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증권사 애널 "보고서 쓰기도 벅차"…'감원·영업 압박' 이중고

김종학 기자

입력 2017-02-24 09:53   수정 2017-02-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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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고에 신음하는 국내 애널리스트
- `영업 하랴, 인사 칼바람 피하랴`
- 이중고에 신음하는 국내 애널리스트




# 대형 증권사 재직 15년차 애널리스트A
"억대 연봉을 꿈꾸며 모진 리서치어시스턴트(RA) 생활을 감내했지만 여타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됐다. 요즘처럼 연봉 협상이 달린 설문조사(Poll) 시즌이 다가오면 마음이 초조하다. 듣자하니 투자라고 생각하고 연봉 전액을 로비에 올인한 애널도 있다던데.. 부랴부랴 술자리를 만들고 관리(?)하다보니 정작 다음 리포트를 쓸 겨를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우선 RA한테 맡겨야 할 것 같다."

# 중형 증권자 재직 8년차 애널리스트B
"증권가에 취직했다며 친구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받았던 때는 다 지나가고, 지금은 혹독한 인사 칼바람을 피하느라 정신없다. 지난 구조조정 때문에 리서치센터 분위기가 어둡다. 다른 사람들 몫까지 소화하느라 야근은 물론 주말출근까지 부지기수지만, 리서치센터 축소 추세를 생각하면 내색하기도 어렵다. 리서치센터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만 같아 씁쓸하다."

‘증권가의 꽃’이라 불리며 억대 연봉을 자랑했던 애널리스트들의 화려한 과거는 옛 말이 된 지 오래다. 한 쪽에서는 영업 스트레스, 다른 한 쪽에서는 인력 감축 압박이 애널리스트들의 삶을 옥죈다. 이런 이중고 속에서 리포트의 품질은 외면될 수밖에 없다. 우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이유다.



△ 베스트애널리스트?…물밑에선 `영업 전쟁`

애널리스트가 받는 대부분의 영업 스트레스는 언론사에서 선정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들기 위한 로비에서 비롯된다. 언론사는 펀드매니저와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애널리스트들의 순위를 매긴다. 이 과정에서 표를 확보하기 위해 애널리스트 사이의 영업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요새는 설문조사 때문에 접대를 세게 한다. 한 애널은 자기 사비로 펀드매니저 가족들이랑 해외여행까지 갔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설문조사 결과가 연봉이나 하우스(리서치센터)의 신뢰도에 직결된다”고 밝혔다.

원칙대로라면 접대나 선물 공세가 아닌 고품질의 리포트 발행을 통해 표심을 사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리서치센터 인력 감축 추세로 인해 업무 부담이 과도해진 애널리스트들에게는 보다 효율적인 선택지가 더 유혹적이다.





△ 주식시장 황금기는 어디로…비정규직 전락한 애널리스트

2011년 유럽발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미래는 장미빛이었다. 꾸준한 주가 상승세와 풍부한 거래 대금이 주식시장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은 보통 1억원 이상이었으며, 베스트애널리스트로 선정되면 연간 5억~10억 이상의 몸값을 자랑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계약이 만료되면 더 높은 몸값을 받고 다른 증권사로 이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새 상황은 완전히 뒤바꼈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주식시장에 불어온 장기 불황은 ‘신의 직업’이라던 애널리스트를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추락시켰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직접 수익을 창출하는 부서가 아닌데다 고연봉자들이 많은 리서치센터를 구조조정 1순위로 삼을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가 애널리스트 황금기의 종언을 불러온 셈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등록된 애널리스트는 현재 1,121명, 한때 대형 증권사마다 100여명에 달했던 애널리스트 수는 2010년말 이후 340명 감소했다.



상위 10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인력 현황을 5년 전과 비교한 결과, 7개의 증권사가 인력을 감원하거나 같은 수준에서 유지했다. 미래에셋대우나 KB현대증권과 같이 일부 증권사가 합병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비율이다. 실제로 3년 전부터 시작된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증권사마다 많게는 150~200명씩 회사를 떠났고, 토러스투자증권은 아예 리서치센터를 폐지하기도 했다.

리서치센터 내 인력들이 영업 등 다른 부서로 옮기는 일도 빈번해졌다. 올 초 교보증권은 애널리스트 3명을 지점 영업부서로 전보 조치했다. 심지어는 센터장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최정상급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조윤남 전 대신증권 센터장도 대신자산운용 마케팅·운용총괄 전무로 인사이동했다.


△ 과중한 업무…리포트 품질 저하 불가피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은 인력이 감당해야 할 업무 부담이 과중하다. 실제로 2016년 애널리스트 1명 당 발간한 리포트 개수는 2012년에 비해 약 10개 가까이 늘었다. 1인당 평균 110여개의 리포트를 발간하는 현실을 비춰봤을 때, 약 10% 정도의 업무량이 늘어난 셈이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근무했던 한 금융업 종사자는 “명절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그냥 내 개인적인 삶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이직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사람마다 다르지만 못해도 6일은 일한다. RA같은 경우는 시니어가 2명 이상이면 쉬는 날 없이 매일 일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과도한 업무와 영업 압박에 매몰린 애널리스트들이 실질적으로 리포트 생산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 RA로 근무했던 한 금융업계 종사자는 “본인(애널리스트)은 외부활동이나 세일즈하느라고 리포트 쓸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RA들한테 아예 맡겨버리는거다. 자연스레 리포트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증권사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소형주를 담당하던 스몰캡팀을 해체하고, 대형주 애널리스트에게 스몰캡 종목 분석을 맡기는 등 무리한 관행도 생겨났다. 보통 한 섹터에서 수년간 전문성을 길러 리포트를 발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리포트의 전문성이나 품질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 투자 위축 부른 `저품질 보고서`…개선 방안 마련 시급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 3곳 이상이 추정한 상장기업 목표주가는 실제 주가와 최대 80% 가까이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AJ네트웍스는 13일 현재 목표주가 괴리율이 79.3% 에 달했고, 나스미디어, 삼성SDS, 연우, 휠라코리아 등은 실제주가와 목표주가가 60%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목표주가 괴리율이 10% 미만인 종목은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I, 한전기술, 금호석유 등 273개 종목 중 13개 종목에 그쳤다.

목표주가와 실제주가의 괴리율이 크다는 것은 증권사가 해당 기업의 적정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널리스트의 분석 보고서는 외국인,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개인투자자에게도 투자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리서치센터 축소와 리포트 품질 저하는 자본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연수갑)은 “기업평가를 위한 자료제출을 꺼리는 기업문화 때문에 리서치센터의 역량이 중요한 상황”이라며 “단기수익에 급급한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 영업 압박’, 기초자료에 대한 중요성보다는 비용 줄이기에 급급한 ‘리서치 센터의 인력조정’ 은 증권가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품질의 보고서로 인한 피해가 정보가 부족한 소액 투자자에게 미칠 수 있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업계 불황에 따른 인력 감축 문제는 우선 차치하고, 애널리스트의 영업 스트레스만이라도 경감해 줘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모이고 있다.

올 초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로 구성된 4자 협의체는 각 증권사가 합리적인 애널리스트 보수산정 기준을 내부규정에 명확하게 마련토록 하게 했다. 리포트의 품질 보다는 법인영업 기여도, 로비 등에 의해 보수가 산정되는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의무사항이 아닌 ‘자율규제’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증권사들에게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을 투명하게 산정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권고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 얼마의 연봉을 지급하라고까지 간섭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애널리스트들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애널리스트들의 고충은 안팎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취재 : 김종학 기자, 권승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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