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황실 자기 빚던 '천년의 가마'…세계유산 품은 中징더전

입력 2026-09-02 11:34  

[르포] 황실 자기 빚던 '천년의 가마'…세계유산 품은 中징더전
11년 노력 끝 '도자산업' 세계유산 등재…광산·가마·땔감·운송로까지
깨진 황실 자기 복원도 '현재 진행형'…"끝나려면? 아마 영원히"



(징더전[중국]=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푸른 용이 그려진 접시부터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술잔까지….
산산이 깨진 도자기 조각들이 작업대 위에 수북하게 놓여 있다.
연구원들은 모양과 색깔이 비슷한 파편을 하나씩 골라 맞춰보며 도자기의 원래 모습을 되살리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조각 하나가 맞아떨어질 때마다 접시의 윤곽이 드러나고 희미했던 문양도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갔다.
역사를 거슬러 가며 흩어진 퍼즐을 다시 맞추는 듯한 모습이다.
지난달 31일 찾은 중국 장시성 징더전 어요박물관.
대학 졸업 후 6년째 이곳에서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는 한 연구원에게 "징더전의 도자기 복원은 언제쯤 끝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영어로 한마디 했다.
"엔드리스(Endless). 아마 영원히 해야 할 겁니다."
명·청 시대 황실에 납품할 자기를 만들던 어요창(御窯廠·관영 가마)에서는 품질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자기가 민간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흠집이라도 발견되면 완성품을 그 자리에서 깨뜨려 버렸다.
수백 년 동안 제작과 폐기가 반복되면서 이 일대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도자기 파편이 땅속에 묻혀 있다.
어요박물관에는 전문가들이 수많은 파편을 이어 붙여 되살린 주전자, 용무늬 접시, 술잔, 성인 키만 한 화병 등이 전시돼 있다.
완성품뿐 아니라 깨뜨려 버린 실패작까지 도시의 역사를 증언하는 셈이다.
징더전 도자기 역사는 1천년을 훌쩍 넘는다.



북송 때 이곳에서 생산된 자기가 황실에 진상되면서 황제의 연호를 따 '징더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송대 청백자로 이름을 알린 뒤 원대에는 청화백자가 발전했고, 명·청대에는 황실용 자기를 굽는 관영 가마가 자리 잡으면서 중국 대표 도자기 생산지로 성장했다.
징더전의 전통 자기산업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것은 지난 7월.
유명한 가마터 하나가 아니라 원료를 캐던 광산부터 가마, 공방, 땔감을 공급하던 지역, 도자기를 운반하던 길과 물길까지 도자기를 둘러싼 산업 전체가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왕퉁마오 징더전시 도자기산업문화유산관리위원회판공실 주임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20년 이상 도자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며 "수많은 전문가로 연구진을 구성해 유산의 가치를 연구하고 전시·보호 체계를 마련한 것이 등재의 기초가 됐다"고 말했다.
웡옌쥔 어요박물관장은 이 과정을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에는 황실 도자기를 생산하던 어요창을 중심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지만 발굴과 연구가 거듭되면서 대상을 가마터와 문화경관으로 확대했다. 결국 원료 조달부터 생산·운송에 이르는 산업 전체를 하나의 유산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것이다.
웡 관장은 "유산을 끊임없이 새롭게 이해하면서 그 본질과 가치를 종합적으로 인식하게 된 과정"이라며 "다양한 형태로 흩어진 유산을 보호하고 보여주려면 도시 전체의 관리 역량도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징더전은 도자기 관련 유적과 현대 도자기 시설이 곳곳에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도자기를 실어 나르던 강을 따라 수많은 공방과 가마의 흔적이 남아 있고, 송·원대 도자산업의 중심지였던 가마터도 자리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토기부터 현대 도자기까지 5만여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중국도자박물관과 도자기를 내건 중국 유일의 종합대학인 징더전도자대학도 '천년 도자도시'의 역사를 뒷받침한다.
징더전의 힘은 일찍부터 형성된 고도의 분업체계에서도 나왔다.
도자기 생산은 원료 가공에서 성형, 그림, 유약, 소성에 이르기까지 공정별로 세분됐고 장인들은 한 분야의 기술을 세대에 걸쳐 축적했다.
여기에 황실이라는 거대한 '소비자'가 있었고 민간 생산과 수출까지 확대되면서 반경 수십㎞가 도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지역이 됐다.
그 산업은 과거형이 아니다.
상주인구 160만명 안팎의 징더전에서는 지금도 주민 40% 이상이 직·간접으로 도자기 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거리의 가로등과 쓰레기통에도 도자기를 활용하고 옛 공장과 가마는 미술관과 작업실로 변신했다.
징더전의 역사는 한반도와도 맞닿아 있다.
징더전 도자문화 전승자인 쑨리신 선생은 "한국 도자기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자신들의 특성을 살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만들어냈다"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역시 다시 중국 도자기에 영향을 줬으니 양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웡 관장도 "징더전에서는 청백자가, 한반도에서는 고려청자가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며 "두 지역 모두 외부의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혁신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징더전은 한국의 대표 도자도시 경기 이천과 우호도시 관계를 맺은 뒤 공동전시, 도자기축제·박람회 참가, 교수·학생 교류 등을 이어오고 있다.
박물관 연구원들이 지금도 하나씩 맞춰나가고 있는 수많은 도자기 조각처럼 징더전의 역사도 어느 한 시대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흙과 돌을 캐는 사람부터 그릇을 빚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불을 지피는 사람과 완성된 자기를 실어 나르는 사람까지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장처럼 움직였다.
징더전이 세계유산이 된 비밀은 아름다운 자기 한 점보다 그 한 점을 만들기 위해 천년간 이어진 사람과 기술, 그리고 도시의 시스템에 있었다.
jk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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