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 부족 베네수엘라…삽·수레·맨손으로 구조 사투

입력 2026-06-26 02:02  

물자 부족 베네수엘라…삽·수레·맨손으로 구조 사투
밤새 여진 공포 속 뜬눈…날 밝으며 매몰자 수색 본격화
가족 찾아달라 절규도 잇달아…실종자 2만4천명 통계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오랜 제재로 극심한 물자난을 겪어온 베네수엘라 주민들과 구조대원들이 밤을 새워 구조작업에 나섰다. 이들의 무기는 불도저나 콘크리트 바닥에 구멍을 내는 착암기 등 중장비가 아니었다. 수백 년 전부터 인류가 써오던 삽과 외바퀴 수레, 맨손이었다.
수도 카라카스 서부 마리페레스 지역에서 17세 소년을 구조한 마이켈 린콘 씨도 맨몸으로 구조 작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는 25일(현지시간) 스페인 EFE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맨손과 맨몸으로 해내야 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린콘 씨는 "한 이웃이 건물이 무너졌다고 소리치며 달려가기에 현장에 가보니 건물이 이미 완전히 주저앉은 상태였다"며 "이웃들과 함께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잔해 아래에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잔해를 미친 듯이 치운 끝에 17살쯤 된 아이를 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이의 가족들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고개를 떨궜다.
세 자녀의 어머니인 다야나 델가도 씨는 지진으로 8살짜리 아이가 실종됐다며 울부짖었다. 그는 "내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잔해에 갇힌 건지 대피소에 있는 건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면서 "정부 관료들이 약속했던 중장비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날이 밝으면서 정부가 동원한 중장비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하자 구조 작업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이날 이른 아침부터 베네수엘라 수도 서부 지역인 엘파라이소, 산베르나르디노, 마리페레스를 비롯해 동부 지역인 로스 팔로스 그란데스 등지에서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생존자를 수색하는 작업이 전방위로 이어지고 있다.
소방대원들과 경찰은 물론, 민간방위대 요원들과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까지 피해지역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밤샘 노력과 이른 아침부터의 구조작업 끝에 산베르나르디노 지역의 무너진 건물에서 새벽 동안 두 명이 구조됐다. 또한 핀토 살리나스 구역의 5블록에 위치한 붕괴 건물에서도 2명이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 곳곳에선 충격에 빠진 매몰자 가족들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이처럼 구조 작업이 한창이지만 상당수 시민은 규모 7.2와 7.5의 연쇄 강진 이후 이어진 여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들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매트리스나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거나, 자신의 차량 내부로 대피해 밤을 보냈다. 특히 카라카스 도심의 '플라사 베네수엘라'(베네수엘라 광장)은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거대한 '노천 침실'로 변했다. 그러나 30여차례나 이어지는 여진의 공포 속에서 대부분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수도 외곽 지역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진앙 인근인 카라보보주(州)의 작은 해안마을 모론에 사는 헤일린 모랄레스 씨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지진으로 집이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 남편·여섯살 된 딸과 함께 극적으로 빠져나온 그는 "그 모든 집들이 우리 위로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모랄레스 씨처럼 운이 좋은 건 아니다. 당국 발표에 따르면 전날 연쇄 지진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164명, 부상자는 971명이다. 그러나 아직 실종자 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상자 수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해외에 체류 중인 베네수엘라 야당 지도부들이 개설한 실종자 추적 웹사이트를 보면 이날 오전 10시40분 현재, 2만4천여명이 생사불명 상태로 등록돼 있다.
당국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 의료 체제도 긴급 가동 중이다. 카를로스 알바라도 곤살레스 보건부 장관은 카라카스 시내 12개 민간 의료기관을 포함해 전국의 모든 보건, 의료센터에 비상 대응 태세를 발령했다.
그러나 통신, 교통, 인프라 등이 연쇄 지진으로 마비되면서 복구와 구조작업은 차질을 빚고 있다. 수도 일부 지역은 전력 공급이 중단되고 통신망이 끊겼다. 국가의 관문인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도 지진 피해로 전면 폐쇄됐다. 카라카스 시내 지하철 운행은 중단됐고, 천연가스 공급도 차단됐다. 상당수 학교는 이미 교육 장소가 아니라 대피소와 구호품 접수처로 전환됐다.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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