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자 위주 보급이라는 낡은 틀을 깨고, 국민 개개인이 직접 전기요금을 아끼는 ‘1가구 1태양광’ 자급 모델로 전환해야 합니다.”
내년부터 2년간 한국 신·재생에너지학회장을 맡는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사진)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 모델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다”며 이같이 말했다. 허 교수는 올해 처음 법정기념일로 승격된 23일 ‘재생에너지의 날’을 맞아 정책 패러다임의 전면적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국내 대표 에너지경제학 전문가다.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자원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석유·가스 등 전통 에너지 자원부터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전환 정책까지 폭넓게 연구했다. 2009년부터 서울대 국제에너지정책과정을 운영하며 2017년까지 27개국 에너지 관료 80여 명을 배출한 공로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세계에너지경제학회 부회장, 한국자원경제학회장 등을 지냈으며 내년부터 2년간 신·재생에너지학회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허 교수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의욕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사업자 중심의 설비 확충에만 매달려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정부가 보급 속도를 내기 위해 재정 부담이 적은 융자 방식을 택하면서 혜택이 사업자에게만 쏠렸다”며 “그러나 이제는 사업자가 들어갈 만한 넓은 땅이나 산, 바다는 이미 포화 상태인 데다, 정작 설비가 들어선 지역 주민들은 소외돼 극심한 반발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법으로 미국 테슬라의 가정용 태양광·배터리 보급 모델을 제시했다. 테슬라가 일반 가정을 직접 공략해 자가 소비를 이끌어냈듯, 한국도 개별 가구의 베란다나 공장 지붕에 직접 설치 보조금을 지급하는 체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2010년 무렵만 해도 국내 주요 대기업이 가전 매장에서 가정용 태양광 패널을 팔았지만, 보조금이 축소되고 부동산 시장에서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자가소비용 시장이 완전히 고사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직접 ‘전기요금 제로’ 혜택을 체감하게 만들어야 수용성 문제와 보급 병목을 동시에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거리 전력망 부족에 따른 계통 병목 문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허 교수는 “국가가 주도하는 대동맥 전력망인 ‘에너지고속도로’ 구축도 필요하지만, 대형 발전소와 장거리 전력망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주민 반대를 넘어서기 쉽지 않다”며 “동네 주민들이 원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선택해 생산·소비하는 ‘지역 자급자족형’ 모델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할 제도 개혁으로는 지자체 전력 자치권 강화를 꼽았다. 그는 “소규모 단위에 머물던 전력 프로슈머(생산자이자 소비자) 제도를 기초지자체 단위 등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며 “지방에서 전력을 보다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도 전력망 건설과 운영 권한을 열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역 자립망이 갖춰지면 정치권의 소모적인 ‘원전 대 재생에너지’ 논쟁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 교수는 “원전은 거대한 에너지고속도로에 적합한 집중형 기저전원이고, 재생에너지는 작은 단위까지 파고드는 분산전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특히 한국 에너지 정책이 공급 확대에 치우쳐 ‘수요 효율화’를 놓쳤다고 꼬집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과 비슷했던 미국의 에너지 효율이 지금은 유럽 수준으로 개선된 반면, 우리는 다소비 국가인 미국보다도 뒤처져 있다”며 “대형 발전소와 송전선로만 더 지으려 할 게 아니라, 분산 자급과 수요 절감을 통해 ‘전기를 덜 쓰는 경제성장 모델’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리안/사진=김범준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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