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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시면 안 됩니다"…흉기 오가는 '요지경 응급실' [김수진의 5분 건강투자]

김수진 기자

입력 2022-07-23 09:00   수정 2022-10-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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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XXX이 X질려고…"

술에 취해 응급실로 찾아온 사람이 의료진에게 욕설을 내뱉자, 동료 의료진은 주취자를 제지한다. 이후 앙심을 품고 다시 찾아온 주취자는 손도끼를 들고 자신을 제지했던 의료진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이 일로 다친 의료진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길을 포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웹툰 `내과 박원장`의 내용 일부다.

병원 응급실의 하루는 웹툰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병원 진료에 불만을 품은 한 60대 남성이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용인에서는 근무 중이던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70대 남성이 낫으로 목을 내려쳤다. 숨진 부인의 심폐소생술을 담당 의사가 했다는 이유였지만, 부인은 이미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왔다고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살인이나 방화같은 극단적 사례를 제외해도, 대형 병원에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라면 2~3일에 한번 응급실 내 고성, 소란, 폭행 등을 겪거나 목격한다"고 말했다.

또한, 응급실 폭행은 단순히 의료진만 피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다. A씨는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 뿐 아니라 중환자도 있는데, 심근경색 같은 중환자 근처에서 고성 등 불안을 조장하면 환자의 처치나 예후에 도움이 안 된다"며 "응급실 폭행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응급실 폭력, 거리두기 없어진 최근 더 심각세"

응급실 폭력은 오래전부터 있어온 고질적인 문제다. 성희롱, 폭언, 폭행, 방화, 고성, 난동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폭력 가해자들은 공통점이 몇 있다. 응급실 근무자들이 설명하는 이들의 큰 공통점은 `술에 취함(주취자)` `기다림을 참지 못함`이다.

오재훈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최근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주취자가 늘어나다보니, 상대적으로 응급실 폭행 사건도 많이 발생하는 편"이라며 "응급실 근무자들의 불만이 요즘 더 많이 들린다"고 말했다.

`응급실인데 왜 빨리 처치를 안 해주냐`며 고성을 내는 경우는 흔하다. 오재훈 교수는 "응급실 의료진은 모든 환자분에게 최선의 치료를 최대한 신속히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어느 병원이나 그렇다"며 "다만 환자가 갑자기 몰릴 수도 있고, 필요한 의료진이 투입되는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필요한 장비가 고장나는 등 변수가 생기다보면 응급실 내 체류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성필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역시 "응급실은 온 순서대로가 아니라, 위급한 순서대로 환자를 보는데 이를 알고 있지 않은 환자들이 많다"며 "무작정 기다리게 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대부분 5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심정지 환자 등 소생이 필요한 상황의 크게 응급한 환자이며, 2단계는 심한 교통사고나 심근경색 관련 흉통 등이 있는 중증 응급환자다. 3단계는 고열 등 2단계보단 덜한 경우다. 보통 3단계까지를 응급 환자로 분류한다. 4단계부터는 준응급 환자다. 출혈이 멈춘 열상이 있거나, 통증이 심하지 않은 복통이나 두통 환자, 스스로 걸어다니고 의식이 있을 때 해당한다. 5단계는 경증(비응급) 환자로 단순한 타박상, 열상 등이 있는 환자다.

4단계 환자가 1단계 환자보다 훨씬 일찍 왔더라도, 생명이 위급할 수 있는 환자보다는 순서가 밀린다. 이는 어떤 응급실을 가도 마찬가지다.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정부 지원·대중 인식 모두 중요"

응급의료법 제12조(응급의료 등의 방해 금지)에 따르면 `누구든지 응급의료종사자와 구급차등의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이송·응급처치 또는 진료를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그 밖의 방법으로 방해하거나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시설·기재·의약품 또는 그 밖의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해서는 아니 된다`.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2019년 응급의료법 개정으로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한 폭행은 가중처벌하는 등 처벌의 강도는 세졌으나, 정작 현장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B씨는 "응급실에서 심한 난동을 부리는 환자를 제압하는데 법적으로 안 된다, 쌍방 폭행이 될 우려가 있다"며 "게다가 경찰이 반의사불벌죄에 따라 처벌을 원하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응급실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 상황에서 당장 처벌 관련 상황에 매달리는 자체가 스트레스라 그냥 넘어가는 의사가 꽤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 A씨 역시 "폭언·폭행을 당했을 때 대응 방안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의사 1,206명 중 542명(44.9%)이 참는다고 응답했다는 최근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며 "응급의료법이 있어도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병원 응급실에는 안전요원(청원경찰과 민간경비업체 등)을 배치하는 게 원칙이다. 단, 배치 인건비 자체가 지원되지는 않는다. 정부는 수가 형태로 일부 지원하고 있다. 다만 재정 문제 등으로 일부 응급실에는 안전요원이 상주하지 않기도 한다. 응급실에 배치된 안전요원의 수가 많지 않아, 응급실을 찾은 사람들이 의료진 뿐 아니라 안전요원들을 폭행하는 경우도 있다.

정성필 교수는 "처벌을 강화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에게 대응법 교육을 하거나, 대중을 상대로 응급실에 대한 내용을 알리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재훈 교수는 "응급실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응급 정도에 따라 순서가 있고, 변수가 많아 기다릴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정숙해야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건강에 이득이 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6월 부산대병원 응급실 방화 사건에 대해 규탄 성명을 내고 "정부는 법원에서 안전을 위해 경비인력을 배치하고 있는 것과 같이, 가장 높은 사회적 공익성을 띈 응급실 내의 응급의료종사자는 물론 환자, 보호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시설 및 보안 인력 배치와 관련한 지원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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