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부 이야기⑭] 공기(Air) 민주화에 인생 건 IT 전문가…이우헌 클레어 대표

이성경 부장 (부국장)

입력 2017-12-0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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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표 온라인 쇼핑몰에서 공기청정기를 검색해 보면 브랜드만 100여개, 수 천개의 제품이 뜬다. 중복된 것을 빼더라도 1,000개 가까운 공기청정기가 시중에 나와 있다. 잘 나가는 IT 컨설턴트인 이우헌 대표는 한 물 갔다는 제조업 창업, 그 중에서도 수 백개 회사가 경쟁하고 있는 공기청정기 사업에 뛰어 들었다. (*지금 회사 이름은 에이치앤드컴퍼니 이다. 이달 중 클레어 주식회사로 변경 예정이어서 새 회사명을 쓰기로 했다.)

    ◇ 잘 나가는 IT 컨설턴트, 제조업에 뛰어들다

    이우헌 클레어 대표는 LG-EDS시스템(현재 LG CNS)과 미국 선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소프트웨어 개발과 시스템엔지니어링을 담당했던 IT 전문가이다. 기업 소프트웨어 최강자인 독일 SAP의 솔루션이 국내에 막 보급되던 시기, 이 대표는 6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2002년 IT 컨설팅 회사 '에이티앤에스(ATNS)'를 창업했다.

    "당시 국내 기업 중 독일 SAP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곳은 삼성이 유일했는데 차츰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되는 시기 였어요. 저는 SAP 시스템을 컨설팅 하는 회사를 창업했는데 6~7년간 호황이 이어져서 사업도 괜찮았어요."

    IT 컨설팅을 위해 찾아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대부분 제조업체, 그들을 만나면서 이 대표 마음 속에 무엇인가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피어 올랐다. 결국 창업 10년 만에 제조업 진출을 결심하고, 평소 꿈 꿨던 가전제품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제조업 초보자인 이 대표는 신규 진입이 비교적 쉬운 공기청정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거실용 대형 공기청정기가 아닌 침대 머리맡이나 책상 위에 두는 소형 제품으로 차별화 했다.

    "거실에 에어컨이 있어도 모든 방이 시원하지는 않아요. 같은 원리로 당시 시중에 거실용 공기청정기는 많았지만 침대 머리맡이나 책상 위에 두는 작은 제품은 없었어요. 대형 제품과 경쟁관계가 아니라 보완재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소형 공기청정기는 소음이 나지 않고 전력소모가 적어야 한다. 이 대표는 기존의 헤파(HEPA) 필터가 아닌 정전기로 먼지를 끌어당기는 필름형 정전필터(e2f)를 개발해 소음과 전력 문제를 해결했다. 여기에 세련된 디자인까지 놓치지 않았다.

    1년6개월의 개발 끝에 2014년2월 드디어 나만을 위한 작은 공기청정기 '클레어'를 출시했다. 공기청정기 만을 위한 새로운 회사 에이치앤드컴퍼니도 설립했다. 첫 번째도 아니고 두 번째 창업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 "만들어 놓으면 잘 팔릴 줄 알았어요"

    대망의 첫 작품, 하지만 '클레어'는 팔리지 않았다.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잘 팔릴 줄 알았어요. 제품이 예쁘고 기능이 괜찮으면 무조건 잘 팔릴 줄 알았지요. 하지만 안 팔렸어요. 제조업은 정말 다르다 라는 것을 절감 했어요."

    처음의 자신감은 점차 걱정으로 바뀌었고 그 단계가 지나니 오기가 생겼다. 2년 가까이 팔리지 않는 제품을 끌어안고 있던 이 대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외 전시회에서 바이어들이 찾아오면 저는 우리 제품의 기능을 열심히 설명했어요. 그러면 그들은 '어 그래' 하며 지나갔어요. 바이어들을 30분, 1시간 동안 붙잡고 말할 기회를 만들려면 우리가 왜 이 제품을 만드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얘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대표는 텀블러 처럼 생긴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들고 미국의 최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starter)'의 문을 두드렸다.

