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들와들' 최강한파에 패션보다 중무장…"핫팩 없인 못 나가"

입력 2018-01-2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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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열 속옷, 긴소매 티셔츠, 후드티, 방한 조끼, 거위 털 패딩까지 상의만 다섯 겹. 하의는 내복에 기모 쫄바지, 바지까지 세 겹을 입는 게 이제 기본이 됐다.
의류디자이너 최 모(30·여) 씨는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한 `최강한파`에 그렇게 좋아하는 패션을 포기했다. "뚱뚱해 보이는 게 끔찍이도 싫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민망해했다.
매일 아침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도 -10도를 밑도는 강추위는 서울 시민들의 옷차림을 가장 먼저 변화시켰다.
고객을 만날 일이 잦아 항상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녀야 하는 보험설계사 육 모(31) 씨는 평소 고집하던 모직 코트를 장롱 안에 고이 넣어두고 울퉁불퉁한 패딩으로 중무장했다. 육 씨는 "이런 날씨에는 패션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구두를 주로 신는 회사원 김 모(38) 씨는 "어제·오늘처럼 발이 동상에 걸릴 것처럼 추운 날에는 일부러 운동화를 챙겨 신는다"며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운동화가 구두보다 훨씬 따뜻하다"고 `꿀팁`을 건넸다.
직장인 이 모(36) 씨는 요즘 넥타이를 꼭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그는 "여름에 `쿨비즈`를 홍보하면서 넥타이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 체감온도가 2도 낮아진다고 하던데, 거꾸로 넥타이를 하면 체감온도가 2도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핫팩은 집을 나설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전기방석·난방텐트 등 발열 제품은 집과 사무실에서 최강한파를 견디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서울 곳곳을 3년간 누빈 대리기사 이 모(38) 씨는 최고의 한파 대응 아이템으로 핫팩을 꼽았다. "액체형·휘발유형·목탄형 등 시중에 나온 손난로 종류를 다 써봤지만, 핫팩이 최고"라고 이 씨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실외 썰매장 등을 관리하는 김 모(37) 씨는 "사무실에 박스째 갖다 두고 나갈 때마다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일반 핫팩보다 `군용`이라고 적힌 핫팩이 훨씬 따뜻하다"면서 "이젠 핫팩 예찬론자가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국서윤(37·여) 씨는 "추위를 이기는 최고의 `핫 아이템`은 전기방석과 보온슬리퍼"라며 "한 번도 안 쓴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들 아이템 없이는 겨울을 날 수가 없다"고 했다.
6살 아이를 키우는 주부 정 모(34) 씨는 최근 연일 매서운 한파에 난방텐트를 새로 장만했다. 정 씨는 "난방비 폭탄을 맞을까 봐 무서워서 사봤는데 이번 겨울에 식구 모두 감기로 고생한 적이 아직 없어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난방텐트를 판매하는 업체 관계자는 "직원 1명당 하루에 100통 이상 판매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면서 "난방 효과가 정말 있는지, 텐트를 쳤을 때 온도 차이는 얼마나 나는지 등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혹한에 칼바람까지 가세하다 보니 직장인들은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직진해 `방콕`(방에 콕 박힌다는 뜻)하는 것을 선호했고, 미리 잡아놓았던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할 수 없다면 무조건 실내에서 만난다고 입을 모았다.
동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황 모(32) 씨는 "혹시나 수도관이 얼지 않을까, 보일러가 고장 나지는 않을까, 온종일 마음이 불안해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는 편"이라며 "집에 가야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교사 장 모(30) 씨는 방학을 맞아 동료 선생님 6명과 광진구의 한 호텔 방을 빌려 놀았다. 장 씨는 "8만 원을 내고 8시간을 놀았는데 배달음식을 이것저것 시켜놓고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전했다.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레드와인에 과일·향신료 등을 넣고 끓여 만든 `뱅쇼`(vin chaud·따뜻한 와인)나 고량주·보드카의 인기가 늘어나고 있다.
뱅쇼를 판매하는 서촌의 한 카페 관계자는 "평소에는 겨울이어도 하루에 2∼3잔 팔리는데, 최근 강추위가 며칠 동안 이어지자 판매량이 배 이상 늘어났다"며 환하게 웃었다.
맥주를 즐겨 마시는 직장인 권 모(32·여) 씨는 "맥주를 마시면 너무 추워서 따뜻한 술인 고량주를 찾게 된다"면서 "러시아 사람들이 왜 보드카를 마셔대는지 이제 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추위에 굴복해 따뜻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연초를 포기하고 전자담배로 전향하는 흡연자들도 있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올해 1∼2월 해외여행 예약 고객이 지난해보다 늘고 문의도 자주 오는 편"이라며 "아마도 올겨울 한파가 유독 길고 자주 찾아온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의 경우 온천 여행에 관한 문의가 십중팔구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15년 차 흡연자 황 모(39) 씨는 "주변 동료 흡연자들이 전자담배로 바꿀 때 속으로 그게 무슨 담배냐며 비웃었지만, 날씨가 추워져 도저히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울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침 아내가 궁상떨지 말라며 냄새가 남지 않는 전자담배를 사줘서 골방에서 편안하게 피운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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