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Leadership] 5편. 글로벌화의 에센스, 정체성
홍성철 작가작품, String Mirror_eye_0192, 2010
<작가에게 글로벌화의 첫걸음은 ‘해외’ 옥션이나 아트페어에서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 것으로 출발한다>
최근 K-Pop이 YouTube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전세계로 퍼지면서 한국 드라마에 연이어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산업에 있어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과거 스승인 일본 기업(소니, 미쓰비시)들을 더 이상 그들의 경쟁자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외형적인 성장 규모와 그 속도를 보면, 우리는 글로벌화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잠시 한숨을 돌리며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글로벌화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 한 신문사의 K-Pop의 생명력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그 수명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떤 응답자는 벌써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도 평한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존재감이 알려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존재감에 무게를 가하고 영속성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Identity) 또는 독창성일 것이다.
얼마 전에 현대 갤러리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美다`라는 소신을 가졌던 수화 김환기 전시를 두 차례에 걸쳐 보았다. 부암동에 위치한 소박한 느낌의 환기 미술관을 좋아하여 가끔 들렸었지만 의외로 그의 대표작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김환기 회고전을 통해 그의 60여 점의 대표작들을 시대별로 볼 수 있었기에 무척 반가웠다. 게다가 전시기간 동안 있었던 김환기 예술세계에 대한 세미나를 통해서 그가 살아 생전에 어떠했는지 그의 취미가 무엇이었는지도 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의 문화유산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젊었을 때부터 고미술 수집을 즐겼다고 했다.
흑백 사진 속 그의 화실에는 여러 점의 백자와 문갑, 서화 등이 그의 작품들과 어울려 놓여있었다. 김환기의 우리문화 사랑은 백자항아리, 산, 학, 여인 등을 그린 초기 구상화의 소재에서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가 즐겨 사용했던 색채에 있어서도 푸른 색조의 정겨운 우리나라의 자연 색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수화 김환기는 일찍이 글로벌화에 눈을 뜬 사람이었다. 196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게 된 그는 당시 대상수상자였던 아돌프 고트리프(Adolf Gottlieb)의 한 벽을 꽉 채운 거대한 크기의 추상화에 큰 충격을 받는다. 새로운 회화형식에 도전을 받은 그는 나이 50세에 홍익대학교 학장과 미술협회 회장직(당시의 가장 명예로운 자리)을 버리고 세계미술의 중심이었던 뉴욕으로 홀로 건너가 무명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전까지 반 구상화 형식으로 선과 면에 충실했던 그는 `점`이라는 단순한 요소에 집중하면서 그만의 예술철학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마크 로소코(Mark Rothoko)나 아돌프 고트리프(Adolf Gottlieb) 같은 현대미술 거장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한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서정성인 담긴 네모꼴로 테두리 지어진 점으로 이루어진 `점화`를 탄생시킨다. 점들이 군을 이루면서 면이 되고 면들이 모여서 회전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점으로 만들어진 김환기의 점화작업은 그의 연구와 도전의 결과로 그 한국의 정체성과 현대적인 세련미가 어우러져 있다.
그가 생전에 매일 적었던 작업 노트에는 1974년 사고로 뉴욕에서 그가 눈을 감기 직전까지 새로운 작품 구상과 고민들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서양화의 기법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의 멋을 폭넓게 재창조해 낸 김환기, 결과적으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문화사랑이 우리나라의 근현대미술의 기초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환기미술관 외부 (부암동) 환기미술관 내부 (부암동)
글로벌화를 논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글로벌화의 시작점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세계의 누구도 갖지 못한 독창적인 것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것에 대한 공부와 이에 대한 자신감과 소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美`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선생님은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 생각한다. 본 답사기에서 말해주는 우리 선조의 미 중 하나는 `어우러짐`이다. 어울림에 대한 예를 부석사와 경복궁에서 살펴보자.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 하지만 부석사를 방문해 보면 무량수전 앞에 서있는 시간보다, 무량수전을 뒤로 등지고 앞 산과 들을 바라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무량수전을 위하여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는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 중)". 외국의 유명 건축물들의 정원은 인위적으로 꾸미고 만들어진다. 프랑스 궁전의 정원이나, 일본식 분재를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부석사는 태백산맥 전체가 앞마당으로 여겨지도록 무량수전을 배치하였다.