    "킥스타터에서 제품에 대한 설명 방식을 바꾸었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걸어 다니면서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고, 이제 생수나 커피 처럼 좋은 공기도 휴대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제품 기능이 아닌 소비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흘 만에 목표금액을 넘기고 두 배 이상 주문이 들어왔다. 총 투자 금액은 약 6만 달러로 크지 않았지만 제조업 진출 이후 처음 맛 본 성공이었다.

    이후 해외 전시회에서 킥스타터 제품이라고 소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바이어들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킥스타터에서 공감해 준 바이어들이 다른 제품까지 관심을 가지면서 수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뒤돌아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설명하는 방식을 바꾼 것이었고, 킥스타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 매개체 였어요."

    킥스타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와디즈, 중국 징동닷컴, 일본 마쿠아케까지 석권하며 한미일중 4개 나라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최초의 스타트업이 됐다. 지금까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받은 투자 금액은 17억~18억원에 달한다.



    ◇ 킥스타터 다이어리

    4개국 크라우드펀딩 공략은 수출 실적으로 이어졌다. 킥스타터 이전인 2015년 2억원에 불과하던 수출 실적은 지난해 20억원, 올해 50억원 이상으로 폭증했다. 올해 예상 매출 80억원의 65%가 수출 실적이다. 작은 스타트업으로서는 경이적인 수치다.

    "올 여름, 처음으로 컨테이너 5개가 한번에 실려 나갔어요. 짜릿하더라고요. 지난해엔 수출 시장이 대만에 집중돼 있었는데 올해는 홍콩, 인도네시아, 미국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이 추세라면 내년 매출은 올해 보다 또다시 2배 늘어난 150억원 정도 될 것 같아요."

    이 대표는 내년 초 미국으로 건너가 킥스타터에 재도전한다. 이번 제품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장착한 휴대용 공기청정기로 목표 금액은 20만 달러 이다. 이 대표는 그 동안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좌충우돌 경험을 체계화 하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다.

    "킥스타터에 도전하는 과정을 일기로 쓰고 있어요. 며칠 남기고 뭘 하고 뭘 준비해야 한다는 일기를 써서 크라우드펀딩을 준비하는 분들이 참고하시도록 모두 공개할 예정입니다"

    ◇ 손석희 은퇴 계획에 위기감

    작은 공기청정기 회사는 올해말 큰 전기를 앞두고 있다. 회사 이름을 에이치앤드컴퍼니에서 클레어 주식회사로 변경한다. 제품 브랜드를 회사명으로 삼아 정면승부 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내 최초의 공기청정 카페를 오픈 할 예정이다.

    "사람들이 밖에서 우리 카페의 간판을 보면 대기의 질을 한 눈에 알 수 있고, 고객들이 공기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매장 안으로 들어오시면 할인도 해 드리고요. 공기청정 체험도 하고 구매까지 할 수 있는 공간 이에요. 필터교체도 하고요."

    이 대표는 2~3년 전부터 깨끗한 공기를 특정한 공간에 구현해 체험하게 하는 공기청정 카페를 구상해 왔다. 하지만 자금 여력이 없어 미루고 있었는데 몇 개월 전 강력한 경쟁상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지난 5월 즈음 손석희 JTBC 앵커가 은퇴하면 공기청정 카페를 열겠다고 밝히더라고요. 우리 아이디어인데 위기감이 몰려 왔어요. 그래서 일단 연내 1호점을 내고 내년에 5호점까지 낼 계획입니다. 속도를 높이고 있어요. (웃음)"

    이 대표는 공기청정기를 처음 출시할 때부터 IT를 융합하고 공기 질과 관련된 빅데이터와 콘텐츠를 접목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세상엔 수많은 공기청정기 회사가 있지만 직원 20명 남짓의 작은 스타트업은 맑은 공기를 누릴 수 있는 권리와 공간을 꿈꾸고 있다.

    "맑은 공기는 필수에요. 그리고 그 맑은 공기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누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이 추구하는 가치 입니다. 또한, 맑은 공기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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