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부동산 재벌, 뉴욕 그리고 고집스러운 헤어스타일이라는 기존 이미지와 함께 거침없는 언변으로 트위터 소통을 즐기는 미국 대통령 당선자 그리고 독일어로 대승리를 뜻하는 트럼프(Triumph)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하게 됐다.
통신원이 살고 있는 이 곳에선 독일의 작은 시골마을 출신이던 트럼프 가문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사연과 대통령을 배출하기까지의 스토리가 흥미롭게 다뤄지고 있다.
(▲사진=도시 칼슈타트의 위치, 출처: Infografik Die Welt, https://www.welt.de )
작은 와인제조 마을 칼슈타트
기차 여행이 대표적인 독일에서 기차로 갈 수 없는 소수의 지역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인구 1,200명의 작은 시골마을 칼슈타트이다.
독일의 서부에 위치한 16개 연방자치주의 하나인 라인란트팔츠에 속한 이 마을은 마인츠의 서쪽, 와인을 생산하는 높은 지대(156m)에 위치해 있다.
칼슈타트를 묘사하면 이렇다.
마을 중간에는 교회 하나가 위치해 있고 지역의 특산물인 와인과 자우마겐(독일 전통음식 중 하나. 돼지고기, 소시지, 감자들을 이용해 만든 요리, 칼슈타트가 원조)에 자부심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는 몇 개의 레스토랑 그리고 붉은 지붕들이 모여있다.
마을에 하나 있는 베이커리는 오후가 되면 문을 닫는다. 독일에서 존경받는 전 총리 헬무트콜이 이 도시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사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소박한 시골 사람들. 이곳이 바로 칼슈타트다.
(▲사진=도시 칼슈타트의 풍경, 출처: http://www.spiegel.de/politik )
뉴욕의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뿌리는 이 시골 마을 속 작은 창문을 가진 한 가정집이다.
이 마을에는 트럼프와 친척인 54세의 베언트 바이젠본이 여전히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트럼프와 증조부가 같다. 그는 즉 트럼프의 먼 조카뻘인 셈이다. 베언트 바이젠본의 가족에게 도널드 트럼프 집안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준 사람은 그의 아버지다.
뿌리가 같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와 이 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은 트럼프의 대통령에 당선 소식에도 불구하고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이 도시의 지자체장인 토마스 야보렉은 지난 6월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가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자 "그들은 우리 마을에 더 이상 살지 않는다. 왜 우리가 그에 대해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가"라고 답했다.
이민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 프리드리히 트럼프
16세의 소년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1885년 고향 칼슈타트를 떠난다. 그가 향한 곳은 기회의 땅 미국.
그가 고향을 떠나던 당시는 독일 연방에서 미국으로 떠난 이민자가 매년 10만명을 넘던 시절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이름을 프리드리히에서 프레데릭으로 바꾸었다.
그가 처음 일한 곳은 뉴욕의 한 미용실이었다. 이후 그는 서부 해안 쪽(캐나다 유콘)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금을 채취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다루는 독일의 매체는 이 사업이 레스토랑, 호텔 혹은 이발소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금을 캐는 사람을 상대로 음식을 판다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그는 음식이나 서비스의 대한 비용을 순금 조각으로 받았다. 그리고 여기서 번 금과 돈을 맨하탄에 있는 땅을 사는데 사용했다. 지금 트럼프의 상징적 건물이 있는 맨하탄 중심지가 그 당시에는 매우 값싼 땅이었다.
골드러쉬 시기에 금 자체가 아닌 금을 캐는 사람에게 집중해서 운영한 사업 그리고 자신이 일했던 뉴욕의 중심가에 그 돈을 투자한 선구안을 보면 그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와인 농장을 운영하거나 농사를 짓기엔 사업과 투자 감각이 뛰어났던게 분명하다.
이 타고난 사업가 프리드리히 트럼프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할아버지다. 그가 투자한 맨하탄의 부동산은 현재 트럼프가문이 가진 어마어마한 재산의 초석이 됐다.
