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전광판만 뚫어져라 바라봐야 될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선택의 폭은 꽤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감독이나 배우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오죽하면 ‘믿고 본다’는 말도 있지 않나.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나타내는 이 말. ‘네가 선택했다면 나는 그냥 보겠다’는 뜻이다. 지난달 31일 개봉된 영화 ‘더 테러 라이브’(김병우 감독, 씨네2000 제작). 우리는 주연 배우 하정우(35) 만을 믿고 이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
하정우는 마감 뉴스 진행자에서 라디오 방송으로 밀려난 뉴스 앵커 윤영화 역을 맡았다. 윤영화는 생방송 도중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테러범의 협박 전화를 받게 되고 이 테러 사건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게 된다. 연쇄 살인범, 스키점프 국가대표, 조직 보스, 연애초보 소설가, 비밀요원 등 매 작품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 왔던 하정우는 이번에도 쉽게 가지 않았다. 정갈하면서도 와일드하고, 냉정하면서도 동정할 줄 아는 윤영화는 곧 하정우였다.
◆ “단독 주연 부담감은 이미 예전에 저 멀리”
한정적인 장소에서 한 사람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영화는 대개 두 가지 반응으로 갈린다. 지루하거나 혹은 몰입도가 뛰어나거나. 보는 관객만큼이나 배우도 힘들었을 터. 라디오 부스라는 막힌 공간에서 97분 중 거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더 테러 라이브’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사르르 녹았다. 여러 가지 각도의 컷(Cut)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 관객들이 수 없이 바라봤을 인물. 하정우의 원맨쇼가 빛을 발했다.
“단독 주연에 대한 부담감? 그건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을 하기 전 모두 끝났어요. 영화를 촬영할 때는 그런 걱정들이 모두 사라진 뒤였죠. 시나리오를 선택하기 전에 ‘과연 이 작품이 재미있을까’ ‘감독과의 호흡은 잘 맞을까’ 원론적인 고민들을 하거든요? 그 때 같이 했던 고민이었어요. 혼자 한다는 어려움 보다는 스튜디오의 공기 때문에 혼났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무척 춥거든요. 어느 순간 감각이 없어져버렸다니까요.”
스튜디오 속에 갇힌 하정우는 제대로 된 윤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관객들이 원하는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진행자의 모습을 참고했고 급박한 사고 현장을 전하기 위해 성수대교 붕괴 당시 중계나 삼풍백화점 붕괴 뉴스도 챙겨봤다. 한참을 설명하던 하정우는 영화 속 대사들을 읊어나가기 시작했다. 입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대사들이 하정우의 노력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윤영화는 기자 출신 아나운서에요. 그래서 아나운싱을 하는 데 있어 조금은 자유롭죠. 아나운서를 보면 톤도 높고 정제된 느낌이 드는데 윤영화에게 그런 면은 없어요.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죠. 대사의 맛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관객들은 캐릭터에게 원하는 것이 있거든요. 영화적인 부분 말이에요. 스물 한 개 챕터의 변화 선을 중점으로 하되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부분들을 고려했죠. 잠깐 잠깐의 리액션도 만들어 내고요.”
◆ “그래프 내미는 감독 생전 처음”
김병우 감독의 영화적 흐름과 하정우의 연기가 맞닿았던 이유에는 두 사람의 관계도 한 몫 했다. 기자간담회에서부터 이들은 하나의 파트너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보여줬다.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다 보니 더욱 조화를 이루게 됐고 그 결과는 영화라는 결과물로 증명됐다. 특히 김병우 감독이 하정우에게 내밀었다는 심리 변화 그래프는 하정우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사람을 처음 봤어요. 제가 그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훨씬 디테일하더라고요. 언어영역 공부를 할 때 단락을 나누어서 공부를 하는 것처럼 이 부분에서 첫 목표가 뭔지, 이 인물은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그래프로 만들어 문서로 주더라고요. ‘준비를 정말 많이 했구나. 고민을 정말 많이 했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죠. 전 참 운도 좋아요. 밥이나 술을 같이 안 먹어도 영화적으로 마음이 통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거든요. 제대로 만났죠.”
무서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하정우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더 테러 라이브’의 반응과 예매율. 최근 직접 `조작 댓글`을 달기도 했다고 밝혀 화제가 된 하정우는 “영화 사이트는 다 들어가 본다. 무슨 주식하는 사람도 아니고 계속해서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영화가 나올 때만 이러니 1년에 2번 정도? 영화는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케팅 역시 필수 아니겠는가. 배우도 거들어야 된다”며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이런 것에 영 익숙하지 않을 것만 같은 하정우의 입에서 홍보 이야기가 나오니 고개가 절로 돌아갈 수 밖에.
“영화 개봉 전, 저는 채점을 기다리는 학생이에요. 미묘하게 긴장이 되면서 설레요. 복잡 미묘하죠. 이미 시험지는 다 풀었겠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잖아요. 한 시간에 한 번 씩 실시간 예매율을 체크하면서 캡처해요. 어쩔 수가 없나봐요. 절 믿고 봐도 되냐고요? 네. 재미있게 봐주세요. 관객 500만 명 돌파하면 같이 회식이나 하죠. 그 때 꼭 만났으면 좋겠네요.”