자연, 주변환경과 어울림을 가장 큰 미로 삼는 우리 선조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주위경관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안은 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근정전을 중심으로 나지막이 배열된 경복궁 넘어 보이는 인왕산과 북한산의 모습.
박석이 깔린 근정전(경복궁)
우리 선조의 이러한 어울림은 건축의 설계 및 자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금만 주의 깊게 경복궁을 살펴보면, 임금님이 나라 일을 보시던 근정전 앞마당이 불규칙한 모양의 돌들로 깔려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돌이 바로 `박석`이다. 근정전 앞마당은 자연스러운 널찍한 돌을 이용하여 조각보를 이어 붙인 듯하다. 박석의 불규칙한 형태는 빛을 흩어지게 하여 눈부심이 없고 폭우가 쏟아져도 구불구불한 박석 이음새를 따라 물길이 흐르기 때문에 급하게 하수구로 몰리지 않는다고 한다. 근정전을 보느라 한번도 바닥에 놓여진 돌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 하지 않았는데 바닥의 중요함까지 생각했던 선조들의 지혜로움과 그들이 가졌던 실용적인 미학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예로 노비출신의 토목건축가였던 박자청이 설계한 경복궁의 꽃 경회루가 있다. 경회루는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로 꼽히는데 외국사신을 위한 연회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잔치를 베풀기 위한 장소였다고 한다. 그가 설계한 경회루의 연못물의 순환 시스템은 경회루 밑바닥의 기울기를 다르게 하고 경회루로 들어오는 세 곳의 물줄기 방향을 잘 조절함으로써 어떤 강제 순환장치 없이 물이 항상 맑은 상태를 유지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초에 그가 만든 순환 시스템은 500년이 훨씬 흐른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일본인 미술작가 기무라를 만났다. 그의 한국 일정 중 흥미로운 것은 창(국악) 공연 관람과 사찰에서 나누어 주는 산채 비빔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들이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경험인가 보다. 글로벌에 대한 우리의 답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기무라는 경복궁 서쪽 고희라는 카페에서 전시 중에 있음)
우리가 글로벌화를 진행함에 있어 과거의 것에만 의존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고유의 정체성 및 독창성이 없이는 세계 속에서 오랫동안 기억되고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빠른 성장은 고상한 표현으론 벤치마킹(Benchmarking), 상대방의 입장에선 모방 또는 Copy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방식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분명히 다음과 같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부턴 어떻게 성장하지? 항상 앞서 가르쳐 주던 스승이 없다면 누구에게서 이젠 배워야 할까?" 누군가 더 이상 가르쳐 줄 수 없다면, 이젠 스스로 그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 답을 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온 문화를 아는 것이다. 마치 피렌체와 베네치아가 과거 로마제국을 발판 삼아 르네상스를 꽃피웠듯이 말이다. 이 글을 계기로 나 스스로도 얼마나 우리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해 본다.
<컬처&리더십에 사용된 이미지는 사전협의를 통해 본 칼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Culture & Leadership 참여자: Awaken Group 강소영1), 아트엔젤컴퍼니 유화영&김정윤2)
(주1) 하버드 경영대학(MBA)을 졸업한 강소영은 맥킨지&컴퍼니(L.A.)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 미국, 싱가포르에 위치한 리더십 컨설팅 회사인Awaken Group을 설립하여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의 정부기관 및 기업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또한 Young Professionals’ Group을 설립하여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링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http://www.awakengroup.com)
(주2) 뉴욕 Pratt Institute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유화영은 크랜베리 디자인 대표(브랜딩회사), 갤러리 그림손 관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아트 컨설팅 회사인 아트엔젤컴퍼니의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또한 영국 Loughborough대학에서 경영학(박사)을 전공한 김정윤은 현재 아트엔젤컴퍼니의 창립 멤버로서 작가들 발굴과 프로젝트 전략을 조언해주고 있다.
