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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적 선택이론으로 본 9월 회의 이후 Fed의 금리정책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3-07-31 07:38  


1913년 Fed가 설립 이래로 ‘인플레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목표를 잘 수행한 의장일수록 시장의 예상을 그대로 따르는 ‘순응적 선택’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계기로 Fed의 의중을 잘못 읽거나 의중을 읽었다 하더라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우 시장의 예상과 달리 '역행적 선택'을 하는 전례가 시간이 지나면서 많아졌다.

역행적 선택이론은 최근처럼 통화정책 결정에 필요한 완전한 정보를 보유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정보 경제학의 한 부류로 조지 에걸로프 교수가 주장했다. 초기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14년 Fed 의장으로 임명됐던 재닛 옐런(현재 조 바이든 정부의 재무장관)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이론이다.

Fed는 가장 중시하는 인플레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는 통화정책 추진여건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체크 스윙(check swing)' 차원에서 역행적 선택을 활용한다. 인플레 성격을 잘못 판단해 너무 빨리 출구전략을 추진하다간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너무 늦게 추진하다간 ‘그린스펀 실수(Greenspan’s failure)’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림1 : 주요국 인플레 추이)

두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공존하는 여건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선봉장인 Fed가 어떤 행로를 걷을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목표와 우선순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Fed는 2012년부터 ‘인플레 안정’에다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했다. 양대 목표 간에 충돌될 때는 작년 11월 회의 이전까지 후자에 우선순위를 둬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우선순위를 더 두고 있는 고용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여건에서는 이번처럼 인플레가 우려된다 하더라도 기조를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다(통화정책 불가역성). 작년 8월 잭슨홀 미팅에서 Fed가 2013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트리블 버블(금융완화 버블+인플레 버블+테이퍼링 지연 버블)’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금융완화를 고집했던 것도 이 이유에서다.

이번에 인플레는 Fed가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제성(preemptive)’이 생명인 통화정책에서 작년 4월 이후 ‘쇼크’라 불리울 만큼 불거진 인플레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올해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인플레 타깃팅선인 2%을 무려 4배 이상 웃도는 8.5% 수준까지 급등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뒤늦게 인플레의 심각성을 인식한 Fed는 출구전략을 서두르고 있다. 첫 단추인 테이퍼링은 금융위기 이후 출구전략을 추진했던 때는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처음 언급한 이후 마무리되기까지 1년 10개월이 걸렸으나 이번에는 처음 언급됐던 작년 9월 회의 이후 불과 7개월(실행은 4개월)만인 올해 3월에 마무리했다.

테이퍼링 종료 이후 첫 금리인상과 연계시키는 다음 수순도 금융위기 때에는 1년 2개월이 넘게 걸렸으나 이번에는 곧바로 단행했다. 마지막 단계인 양적 긴축(QT)은 금융위기 때는 첫 금리인상 이후 2년이 되는 2017년에 추진됐으나 이번에는 2∼3개월 만인 5월이나 6월 회의에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때와 달리 Fed가 출구전략을 서두르는 것은 이번 인플레가 ‘경기순환’보다 ‘공급망 붕괴에 따른 비용 상승 요인’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공급망 분야의 석학인 미국 메세추세츠 공대(MIT)의 요시 셰피 교수에 따르면 특정 사건(코로나 지원금 등)을 계기로 소비가 증가할 경우 소매, 유통, 제조, 원자재 순으로 공급망이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수급 간 불균형이 심화되는 이른바 ‘채찍 효과(bullwhip effect)’가 나타나 인플레가 증폭된다고 주장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하루 100개의 라면을 팔고 5일분의 재고를 가져가는 소매상이 코로나 지원금 지급으로 하루 판매량이 200개로 늘었다면 재고분 1000개를 맞추기 위해 800개를 더 주문해야 한다. 이때 하루 100개에서 800개로 주문이 늘어난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에게 생산을 늘려줄 것을 독려하고 제조업체는 식자재 업체에게 추가 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수급 불균형이 증폭돼 공급망이 붕괴된다는 것이 채찍 효과의 골자다.

