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다른 한국경제…함부로 금리 올렸다간 '터키 꼴'-[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8-08-27 09:43   수정 2018-08-2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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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국민 지지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보다 2배나 높다. 한때는 3배에 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 2분기 성장률(전분기대비 연율)은 미국이 4.1%로 한국의 2.9%보다 약 1.5배나 높다. 1980년 2차 오일 쇼크, 1998년 외환위기 직후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도 한국과 미국 간 성장률이 역전된 것은 이례적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경기순환 상으로 한국 경제는 ‘더블 딥’을 뛰어넘어 ‘트리플 딥’ 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점이다. 3분기 성장률을 지켜봐야겠지만 더블 딥은 침체 국면, 트리플 딥은 장기침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다간 한·미 간 성장률 역전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진국 함정이란 2006년 세계은행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특정국 경제가 선진국 문턱에서 밀리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 징후도 눈에 띤다. 한국 경제의 대외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15년 세계 11위까지 올랐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작년에 한 단계 밀렸다. 같은 기간 중 외환보유액은 7위에서 9위로, 시가 총액도 12위에서 13위로 떨어졌다.



현 정부 성장정책의 골격인 ‘소득주도(혹은 포용적) 성장’을 재점검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소득주도 성장은 상대소득가설(F. 모딜리아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은 고소득층보다 높아 세율인상 등을 통해 고소득층의 소득을 저소득층에게 이전시키면 소비가 증가해 성장이 높아질 수 있다. 경기부양효과 면에서 적은 일반 경직성 항목을 큰 투자성 항목으로 이전시켜 성장을 끌어올리는 ‘페이 고(pay go)’와 동일한 원리로 총수요 진작책의 일환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세계적인 성장정책 추세와 거리가 있다. 하나는 금융위기 이후 고성장하는 국가일수록 총수요 진작책보다 총공급 중시정책을 선호한다. 다른 하나는 부가가치 창출의 주역인 기업에게는 규모에 관계없이 세금감면, 규제완화 등을 통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점과 차이가 난다.

지난 2분기 기준으로 잠재수준대비 실제 성장률이 가장 높게 나온 미국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성장국면을 구가하고 있다. 핵심 성장 동력은 기업을 중시하는 정책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했던 ‘리쇼오링’ 정책을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더 강화해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지우기에 일관하고 있는 트럼프 정책과는 대조적이다.

리쇼오링의 핵심수단은 세금감면과 규제완화다. 특히 법인세의 경우 35%에서 21%로 기업이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대폭 내렸다. 이마저도 올해 안에 20%로 추가 인하 방안을 발표했다. 미래 국부를 책임질 4차 산업관련 기업인 경우 정부가 간섭을 안 하는 ‘규제 프리 존’을 설정해 전폭 지원해 주고 있다.

미국 기업의 불만사항을 즉시 수용해 해소시켜주는 옴부즈맨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성장촉진요인이다. 중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의 인위적인 수출억제와 수입중단 조치에 대해서는 통화, 관세, 심지어는 첨단기술 전쟁까지 불사한다. 미국 국익에 도움돼지 않으면 국제기구 탈퇴와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기존의 우호국(유럽, 캐나다, 한국 등)이냐, 비우호국(중국, 북한 등)이냐 관계없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느냐 만의 잣대를 놓고 무역적자와 같은 당면 현안에 대한 교역상대국과의 관계를 가져간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기업인의 애국심을 스스로 불러일으키게 하는 성장 동인이다.

기업이 잘되면 인위적인 분배정책을 추진하지 않더라도 국민은 혜택을 본다. 미국 집권당의 경제성과와 국민의 체감경기를 평가하는 경제고통지수(MI?misery index=실업률+소비자물가상승률-경제성장률)는 지난 6월의 경우 2차 대전 이후 가장 긴 성장국면을 구가했던 1990년대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처럼 연 8회로 축소된 금융통화회의가 이번주 31일에 열린다. 그 어느 때보다 금리인상을 놓고 논쟁이 치열한 만큼 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관심이 되고 있다. 7월 회의에서 일부 금통위 위원이 금리인상안에 찬성한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비슷한 뉘앙스를 비쳤기 때문이다.