(▲사진=프리드리히와 엘리자베스 부부 그리고 그들의 세 자녀. 사진 속 큰 아들이 도널드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이다. 약 1915년 촬영 추정, 출처: http://www.spiegel.de/politik)
그는 사업 성공을 거둔 뒤 독일로 돌아가 여행을 하던 중 만난 이웃처녀 엘리자베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 둘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사업과 삶을 함께 이루어 나갔지만 그녀는 고향마을을 사랑했고 그리워했다.
그녀의 향수병 때문에 그는 독일로 돌아가고자 노력했으나 끝내 그럴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당시 칼슈타트 지역에 영향력을 가진 바이에른주의 왕이 허가없이 떠난 이민자에 대해선 시민권의 재취득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프리드리히가 병역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것도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들이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허가되지 않자 트럼프의 조부모는 미국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뉴욕에서 트럼프 가문이 이어져오게 된 것이다.
트럼프가 바라보는 칼슈타트와 칼슈타트가 바라보는 트럼프
이민자가 큰 성공 그리고 그의 자손들이 이뤄낸 사업적 성과. 특히 도널드 트럼프는 성공한 사업가와 셀러브리티의 영역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차기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그런 그를 칼슈타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트럼프는 자신의 뿌리인 진짜 고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진=좌, 현재 칼슈타트에 위치한 실제로 트럼프의 선조가 살았던 집. 우, 트럼프의 선조가 고향에 남긴 한 묘비, 출처: http://dw.com/p/1Hmok )
칼슈타트에는 트럼프에 대한 소개나 안내문, 길 이름 등이 전무하다. 이 작은 마을에서 트럼프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는 곳은 그들의 선조가 남긴 묘비석 뿐이다. 그가 오랜기간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이 마을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진건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이 마을 출신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지모네 멘델은 "칼슈타트의 왕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여기에서 그녀는 자신의 고향마을과 미국의 관계를 찾아 나서며 트럼프의 뿌리와 친척을 소개했다.
참고로 제목이 "왕들"인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가 트럼프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인 브랜드인 하인즈의 고향도 바로 이 마을이다.
하인즈는 미국으로 떠나 자기 가족의 케찹 레시피를 이용해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그의 친척들 역시 여전히 이 마을에 살고 있는데 원조 하인즈 레시피를 이용한 케찹을 소규모로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판매되는 케찹의 이름 역시 "하인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트럼프는 "나는 칼슈타트를 사랑한다. 나는 독일의 핏줄을 가진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독일을 방문한다면 꼭 자신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이자 자신의 고향인 이 곳을 방문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는 이 마을을 단 한번도 다녀가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대전 이후 트럼프의 가족들은 미국에서 자신들이 스웨덴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본인도 자신의 혈통과 출신에 대해 오랜 시간을 함구해왔다.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럼프의 이런 태도 때문일까. 이 마을 사람들은 트럼프보다는 하인즈를 더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며 자랑스러워한다. 다큐멘터리의 제작자 지모네는 그 이유를 "아마도 사람들은 하인즈의 제품을 트럼프의 사업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설명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트럼프를 칼슈타트의 자손으로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다. 트럼프가 미국 대선 경선을 성공적으로 이기고 공화당 후보가 됐을 때도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그들은 트럼프가 자신의 뿌리를 독일의 칼슈타트가 아닌 미국이나 스웨덴 등 다른 곳으로 가져가길 바라고 있다. 동시에 미국 공화당원과 지지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정책의 노선을 설정할까봐 우려했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마을 사람들의 트럼프에 대한 생각은 "굳이 자랑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 "앞으로 큰 바람을 몰고 올 인물"으로 짧게 묘사됐다.
이제 약 20일 뒤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이 돼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다.
만약 그의 할아버지가 용기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의 바람대로 고향에 계속 머물렀다면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과 질문 결론이 그의 할아버지의 용기와 결단에 모두가 감사하는 결과로 맺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가 바이에른 연방정부의 허가없이 꿈을 향해 이민을 떠났던 경제적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다수를 포용하는 리더가 되길 기대한다.
syyang0418@gmail.com
*상기 기사는 한국경제TV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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