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재능', 이 남자가 없었다면...원유개미도 없다

최진욱 기자

입력 2020-04-2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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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극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사업가
* 원자재 시장에 뛰어든 유태인 청년

유럽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해 큰 돈을 모으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간 유태인 남자.

(사진 : 마크 리치의 일대기를 정리한 `The King of Oil` / 저자 : 대니얼 암만)

조지 소로스 얘기가 아니다. 마크 리치(Marc Rich)는 세상을 바꾼 엄청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기존 질서를 모두 무시한 `석유왕(King of Oil)`이다.

1934년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태어난 리치는 7살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상품을 매매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실물자산에 눈을 뜬 리치는 대학을 다니다 필립 브러더스에 입사해 금속(metals) 딜러로 일하면서 자원은 많지만 가난한 제3세계에 눈을 뜰 수 있었다.


* 독립해서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다

평생 같이했던 파트너와 함께 1974년 `마크 리치+Co AG`를 스위스에 설립한 리치는 원유시장에 뛰어들면서 거물로 성장하게 된다.

당시 원유시장은 소규모 현물(spot)거래 자체는 없고, 메이저 석유회사의 대형장기계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현물보다 선물시장에 의존도가 높았던 원유시장을 현재의 모습으로 바꾼 이가 바로 마크 리치였다.

소규모 현물거래를 시작함으로써 자신의 회사를 상품매매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키워낸 리치는 제3세계 국가의 권력자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더욱 승승장구했다.

그는 이후 자서전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무역금수조치를 어기고 인종차별정책으로 제재를 받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쿠바의 카스트로, 리비아의 카다피, 칠레의 피노체트,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와 거래를 한 것은 가장 중요하고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동서 냉전의 시대, 막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제재 때문에 늘 돈이 부족했던 독재자로부터 싸게 원자재를 사들여서 이를 자신이 만든 현물시장에서 잘게 쪼개서 파는 것이 그의 사업방식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축적한 막대한 자금으로 리치는 훗날 루퍼트 머독에게 넘어간 20세기폭스를 매입하기도 했다. 리치는 인생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극적인 추락...스위스로 도주한 리치

잘 나가던 리치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은 것은 1983년이었다. 쫓겨난 이란 팔레비 왕조에 이어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와도 인연이 있었던 리치는 이란에 대한 석유금수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란 석유를 싸게 사들인 뒤 몰래 시장에 팔고 있었다. 이란의 숙적인 이스라엘에 비밀 파이프라인까지 설치해 원유를 파는 수완을 보이기도 한다.

주 이란 미국대사관 직원들이 인질로 잡혀있던 시점에도 리치의 석유장사가 착착 진행된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의 공분을 샀고 미국 정부는 조사에 착수했다. 결국 그와 그의 회사는 미래에 뉴욕시장으로 선출되는 루돌프 줄리아니 연방검사로부터 무려 65가지 혐의로 기소됐고 모두 유죄로 판결될 경우 총 형량은 300년이 넘었다. 체포의 위협을 느낀 리치는 황급히 거처를 스위스로 옮겼고 두 번 다시 미국 땅을 밟지 못했다.

피고인이 불참한 재판에서 리치는 탈세와 금수조치 위반 혐의로 9천만달러의 벌금형을 받는다. 미국 사법당국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든든한 정치인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던 리치는 스위스에서 도피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사진 : 미 의회 마크 리치 청문회 요청서)

2001년 1월 퇴임을 앞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리치를 사면함으로써 다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통령의 권한 남용 논란으로 의회 청문회까지 열릴 정도였으니까 리치의 재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할 수 있다.


*리치가 남긴 유산...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사진 : 글렌코어 인터내셔널 홈페이지 )

현재 세계 최대의 상품매매, 자원개발업체인 글렌코어(Glencore)의 전신은 바로 리치의 회사 `마크 리치+Co AG`였다. 미국 사법당국에 쫓기는 신세였던 리치는 1993년 대규모 아연투자 실패를 계기로 자신의 지분을 포기하고 당시 임직원들에게 회사를 넘겼다. 현재도 첫번째 부인의 조카가 최고경영자(CEO)로 군림하면서 전 세계 원자재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3년 스위스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리치는 결국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78세로 영욕의 생을 마감했다.



지금도 국제원자재 시장은 리치가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최근 원유값이 급등락을 거듭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매매도 급증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고 싶은 욕심과 많이 떨어졌으니 언젠가는 올라가겠지 하는 순진함이 이름조차 생소한 파생상품으로 개인투자자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하루하루 유가의 등락에 희비가 교차하면서 여기저기서 개인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예측보다는 대응`이라는 투자격언이 아니더라도 현재 시장 움직임은 이미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비록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모두 가진 한 사업가 덕분에 개인의 원유매매가 가능해졌지만 지금은 버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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