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손섬에 '미국법 특구'…핵심광물 가공·제조에 초점
부지 99년간 임차…필리핀과 유대강화·중국 세력확장 견제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과 필리핀이 16일(현지시간) 협정을 체결해 필리핀 북부 루손 섬에 첨단 공업 특구를 만들기로 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필리핀이 제공키로 한 4천 에이커(16.2㎢) 부지에 들어설 이 공단은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돼 미국이 관리하고 미국 제조업체들이 입주한다.
이곳에는 필리핀 법이 아니라 미국 보통법(common law)과 외교적 면책특권이 적용되며, 이런 사례는 이번이 사상 최초라고 WSJ은 전했다.
부지 제공 계약은 2년 단위로 이뤄지며 99년간 갱신이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특구를 만드는 목적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통제를 받지 않고 희토류 금속 등 핵심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WSJ은 설명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방위산업을 포함한 주요 산업에서 미국의 제조업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에 공단 입주 제안서를 제출토록 요청할 계획이며, 그중에서도 핵심 광물 가공과 제조를 중국 공급업체들로부터 이전시키거나 재배치하는 데 기여하는 제안에 우선권을 줄 예정이다.
투자는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의 민간 기업들이 하게 된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핵심 광물 안보 프로그램 책임자인 그레이슬린 바스카란은 필리핀이 세계에서 가장 자원이 풍부한 국가 중 하나이며 세계 2위의 니켈 생산국이지만 수출이 주로 원자재 형태로 이뤄졌으며 기술 공급망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가공 광물을 생산하는 능력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현재 전세계 희토류 가공의 약 90%,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은 니켈, 구리, 크롬철석, 코발트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루손 섬 공단에 입주할 미국 기업들이 사용할 수도 있고 미국 내 제조업체들에 공급될 수도 있다.
이번 계획은 또 미국과 필리핀 사이의 경제적, 정치적 유대를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최근 수년간 남중국해에서는 중국의 해상 훈련 등으로 필리핀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제이컵 헬버그 미국 국무부 경제성장, 에너지, 환경 담당 차관은 인터뷰에서 "내일 당장 공급을 끊을 수 있는 적대국이 광물과 가공 재료를 통제하고 있다면 오하이오에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으로 가동될 이 공단은 현재 구상 단계이며, 입주할 미국 기업이나 생산 품목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헬버그 차관은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 지형은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공급망의 모든 층을 살펴보면 중국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단에 입주하는 공장들이 자율 시스템으로 24시간 가동되는 등 고도로 자동화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주를 신청하는 기업들은 제안서에서 에너지 비용과 인력 수요를 어떻게 해결할지 명시해야 하며, 미국 노동자를 파견하거나 현지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이번 협정으로 필리핀은 작년 12월에 발표된 '팍스 실리카'(Pax Silica)에 합류하게 됐다.
팍스 실리카는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고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과 그 협력국 사이의 연합체로, 한국, 일본, 싱가포르, 영국, 호주, 인도 등이 12개국 이상이 참여한다.
이번 공단 설립 계획은 필리핀, 미국, 일본이 루손 섬 수빅 만의 대규모 상업 해운 항구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루손 경제 회랑'(Luzon Economic Corridor) 프로젝트에 바탕을 두고 있다.
루손 경제 회랑 프로젝트는 운송, 청정에너지, 반도체 공급망 및 기타 핵심 산업에 투자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공급망을 중국에서 분리하려는 일부 미국 제조업체들은 이미 이 회랑 지역에 공장을 설립해 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정부 자금과 벤처캐피털 자금 등을 지원받고 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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