(http://www.artangel.co.kr//mailto:artangelcompany@gmail.com)
홍성철 작가작품, String Mirror_eye_0192, 2010
<작가에게 글로벌화의 첫걸음은 ‘해외’ 옥션이나 아트페어에서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 것으로 출발한다>
최근 K-Pop이 YouTube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전세계로 퍼지면서 한국 드라마에 연이어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산업에 있어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과거 스승인 일본 기업(소니, 미쓰비시)들을 더 이상 그들의 경쟁자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외형적인 성장 규모와 그 속도를 보면, 우리는 글로벌화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잠시 한숨을 돌리며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글로벌화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 한 신문사의 K-Pop의 생명력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그 수명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떤 응답자는 벌써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도 평한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존재감이 알려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존재감에 무게를 가하고 영속성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Identity) 또는 독창성일 것이다.
얼마 전에 현대 갤러리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美다`라는 소신을 가졌던 수화 김환기 전시를 두 차례에 걸쳐 보았다. 부암동에 위치한 소박한 느낌의 환기 미술관을 좋아하여 가끔 들렸었지만 의외로 그의 대표작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김환기 회고전을 통해 그의 60여 점의 대표작들을 시대별로 볼 수 있었기에 무척 반가웠다. 게다가 전시기간 동안 있었던 김환기 예술세계에 대한 세미나를 통해서 그가 살아 생전에 어떠했는지 그의 취미가 무엇이었는지도 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의 문화유산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젊었을 때부터 고미술 수집을 즐겼다고 했다.
흑백 사진 속 그의 화실에는 여러 점의 백자와 문갑, 서화 등이 그의 작품들과 어울려 놓여있었다. 김환기의 우리문화 사랑은 백자항아리, 산, 학, 여인 등을 그린 초기 구상화의 소재에서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가 즐겨 사용했던 색채에 있어서도 푸른 색조의 정겨운 우리나라의 자연 색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수화 김환기는 일찍이 글로벌화에 눈을 뜬 사람이었다. 196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게 된 그는 당시 대상수상자였던 아돌프 고트리프(Adolf Gottlieb)의 한 벽을 꽉 채운 거대한 크기의 추상화에 큰 충격을 받는다. 새로운 회화형식에 도전을 받은 그는 나이 50세에 홍익대학교 학장과 미술협회 회장직(당시의 가장 명예로운 자리)을 버리고 세계미술의 중심이었던 뉴욕으로 홀로 건너가 무명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전까지 반 구상화 형식으로 선과 면에 충실했던 그는 `점`이라는 단순한 요소에 집중하면서 그만의 예술철학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마크 로소코(Mark Rothoko)나 아돌프 고트리프(Adolf Gottlieb) 같은 현대미술 거장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한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서정성인 담긴 네모꼴로 테두리 지어진 점으로 이루어진 `점화`를 탄생시킨다. 점들이 군을 이루면서 면이 되고 면들이 모여서 회전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점으로 만들어진 김환기의 점화작업은 그의 연구와 도전의 결과로 그 한국의 정체성과 현대적인 세련미가 어우러져 있다.
그가 생전에 매일 적었던 작업 노트에는 1974년 사고로 뉴욕에서 그가 눈을 감기 직전까지 새로운 작품 구상과 고민들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서양화의 기법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의 멋을 폭넓게 재창조해 낸 김환기, 결과적으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문화사랑이 우리나라의 근현대미술의 기초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환기미술관 외부 (부암동) 환기미술관 내부 (부암동)
글로벌화를 논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글로벌화의 시작점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세계의 누구도 갖지 못한 독창적인 것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것에 대한 공부와 이에 대한 자신감과 소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美`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선생님은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 생각한다. 본 답사기에서 말해주는 우리 선조의 미 중 하나는 `어우러짐`이다. 어울림에 대한 예를 부석사와 경복궁에서 살펴보자.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 하지만 부석사를 방문해 보면 무량수전 앞에 서있는 시간보다, 무량수전을 뒤로 등지고 앞 산과 들을 바라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무량수전을 위하여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는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 중)". 외국의 유명 건축물들의 정원은 인위적으로 꾸미고 만들어진다. 프랑스 궁전의 정원이나, 일본식 분재를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부석사는 태백산맥 전체가 앞마당으로 여겨지도록 무량수전을 배치하였다.