‘금리인상’과 ‘동결’을 주장하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금리인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시각의 가장 큰 이유는 ‘외자이탈 방지’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가 0.5% 포인트(p) 역전된 캐리자금 이동 여건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올해 안에 최대 1%p까지 벌어져 대규모 외자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리 경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1년 이상 추진해 왔지만 오히려 무너진 중산층까지 합류돼 더 두터워진 하위계층일수록 가계부채 부담이 크다. 이 상황에서 금리마저 올릴 경우 외환위기 때보다 거리로 내몰리는 신용 불량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최근처럼 통화정책 목표와 수단 간 불일치를 보일 때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첵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는 안과, 다른 하나는 정책목표와 수단을 동일(예를 들어 정책목표가 3개라면 수단도 3개 동원)하게 가져가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다. 최선책은 전자, 차선책은 후자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에 충실하는 것이다. 명시 여부와 관계없이 각국 중앙은행 목표는 ‘물가안정’과 ‘고용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물가가 지속적으로 안정됨에 따라 고용창출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경제성장, 물가, 고용, 국제수지 등 4대 거시경제 분야 가운데 우리 경제의 경우 고용 분야가 가장 안 좋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신경을 쓰는 청년 일자리는 최악의 상황이다. 엄격한 실업률 개념을 적용하는 국제노동기구(ILO) 방식으로 재 산출된 청년 실업률은 20% 육박한다. 스페인과 맞먹는 수준이다.


외자이탈 방지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이 점을 따져봐야 한다. 신흥국 금융위기 사례를 보면 외자이탈 방자의 최선책은 ‘금리인상’보다 ‘외환보유를 충분히 확보하는 방안’이다.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외환보유액이 10억 달러 증가하면 신흥국이 위기를 겪을 확률이 평균 50bp(1bp=0.01%p)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적정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 외환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돼 왔다.

세 방안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외환보유 동기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방식 △그린스펀·기도티 방식 △캡티윤 방식으로 세분된다. 우리 외환보유액은 ‘1선(직접 보유)’과 ‘2선(통화스와프 등 간접 보유)’ 자금을 합하면 5천억 달러가 넘는다. 가장 넓은 갭티윤 방식으로 추정된 적정외환보유액은 3천700억 달러 내외다.

최근 5년 동안 신흥국은 세 차례에 걸쳐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1차 2013년, 2차 2015년, 3차 2018년)’을 겪었다. 테이퍼 텐트럼은 큰 경기를 앞두고 운동선수가 겪는 심리적인 불안감을 표현하는 의학 용어로, Fed 금리인상 등에 따라 신흥국이 겪는 금융시장 불안을 의미한다. ‘긴축 발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금리인상을 추진한 신흥국일수록 외자이탈과 경기침체 간 ‘악순환(vicious cycle·외자이탈→금리인상→실물경기 침체→추가 외자이탈) 고리’가 형성된 점이다. 아르헨티나, 터키가 대표적 사례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금리를 45% 수준까지 올렸지만 계속된 외자이탈 부담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수혈했다.

우리처럼 외자이탈에 따른 방어능력이 갖춘 여건에서 금리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고용창출에 최우선순위를 둬 추진하고 있는 재정정책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스텝과 라인 간 갈등이 경기에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까지 엇박자가 날 경우 우리 경제는 ‘총체적 난국’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세계적인 성장정책 추세와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 핵심동인을 살펴보면 한국은행을 비롯한 현 정부의 성장정책이 가야할 방향이 잡힌다. 세계적인 추세를 선도한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지만 ‘중간자’라는 독특한 위상에 있는 한국 경제는 최소한 따라는 가야 한다. 기업 중시, 세율 인하, 4차 산업 육성, 고용창출 등이 해당된다.

경제 각료는 유연하고 선제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내가 주장했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사전에 준비 없이 ‘일단 해보자’라는 자세는 금물이다. 정책 수용층인 국민도 보수냐 진보냐 가릴 것 없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으로 가득이 잡히면 적극 협조하는 ‘프로 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해야 장기침체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a href="mailto:schan@hankyung.com">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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