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는 3구를 5·7·5의 17자로 짓는 일본의 전통 정형시다. 짧은 몇 글자에 시인의 심상을 꽉꽉 채워 넣어야 한다. 극도의 함축과 압축이 특징이다. 경박단소의 지극히 일본적인 시작형식이다. 일본 하이쿠는 에도시대에 활동한 마츠오 바쇼라는 교토의 작가에 의해 활짝 꽃을 피웠다. 그는 주로 교토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바쇼는 교토를 소재로 한 하이쿠를 몇 편 썼는데 다음 작품이 가장 대표적이다.
교토인데도 京にても
교토가 그립구나 京なつかしや
소쩍새 울음 時鳥(ほととぎす)
이 하이쿠에서 바쇼가 얼마나 교토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교토에 봄이 왔다. 밤이면 소쩍새가 운다. 봄이건만 일상에서 시인이 부딪히는 교토는 그가 알던 교토가 아니다. 교토 사람과 교토 거리에는 교토 본래의 혼과 정신이 결여됐다.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은 현실의 교토에서 이상의 교토를 그리워하고 있다. 교토의 정신 교토의 문화가 활짝 꽃핀 진정한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인의 모습은 당시 교토의 귀족과 지식인의 높은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교토의 전통과 문화가 스민 교료리가 극도의 미의식을 추구하는 게 우연이 아니다. 가이세키요리를 창작하는 교토 요리사의 마음이 하이쿠를 짓는 바쇼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하이쿠는 짧은 시 속에 계절적 요소를 담아야 한다. `소쩍새 울음`이라는 결구에서 소쩍새가 활동하는 계절인 봄을 암시한다. 이는 가이세키요리에서 계절의 주제를 나타내는 핫슨에 해당한다. 하이쿠나 교토의 가이세키요리나 계절적 요소가 빠지면 작품으로서의 완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흔히 일본 예술의 특징을 압축적 긴장미라고 한다. 가이세키요리에는 제철 식재료가 들어가고, 조리사가 식재료를 오브제로 계절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식사하는 사람은 절제된 작품(?)인 요리를 보면서 계절의 아름다음을 충분히 만끽한다. 이것은 하이쿠를 감상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문자로 조리한 하이쿠는 영원하지만 생선이나 채소로 조리한 가이세키요리는 입에 넣는 순간 사라진다. 가이세키요리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그만인 음식에 조리사는 예술혼을 불어넣어 향유자가 짧은 순간의 미적 체험을 하게 만든다. 짧지만 강렬하다. 이는 한꺼번에 일제히 폈다가 지고 마는 벚꽃놀이나 불꽃놀이에 열광하는 일본의 전통적 미의식과 맥락이 닿아있다.
이런 극도의 미의식은 소설 `금각사`로도 표출된 바 있다. 교토는 미시마 유키오가 소설로 써서 더 유명해진 금각사가 자리한 도시다. 절 경내에 금각(긴카쿠)이라는 누각이 있는데, 이 금각이 황금빛으로 빛나면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금각의 아름다움에 심한 질투를 느껴 불을 지른다. 주인공은 활활 타는 금각에 몸을 던져 함께 죽으려 했으나 굳게 문이 닫혀 소사(燒死)를 포기한다.
미의 극치인 금각이 불타는 현장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의 미적 체험을 완성하고 그것을 영원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 아니었을까? 세상에 이보다 더 탐미적인 스토리가 또 있을까? 금각사를 지은 장인, 금각사를 품은 교토, 금각사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주인공, 그리고 대대로 금각사를 향유해온 교토 사람들, 모두 예술 지상주의자들임에 틀림없다.
1000년의 음식문화가 교료리로 축적된 교토에서 금각사가 세워지고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가 창작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교토의 귀족적 분위기와 집약적 미의식이 빚어낸 예술작품들이다. 형태와 분야는 달라도 음식, 건축, 문학 창작의 기본 토양은 일본정신의 수도인 교토였던 것이다.
서울 연신내 프리미엄 이자카야 <이네쵸>는 교토인의 미의식을 음식으로 재현해내고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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