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2014년 상반기 이후 7년 만에 배럴당 90달러, 한국 등 각국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적인 유가 수준은 100달러를 돌파했다. JP모건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할 경우 올해 1분기에도 국제유가가 150달러로 치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던 고유가 시대가 재현됐다.
올들어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것은 경기요인보다도 비경기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종전과 다르다. 오히려 경기요인만을 따진다면 앞으로 국제유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기가 작년 2분기를 정점으로 둔화국면에 진입한 데다 예측기관들이 수정 전망할 때마다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경기 요인이다. 연초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촉즉발 상황에 몰리고 있는 데다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도 고조되고 있다. 제2의 냉전 시대가 우려될 만큼 미국과 중국 간 경제패권을 놓고 동맹국 간의 합종연횡하는 과정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중남미 핑크 타이드 국가들이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고유가 시대가 전개됨에 따라 가장 우려되는 것이 인플레이션 문제다. 생산기지로 중국이 가장 중시하는 생산자물가상승률(PPI)가 두 자리대에 접어든 지는 오래됐다. 소비시장으로 가장 중시하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율(CPI)는 작년 12월 이후 40년 만의 최고치인 7%대 진입했다. 국제금융협회(IIF)가 ‘퍼펙트 글로벌 인플레 스톰’이라는 표현을 쓸만큼 ‘인플레 쇼크’다.
최근 인플레 성격을 총수요와 총공급 요인으로 재분류하면 경기과열과 같은 총수요 요인보다 공급망(GSC) 붕괴 등에 따른 총공급 요인이 강하다. 공급측 인플레 대책으로 세 감면, 생산성 증대 등이 있으나 최근처럼 외부 충격에 따라 수입물가가 상승할 때는 자국통화 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 지금 당장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이다.
인플레 쇼크가 처음 발생했던 작년 5월 이후 위안화 가치는 10% 정도 절상됐다. 한때 90선 밑으로 떨어졌던 달러인덱스도 최근 들어서는 97선을 넘어섰다. 인플레 쇼크가 범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줬던 작년 10월 물가지표가 발표된 이후 양국의 통화가치 상승 폭이 크고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미·중 간 벌이는 자국통화 절상이라는 화폐 전쟁은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간 관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과 맞물려 의외로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국제원유시장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에 이어 원유 전쟁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발단은 미국, 그중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화합과 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취임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국민의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외적으로 아프가니스탄주둔 미군 조기 철수, 대내적으로는 코로나 해방 제2 독립기념일 선언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잇따른 판단 착오 때문이다.
자동차 문화가 체질화된 미국 국민에게 가솔린 가격은 대통령의 지지도에 직결될 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동절기에 그렇다. 미국 국민들은 집권당의 경제정책 성과를 ‘고통지수(MI=실업률+소비자물가상승율)’로 판단한다. 1970년대 이후 국민 지지도가 떨어질 때마다 미국 대통령은 저유가 정책을 추진하고 OPEC과의 관계가 악화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시절에도 OPEC 회원국 간에 원유 전쟁이 발발할 직전까지 몰렸다. 연임 의지가 강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뜻하지 않게 집권당인 공화당이 패하자 국민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OPEC에게 대규모 증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주도로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알래스카와 대륙붕 개발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지도가 추락한 상황에서 본격적인 겨울철을 맞아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증산을 요구했으나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OPEC는 성의 수준인 40만 배럴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바이든 대통령은 전략원유 비축분을 5000만배럴 방출을 선언한 데 이어 일본, 한국, 영국, 인도 등에 동참을 요구해 약속을 받아냈다.
오랜 고민 끝에 차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으로 제롬 파월 현 의장을 재지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레 파이터’로 나선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파월 의장보다 더 금융완화를 주장하는 레이얼 브레이너드 이사를 차기 Fed 의장으로 앉힐 수 없어 통화담당 부의장으로 임명하고 파월 의장을 연임시켰다.
제2차 원유전쟁이 발생할 것인가는 단기간에 해소되기가 쉽지 않은 테일 리스크다. 7년 전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 종료와 함께 재정사정이 악화돼온 OPEC 회원국들은 대규모 증산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동등한 마찰과정에서 인민의 힘을 얻어 시황제 반열에 오른 상황에서 영구집권 야망을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더이상 밀릴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수준에서 지지도가 더 추락하면 올해 11월에 열릴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정부는 바이드노믹스를 제대로 추진해 보기도 전에 좀비 국면에 처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탄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팬데믹이 우려될 만큼 코로나 확진자수가 다시 급등하는 추세 속에 국제유가마저 100달러 시대가 재현된다면 작년 2분기 이후 슬로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세계 경제는 스테그플레이션이 현실로 닥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과 다른 것은 코로나 사태로 각국의 정책 여지가 다 소모된 여건에서는 더 심각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다. 중동산 두바이유를 70% 이상 수입해 쓰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의 전략원유 비축분 방출 요구에 원칙적으로 동조한 상황에서는 OPEC+ 회원국들로부터 불만 혹은 보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는 한 나라 경제와 국민 생활에 직격되는 가장 높은 수위의 비상과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가장 중요한 대체에너지원인 원자력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외면당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조력 등 다른 대체에너지원을 기후변화 등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 작년 11월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 어느 국가보다 빨리 석탄 사용 중지를 선언했다. 우리 국민의 에너지원은 무엇인가? 세계 모든 국가는 원전 복구와 증설에 나서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수정돼야 한다. 올해 5월에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 바란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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