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외국 구조대 통제 혼선에 '간섭 배제' 집착
재난 상황에서 생존자 구조는 국경이나 명분보다 중요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네팔·중국 국경의 히말라야 산악지대를 휩쓴 대규모 홍수 발생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네팔이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급 재난에도 외부의 구조 손길을 뿌리치면서 희생자가 더 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네팔 정부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재난 발생 직후 국제적인 재정 지원은 필요하다면서도 수색이나 구조와 관련해서는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한국, 인도, 중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 한해 제한적 입국을 허용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수 국가가 수색·구조 참여 요청과 외교적 압박을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종자 2천500여명 가운데 600명가량이 외국인인 데다, 산 사람을 살려낼 골든타임이 흘러가는 와중에 이해하기 힘든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네팔 정부가 외국의 접근을 꺼리는 데는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다. 네팔 정부는 2015년 규모 7.8 대지진 당시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구조대의 현장 통제에 실패했고 만족스러운 구조 성과를 내지 못해 비난을 받았다. '통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것이다.

또한 이번 대홍수가 발생한 라수와 등 핵심 피해지역은 중국 티베트와 맞닿은 민감한 군사·안보 요충지다. 강대국 구조대와 군사·정보 관련 인력이 접경지역에 대거 진입할 경우 외교적·안보적 마찰이 일 수 있는 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난 현장에 다국적 인력을 투입하고 통제하기는 어려운 점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수용하되,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 복구나 재건 단계에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현금·물자 지원을 챙기려는 실리적 계산도 깔려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네팔 피해 지역인 바그마티주의 수력발전소 현장에서 900여명의 작업자가 실종됐고, 이 가운데 라수와 지역의 트리슐리 3A·3B 발전소를 중심으로 100여명이 수로터널 안에 고립된 채 생존할 가능성이 부상하는 등 현장 상황은 절박하기만 하다.
지하터널 고립사고 골든타임은 통상 72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이틀이나 넘긴 상황이라서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서라도 신속한 구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른 구조 현장에서도 전문 장비와 역량 부족으로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팔 정부는 급기야 수송용 대형 드론을 비롯한 수색·구조에 필요한 특수·전문 장비와 인력 등의 지원을 국제사회에 요청했지만, 외국 인력과 장비의 현장 접근은 여전히 제한하고 있다.

한국 정부 신속대응팀은 임차 헬기라도 띄워 한국인 실종자 9명을 수색할 계획이었지만, 네팔군 당국이 안전·항공 혼잡 우려 등으로 인해 운항 허가를 내주지 않아 무산됐다.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점점 작아지면서 가족들의 절망감과 한숨은 커지고 있다.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자국 주도로 재난을 관리하고 안보를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네팔 정부에 더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구조로 희생자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과거의 '통제 실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나친 '간섭 배제'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외세 간섭을 배제하겠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에 스러져가는 생명을 방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네팔의 '국가적 실책'이 될 수 있다. 생존자를 구하는 것이 국경과 명분보다 중요하다.
hs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