자입니다.
다만 폭발적인 잠재력과 달리 현재 시장 거래는 사실상 완전 정지 상태입니다. 이미 조합원 입주권에 붙은 프리미엄만 30억원에 육박해 초기 투자금이 막대한 데다, 9월부터 시행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등 강력한 대출 규제로 매수자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급격히 악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주택자들에게는 강남을 능가할 '로또 분양'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한남뉴타운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업계에서는 향후 일반 분양가가 3.3㎡당 7000만~8000만원 선에 책정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입주 시 예상되는 시세를 감안하면 공급 가격이 시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청약에 당첨된다면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단번에 거두게 되는 셈입니다. 한남뉴타운을 관심 안에 두고 분양 일정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한남뉴타운 개발이 모두 완료되면, 압구정과 함께 국내 최고 부촌으로서 쌍두마차로 명성을 날리게 될 것"이라며 "강남 중심의 하이엔드 주거 패러다임이 한강 이북으로 확장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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