채찍 효과가 총수요와 총공급 요인 간 악순환 고리의 주범이라면 인플레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은 역(逆)채찍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출구전략을 빠르고 강하게 가져가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합리적 기대가설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후처럼 디지털 콘택트 추세의 급진전으로 네트워킹 효과가 크게 나타날 때는 급진적인 출구전략 등을 통해 시장에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다.

팬 차트(pan chart)로 각국의 인플레 정도와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을 판단해 보면 대부분 선진국들은 중심축(pivot state)에 몰려 있다. Fed를 시작으로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도 출구전략을 곧바로 추진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일부 신흥국들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선진국 출구전략에 따른 예방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인플레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
문제는 주로 총수요 대책인 출구전략을 서두르더라도 과연 인플레를 잡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급진적 출구전략은 성장이론에서 실제성장률과 균형성장률, 잠재성장률이 같은 황금률(golden rule)이 유지돼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 ‘해로드-도마의 칼날 이론’에 비유된다. 칼날 위를 타는 무속인이 떨어지면 상처가 깊게 난다.

Fed가 앞으로 급진적인 출구전략을 추진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성장 훼손’이다. 지난 3월 Fed 회의 이후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이 자주 발생함에 따라 미국 경기 향방을 놓고 논쟁이 거세다. 중국, 유럽 등 주요국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마저 흔들린다면 세계 경제는 장기침체를 예고하는 재침체(double dip)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기대 가설’, ‘분할시장 가설’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이 양(+)의 기울기(단저장고)를 나타내면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어 경기가 회복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수익률 역전(단고장저)돼 음(-)의 기울기를 나타내면 차입비용 증가로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1960년 이후 15차례 걸쳐 장단기 금리 차가 마이너스, 즉 단고장저 현상이 발생했고 대부분 경기침체가 수반됐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과 같은 투자의 구루가 뉴욕 연방은행이 매월 확률 모델을 이용해 발표되는 장단기 금리 차의 경기 예측력을 각종 투자판단 때 가장 많이 활용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확률 모델이란 장단기 금리 차의 누적확률분포를 이용해 12개월 이내에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확률로 변환하는 모델이다. 동 모델로 추정한 결과 마이너스 장단기 금리차가 경기침체를 예측한 확률은 1981∼82년 침체기의 경우 98%까지 상승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 확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자주 목격됐다.


(그림2 : 한국경제 성장경로)

결국 인플레를 잡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성장 훼손은 재정정책이 보완해줘야 한다. 현재 행동주의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빚내서 더 쓰자’는 현대통화론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이 주장하고 있으나 조 바이든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 콘트롤 타워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현대공급중시경제학(MSSE?modern supply-side economics)으로 맞서고 있다.

MSSE의 논리는 이렇다. 최근처럼 금융완화에 따른 숙취와 공유 경제라는 새로운 정책목표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1980년대 초반의 레이거노믹스처럼 단순히 세율만 낮춰서는 안되고 1930년대 뉴딜 정책처럼 사회간접자본(SOC) 등 국가 인프라를 개조하는 공급확대정책을 추진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옐런의 주장이다.

‘미국 재건법’으로 통칭되는 MSSE는 알버트 허쉬만 교수가 주장하는 전후방 연관효과가 커 단기적으로는 인플레를 잡으면서 중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용 면에서도 디지털 시대에 자신의 능력과 의지와 상관없이 고용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중하위 계층의 일자리를 늘려 공유 경제 목표에도 부합할 수 있다.

MMSE는 미국 경제보다 더 어려운 우리 경제의 대처방안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 슈퍼급 예산이나 수시로 편성되는 추경으로 단순히 재정지출만 늘려서는 안된다. MMSE와 같은 획기적인 정책발상을 토대로 국정을 ‘경제’ 중심으로 운영해야 새정부 출범 초부터 과제로 떠오른 스크루플레이션. 국가부채 위기, 선진국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는 ‘한국 경제 신위기론’을 극복하고 5년 후에 평가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국제금융 대기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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