끝까지 쿨한 이 남자,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일까. 먹방(먹는 방송) 1인자, 하대세, 하드립(하정우+애드립)까지 무수한 별명을 가진 하정우. 시원하게 물을 마시던 윤영화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친다. 정작 이날은 우아하게 티포트를 옆에 놓고 찻잔을 들었지만.(사진=판타지오)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min@wowtv.co.kr
하정우는 마감 뉴스 진행자에서 라디오 방송으로 밀려난 뉴스 앵커 윤영화 역을 맡았다. 윤영화는 생방송 도중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테러범의 협박 전화를 받게 되고 이 테러 사건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게 된다. 연쇄 살인범, 스키점프 국가대표, 조직 보스, 연애초보 소설가, 비밀요원 등 매 작품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 왔던 하정우는 이번에도 쉽게 가지 않았다. 정갈하면서도 와일드하고, 냉정하면서도 동정할 줄 아는 윤영화는 곧 하정우였다.
◆ “단독 주연 부담감은 이미 예전에 저 멀리”
한정적인 장소에서 한 사람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영화는 대개 두 가지 반응으로 갈린다. 지루하거나 혹은 몰입도가 뛰어나거나. 보는 관객만큼이나 배우도 힘들었을 터. 라디오 부스라는 막힌 공간에서 97분 중 거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더 테러 라이브’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사르르 녹았다. 여러 가지 각도의 컷(Cut)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 관객들이 수 없이 바라봤을 인물. 하정우의 원맨쇼가 빛을 발했다.
“단독 주연에 대한 부담감? 그건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을 하기 전 모두 끝났어요. 영화를 촬영할 때는 그런 걱정들이 모두 사라진 뒤였죠. 시나리오를 선택하기 전에 ‘과연 이 작품이 재미있을까’ ‘감독과의 호흡은 잘 맞을까’ 원론적인 고민들을 하거든요? 그 때 같이 했던 고민이었어요. 혼자 한다는 어려움 보다는 스튜디오의 공기 때문에 혼났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무척 춥거든요. 어느 순간 감각이 없어져버렸다니까요.”
스튜디오 속에 갇힌 하정우는 제대로 된 윤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관객들이 원하는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진행자의 모습을 참고했고 급박한 사고 현장을 전하기 위해 성수대교 붕괴 당시 중계나 삼풍백화점 붕괴 뉴스도 챙겨봤다. 한참을 설명하던 하정우는 영화 속 대사들을 읊어나가기 시작했다. 입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대사들이 하정우의 노력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윤영화는 기자 출신 아나운서에요. 그래서 아나운싱을 하는 데 있어 조금은 자유롭죠. 아나운서를 보면 톤도 높고 정제된 느낌이 드는데 윤영화에게 그런 면은 없어요.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죠. 대사의 맛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관객들은 캐릭터에게 원하는 것이 있거든요. 영화적인 부분 말이에요. 스물 한 개 챕터의 변화 선을 중점으로 하되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부분들을 고려했죠. 잠깐 잠깐의 리액션도 만들어 내고요.”
◆ “그래프 내미는 감독 생전 처음”
김병우 감독의 영화적 흐름과 하정우의 연기가 맞닿았던 이유에는 두 사람의 관계도 한 몫 했다. 기자간담회에서부터 이들은 하나의 파트너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보여줬다.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다 보니 더욱 조화를 이루게 됐고 그 결과는 영화라는 결과물로 증명됐다. 특히 김병우 감독이 하정우에게 내밀었다는 심리 변화 그래프는 하정우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사람을 처음 봤어요. 제가 그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훨씬 디테일하더라고요. 언어영역 공부를 할 때 단락을 나누어서 공부를 하는 것처럼 이 부분에서 첫 목표가 뭔지, 이 인물은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그래프로 만들어 문서로 주더라고요. ‘준비를 정말 많이 했구나. 고민을 정말 많이 했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죠. 전 참 운도 좋아요. 밥이나 술을 같이 안 먹어도 영화적으로 마음이 통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거든요. 제대로 만났죠.”
무서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하정우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더 테러 라이브’의 반응과 예매율. 최근 직접 `조작 댓글`을 달기도 했다고 밝혀 화제가 된 하정우는 “영화 사이트는 다 들어가 본다. 무슨 주식하는 사람도 아니고 계속해서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영화가 나올 때만 이러니 1년에 2번 정도? 영화는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케팅 역시 필수 아니겠는가. 배우도 거들어야 된다”며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이런 것에 영 익숙하지 않을 것만 같은 하정우의 입에서 홍보 이야기가 나오니 고개가 절로 돌아갈 수 밖에.
“영화 개봉 전, 저는 채점을 기다리는 학생이에요. 미묘하게 긴장이 되면서 설레요. 복잡 미묘하죠. 이미 시험지는 다 풀었겠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잖아요. 한 시간에 한 번 씩 실시간 예매율을 체크하면서 캡처해요. 어쩔 수가 없나봐요. 절 믿고 봐도 되냐고요? 네. 재미있게 봐주세요. 관객 500만 명 돌파하면 같이 회식이나 하죠. 그 때 꼭 만났으면 좋겠네요.”
끝까지 쿨한 이 남자,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일까. 먹방(먹는 방송) 1인자, 하대세, 하드립(하정우+애드립)까지 무수한 별명을 가진 하정우. 시원하게 물을 마시던 윤영화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친다. 정작 이날은 우아하게 티포트를 옆에 놓고 찻잔을 들었지만.(사진=판타지오)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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