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을 모르는 중동 전쟁에 중동 국가들이 전력 증강에 열을 올리면서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기술력이 검증된 K-방산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현지 방공망의 핵심 무기로 떠오른 LIG 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의 중거리 지대공 유도 무기인 천궁-Ⅱ를 따라 소총과 권총 같은 개인 화기도 인기몰이 중이다. 천궁-Ⅱ 같은 방공 무기, 자주포와 전차 같은 지상 무기, 군함과 전투기 등 대형 무기뿐 아니라 개별 병사의 손에 쥐어지는 총까지 품목이 다양되면서 방산 수출 혁신이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특히 1984년 국산 K2 소총을 독자 연구 개발한 지 40여 년 만에 여러 총기 강국을 제치고 시장 곳곳을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동에서 천궁 말고 총도 판다

국내 총기 전문 업체인 다산기공이 이라크와 최근 반자동 정밀 사격용 소총 'DSSR-762' 수천 정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요르단에 이어 중동에서 또 한 번 수주고를 올린 것으로 다른 인접국들과도 협상이 한창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라크는 앞서 2024년 당시 LIG넥스원과 약 3조 7,135억 원 규모의 중거리 지대공 유도 무기인 천궁-Ⅱ 도입 계약을 맺으며 우리나라와 이른바 방산 동맹을 결성한 나라다. 이번에 맺은 계약을 따라 양국 간 방산 협력이 탄도 미사일, 항공기 등 공중 위협에 대응하는 방공망을 넘어 소총 분야로 확대되게 됐다.
다산기공이 이라크에 납품하게 되는 모델인 DSSR-762는 7.62㎜ 탄약을 사용하는 반자동 정밀 사격용 소총이다. 유효 사거리는 800m로 일반 보병용 소총보다 정밀한 사격 작전과 임무를 수행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제품이다. 노후화된 총기 교체뿐 아니라 중동 일대 무력 충돌에 따른 긴급 조달 요구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요르단에서도 성과를 달성한 바 있다. 다산기공은 요르단과 지난 6월 소총 5천 정에 대한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 가운데 러시아 AK 계열 탄약을 쓰는 'DSAR-47'이 2천 정으로 오는 12월 20일까지 모든 물량이 소화될 예정이다. 나머지 3천 정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규격 탄약 기반의 'DSAR-15P' 등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다산기공이 러시아의 AK 계열과 미국의 M4 계열을 모두 다룬다는 점이다. 군이 소총을 바꾸면 총기 성능뿐 아니라 탄약 재고와 국내외에 구축된 현지 체계까지 따져야 하는데, 다산기공의 경우 AK와 M4처럼 강대국들이 만든 대표적인 총기 대다수를 대체할 수 있는 자체 설계 총기를 둬 구매국에 여러 선택지를 줄 수 있다.
▲필리핀 타고 동남아도 꽉 잡았네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축으로 거래를 활성화하고 있다. 다산기공은 인도네시아와 지난 2020년 수출 계약한 데 이어 현지 군의 높은 만족도에 힘입어 지난 7월 3천 정에 대한 추가 계약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국 중 다산기공과 사이가 가장 가까운 곳은 필리핀이다. 다산기공은 지난해 12월 필리핀 육군이 공모한 5.56mm 신형 카빈 소총 도입 사업에서 브라질과 튀르키예를 비롯한 여러 경쟁사를 제치고 일감을 확보했다.
승부를 가른 것은 가격과 물량이었다. 필리핀 육군은 당초 입찰 공모 당시 8,234정 도입을 전제로 했다. 그런데 다산기공은 7,392정을 추가해 총 1만 5,626정을 제시했다. 물량이 늘었는데 계약 금액은 줄었다. 필리핀은 해당 사업에 약 8억 693만 페소의 예산을 편성했는데 다산기공은 7억 5,201만 페소만 받기로 했다. 필리핀으로서는 예상보다 90% 많은 소총을 들이게 됐는데 도리어 드는 비용은 줄었다.
과거 공군과 해병대로부터 각각 3,500정, 1,420정씩 발주를 받아 이력을 쌓은 점도 육군을 상대로 한 수주에 주효했다. 육해공 모든 군이 특정 국가의 같은 회사가 제작한 총기를 구매한 만큼 동남아 전역에서 입소문을 타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아프리카와 미국까지 넘본다

다산기공은 아프리카 군과 미국 민간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먼저 나이지리아의 현지 국영 방산업체인 국방 산업 공사(DICON)가 낸 군 개인 화기 현대화 사업 입찰에 참여할 계획이다. 나이지리아는 노후화된 AK 계열 소총을 바꿀 방침이다.
다만 현지 생산 등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DICON과 현지 기업인 D7G의 합작사 DICON-D7G가 지난해 러시아 AK-103의 현지 면허 생산형인 'DG-103' 소총을 약 1천 정 조립했다고 발표했다. 완제품 수출이 아니라 현지 생산을 포함한 산업 협력을 전제로 하는 시장일 수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현지 법인과 자체 브랜드가 활용될 전망이다.
다산기공의 미국 법인인 다산 USA는 조지아주 덜루스에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이며 자체 브랜드인 알파 폭스트롯도 운영 중이다. 지난 15일 미국 총기 유통사 립시스는 다산 USA가 양산한 로물루스 권총 제품군을 자사 판매 목록에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로물루스는 미국 현지 생산품으로 립시스의 전국 총기 판매점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중동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서는 군을 상대로, 미국에서는 현지 법인과 자체 브랜드를 앞세워 민간을 각각 겨냥하는 이원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SNT모티브와 총기 양강 등극

다산기공의 수출을 뒷받침하는 것은 자체적으로 확보한 설계와 제조 역량이다.
전북 완주에 본사가 있는 다산기공은 지역에서 총기 설계와 연구 개발, 부품 정밀 가공, 총열 제조, 표면 처리, 완제품 조립까지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그간 해외 총기사에 부품을 보내며 쌓은 제조 경험과 노하우, 기술력을 자체 완제품에 녹여내고 있다.
외국에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보내주던 기업이 자체 설계 자사 제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는 지위로 올라선 것이다.
다산기공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냄에 따라 국내 소총 산업도 새 판이 짜이고 있다. 그동안 국내 시장은 옛 대우정밀의 계보를 잇는 SNT모티브가 주도했다. K2 소총과 K1A 기관단총 등 국군의 주요 제식 화기를 담당했다.
해외에서도 SNT모티브가 일찌감치 판로를 뚫었다. 1984년 나이지리아에 K2 소총 3천 정을 처음 수출한 이래 약 20개국에 3억 달러 넘는 K계열 소·중화기를 팔았다. 중동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에 대량의 소총과 기관총을 팔며 시장에 진출했다. 2021년에는 경찰용 스마트 권총 'STRV-9'도 팔며 제품군을 확장했다.
후발 주자로 나선 다산기공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국내에서도 두 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다산기공은 지난 2016년 방산업체로 지정된 이후 국내 군용 소총도 일부 조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지난해 11월 총 약 70억 3천만 원 규모의 K2C1 소총 5,858정을, 지난 8월에는 약 142억 원 규모의 K계열 소화기 부품을 수주했다.
하지만 SNT모티브가 여전히 국내 주요 완성 총기 사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 4월 특수 기관총 1형 사업자로 선정됐고 지난 7월부터 신형 K17의 첫 양산품을 군에 인도하고 있다.
SNT모티브가 독점하던 시장에 다산기공도 뛰어들면서 산업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K-방산에서 수출 조연이었던 총기도 주연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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