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산업 부흥에 나섰지만, 노동시장 호황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등이 시행되면서 미국 내에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 경쟁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작년 8월 공표된 반도체지원법은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 보조금(390억 달러)과 연구개발(R&D) 지원금(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약 69조7천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법은 자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고 아시아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목표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지원법으로 인해 민간 부문에서 이미 40건, 총 2천억 달러(약 265조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미국 반도체 업계가 이미 고용하고 있는 27만7천 명 외에 10만 명의 기술자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반도체기업 인텔은 오하이오주에 200억 달러(약 26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이곳에는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10개에 달하는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이 만들어질 예정이고, 2025년에 완공되는 첫 번째 팹은 근로자 3천 명 이상을 고용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건물을 짓는데도 7천여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이 공장은 벌써 인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공장 건설에 필요한 전기 기사와 배관공이 현지 노동력 공급을 웃돌아 필요 인력의 최소 40%를 다른 주에서 데려와야 한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인텔뿐 아니라 요리사, 생산 라인 근로자, 간호사, 교사, 트럭 운전사, 경찰관, 소방관에 이르기까지 현재 미국 고용시장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실업률은 3.4%로, 1969년 5월 이후 5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달 기업들의 구인 건수는 1천82만 건으로 집계돼 1천만 건을 넘기며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 같은 노동시장 호황은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의 여파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먼저 있었던 인구학적 경향에 따른 것이고 팬데믹은 이를 가속한 것뿐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늘고 청년층의 노동 시장 유입이 줄면서 지난 2018년에 미국의 생산가능인구는 1960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초까지 줄어들다가 팬데믹 기간 이민이 늘면서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1천190만 명 증가했지만, 2017년부터 2022년까지는 170만 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인력 부족 대책으로는 로봇 등 자동화 기술과 이민 정책이 제시된다.
인텔의 인력 확보 담당 임원인 가브리엘라 크루즈 톰슨은 인력 부족 문제의 일부 해법은 불가피하게 기술과 자동화에서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자이 시마쿠마르 선임 연구원은 로봇이 인력을 대체한다 해도 국가적 인력 자원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와 호주처럼 특정 직종에 종사하거나 미국 대학에서 공학 등을 전공하면 시민권을 빨리 취득하게 하는 방법도 있고,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는 방안도 제안된다.
구인난이 이어지면서 직장 내 어린이집을 제공하는 미국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1천700개 기업으로 이뤄진 네트워크 '일하는 부모를 위한 최고의 직장' 자료에 따르면 2021년 4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회원사 중 11%가 사내 어린이집을 제공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이는 2020년 전체의 9.3%, 2020년 3월의 5.5%보다 높아진 수치다.
이처럼 사내 어린이집 설치가 느는 것은 팬데믹 기간 보육 근로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시간제 근무로 전환하거나 아예 노동시장을 떠난 부모 근로자를 더 많이 채용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 기업에 보육 지원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면서, 더 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사내 어린이집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REUTERS 연합)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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