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내 작년 10월 이후 연기됐던 미국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했던 상호관세에 대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최종 판결 결과가 나왔다. 위법, 합법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지난 5개월 동안 지루한 법리 논쟁 끝에 연방 대법원은 1심, 2심과 마찬가지로 후자를 선택했다.
현재 연방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 성향의 대법관 비율이 6대 3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구성돼 있은 점을 고려하면 ‘의외’라는 시각까지 나올 정도로 이번 판결 결과는 쉽지마는 않았다. 만약 1심과 2심의 위법 판결을 뒤엎고 합법으로 나왔다면 미국 중앙은행(Fed)에 이어 대법원마저 정치화 논쟁이 거세지면서 미국이 커다란 혼란에 빠질 확률도 높았다.
작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뉴 앱노멀 시대에 들어섰다. 특히 경제 분야가 심하다. 이 때문에 아담 스미스식 자유방임 고전주의 ‘경제학 1.0’ 시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언식 혼합주의 ‘경제학 2.0’ 시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 ‘경제학 3.0’ 시대에 이어 ‘경제학 4.0’ 시대로 구분하는 시각도 있다.
가장 눈에 띠는 움직임은 국가를 전제로 했던 종전의 세계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파리 기후변화협정 등과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주도의 다자 협상은 한 건도 열리지 않았다. 그 대신 트럼프 라운드가 출범했다.
틀(frame)에 해당하는 국제규범과 이를 토대로 한 세계 경제 질서가 흐트러지면 경제주체(시장 포함)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인 포퓰리스트가 판치면서 이기주의와 국수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탈글로벌라이제이션(de-globalization)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라운드의 최종 목표는 마가(MAGA)다. 금융위기 이후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집권 시절에 손상됐다고 본 국제 위상과 주도권 상실에 따른 반작용에서 나온 새로운 세계 경제 지배구상이다. 한 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미국 국익 간 충돌될 때는 후자를 중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에 연방 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과연 트럼프 라운드가 후퇴할 것인가. 트럼프 라운드는 미국의 국익을 증대하려면 2차 대전 이후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 무역 질서로는 한계가 있다는 데서 출범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 무역 질서가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켰다고 주장한다.
취임 이후 주요 교역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트럼프 라운드의 실체를 보면 다자주의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종전의 ‘상향식(down up)’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하향식(top down)’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협상 기간을 단축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철저하게 ‘통합 거래(package deal)’로 임하고 있다. 국방, 상품 수입시장 및 투자 후보지로서 미국처럼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카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역적자, 재정적자, 국가 채무, 경기 부양, 인플레이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트럼프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협상 파트너와 관련해 상대방이 먼저 최선의 대안을 내놓도록 하는 ‘A-게임’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일본과 한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대방이 제시하는 협상안에 대해 미국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선부과·후협상 원칙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 관세정책에서 후자에 기대를 거는 시각이 있으나 전자가 최선임을 암시하는 자세다.

미국 예일대 연구소에 따르면 트럼프 라운드가 본격 출범하기도 전에 지금까지 부과된 것만으로도 평균 실효 관세율이 18.4%에 달한다.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한 스무트-홀리법 적용 이후 최고 수준이다. 2025년에 기반을 마련한 트럼프 정부는 대법원의 위법 판결을 계기로 네 가지 점에 중점을 두면서 트럼프 라운드를 더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미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부담만 지는 국제규범과 협상에 대한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점이다. 파리 기후협정 재탈퇴, UN 탈퇴 시사, 30년 만에 세계무역기구(WTO) 종식 선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는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가가 관심사다.
둘째, 국가별로는 무역적자 확대 여부에 따라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대미국 흑자국에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무역적자 확대 국가에 통상압력을 가해 시정하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는 ‘차별적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중국,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가 문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심상치 않다. 무역, 통상, 환율 등 경제 분야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등 경제외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정도 차가 있지만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셋째, 목적 도달하기 이해서는 모든 통상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WTO 규범이나 자국법을 의식했던 집권 1기와 달리 트럼프 행정명령에 전적으로 의존해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무역적자 규모, 비관세 장벽, 관세 협상 협조 여부 등에 따라 국가별로 관세율을 차별적으로 가져가는 것도 구별된다.
넷째, 통상정책을 다른 목적과 결부시키는 움직임도 보다 확실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통상을 안보와 연계시킨다든가, 대중국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집중적으로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국 등 해당 국가가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쉽게 대처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 연방 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한국을 비롯한 교역 상대국은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트럼프 진영은 1심에서 위법 판결이 나온 이후 관세 플랜 B를 준비해 왔다. 트럼프 관세정책은 방사성 독가스로 고양이 파동은 죽이되 입자는 살리는 실험처럼 국가는 살리되 맞대응하면 보복하는 ‘쉬뤼딩거’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
관세 플랜 B로 준비해 온 것이 무역법 122조,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법 338조, 그리고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발동할 수 있는 슈퍼 301조 등이다. 지난 1년 동안 관세 플랜 A의 주수단으로 사용했던 IEEPA법과 무역확장법 232조 못지않게 강도가 있다. 집권 1기 때 부활해 놓은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환율 조작 카드도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최악의 경우 뒷전에 물러났던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고문이 복귀해 스무트 홀리(S-H)법이 부활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적, 공산당은 악’이란 전제로 집권 1기 대 초강경 중국 정책을 추진했던 나바로 고문은 허버트 후버 대통령 당시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S-H법이 경합지역의 제조업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트럼프 관세정책과 의도가 같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도 코스피 지수 상승률이 세계 1위인데도 ‘국장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미국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상장 주식은 고가 논쟁이 일고 있고 앞으로 남은 3년 동안 트럼프리스크가 더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겨냥해 비상장 기업 등에 미리 투자해 놓은 ‘알파 라이징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한 때다.
(사진=연합뉴스)
한상춘/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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