자연, 주변환경과 어울림을 가장 큰 미로 삼는 우리 선조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주위경관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안은 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근정전을 중심으로 나지막이 배열된 경복궁 넘어 보이는 인왕산과 북한산의 모습.
박석이 깔린 근정전(경복궁)
우리 선조의 이러한 어울림은 건축의 설계 및 자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금만 주의 깊게 경복궁을 살펴보면, 임금님이 나라 일을 보시던 근정전 앞마당이 불규칙한 모양의 돌들로 깔려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돌이 바로 `박석`이다. 근정전 앞마당은 자연스러운 널찍한 돌을 이용하여 조각보를 이어 붙인 듯하다. 박석의 불규칙한 형태는 빛을 흩어지게 하여 눈부심이 없고 폭우가 쏟아져도 구불구불한 박석 이음새를 따라 물길이 흐르기 때문에 급하게 하수구로 몰리지 않는다고 한다. 근정전을 보느라 한번도 바닥에 놓여진 돌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 하지 않았는데 바닥의 중요함까지 생각했던 선조들의 지혜로움과 그들이 가졌던 실용적인 미학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예로 노비출신의 토목건축가였던 박자청이 설계한 경복궁의 꽃 경회루가 있다. 경회루는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로 꼽히는데 외국사신을 위한 연회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잔치를 베풀기 위한 장소였다고 한다. 그가 설계한 경회루의 연못물의 순환 시스템은 경회루 밑바닥의 기울기를 다르게 하고 경회루로 들어오는 세 곳의 물줄기 방향을 잘 조절함으로써 어떤 강제 순환장치 없이 물이 항상 맑은 상태를 유지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초에 그가 만든 순환 시스템은 500년이 훨씬 흐른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일본인 미술작가 기무라를 만났다. 그의 한국 일정 중 흥미로운 것은 창(국악) 공연 관람과 사찰에서 나누어 주는 산채 비빔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들이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경험인가 보다. 글로벌에 대한 우리의 답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기무라는 경복궁 서쪽 고희라는 카페에서 전시 중에 있음)
우리가 글로벌화를 진행함에 있어 과거의 것에만 의존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고유의 정체성 및 독창성이 없이는 세계 속에서 오랫동안 기억되고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빠른 성장은 고상한 표현으론 벤치마킹(Benchmarking), 상대방의 입장에선 모방 또는 Copy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방식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분명히 다음과 같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부턴 어떻게 성장하지? 항상 앞서 가르쳐 주던 스승이 없다면 누구에게서 이젠 배워야 할까?" 누군가 더 이상 가르쳐 줄 수 없다면, 이젠 스스로 그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 답을 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온 문화를 아는 것이다. 마치 피렌체와 베네치아가 과거 로마제국을 발판 삼아 르네상스를 꽃피웠듯이 말이다. 이 글을 계기로 나 스스로도 얼마나 우리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해 본다.
<컬처&리더십에 사용된 이미지는 사전협의를 통해 본 칼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Culture & Leadership 참여자: Awaken Group 강소영1), 아트엔젤컴퍼니 유화영&김정윤2)
(주1) 하버드 경영대학(MBA)을 졸업한 강소영은 맥킨지&컴퍼니(L.A.)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 미국, 싱가포르에 위치한 리더십 컨설팅 회사인Awaken Group을 설립하여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의 정부기관 및 기업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또한 Young Professionals’ Group을 설립하여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링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http://www.awakengroup.com)
(주2) 뉴욕 Pratt Institute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유화영은 크랜베리 디자인 대표(브랜딩회사), 갤러리 그림손 관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아트 컨설팅 회사인 아트엔젤컴퍼니의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또한 영국 Loughborough대학에서 경영학(박사)을 전공한 김정윤은 현재 아트엔젤컴퍼니의 창립 멤버로서 작가들 발굴과 프로젝트 전략을 조언해주고 있다.
(http://www.artangel.co.kr//mailto:artangelcompan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