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도자기 굽던 폐공장에 세계 청년들이…中징더전의 변신

입력 2026-09-03 07:02  

[르포] 도자기 굽던 폐공장에 세계 청년들이…中징더전의 변신
외지 예술가 '징퍄오' 6만명 추산…옛 공장은 미술관·스튜디오로 활용
도예 체험·관광객도 증가…천년 도자기 도시서 글로벌 창작도시로



(징더전[중국]=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징더전 도자기가 좋아서 이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1년의 절반은 여기서 작품 활동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일본에서 생활합니다."
1일 전통 도자기 산업 유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중국 장시성 징더전에서 만난 일본인 도예가 마위 우에다는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그는 징더전을 또 하나의 작업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1천년 넘게 도자기를 생산한 징더전에는 최근 우에다처럼 작품 활동을 위해 외지에서 찾아와 머무는 예술가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징퍄오'(景漂)라고 불린다.
고향을 떠나 베이징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청년들을 '베이퍄오'(北漂)라고 부르는 것처럼 징더전에 정착해 창작 활동을 하는 외지 예술가들에게 붙은 이름이다.
현지 당국에 따르면 징더전에서 활동하는 징퍄오는 6만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외국인 예술가를 뜻하는 '양징퍄오'(洋景漂)도 5천여명에 이른다.
과거 중국 각지의 장인들이 황실 자기를 만들기 위해 징더전에 모였다면 이제는 중국과 세계 각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곳으로 향하는 셈이다.



이런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타오시촨 문화예술단지다.
타오시촨은 과거 대규모 도자기 공장이 있던 곳이다.
낡은 공장 건물과 굴뚝을 허무는 대신 산업시설의 흔적을 최대한 살린 채 미술관, 작업실, 레지던스, 갤러리, 상점, 호텔 등을 채워 넣으면서 공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때 도자기를 대량 생산하던 공간에서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전시·판매하는 창작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타오시촨 미술관 관계자는 "우리는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이 소비자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예술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술관뿐 아니라 예술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다"며 "이런 플랫폼을 통해 문화예술 소비시장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했다.
타오시촨이 품는 예술은 도자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자기를 중심으로 섬유와 유리,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전통 공예와 현대예술이 뒤섞이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주말이면 타오시촨의 성격은 더욱 분명해진다.



넓은 광장에는 수천 명의 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시장이 열리고 시민과 관광객이 몰려든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영국, 스페인,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작품을 유리 진열장 안에 넣어두고 감상하는 데 그치는 일반 미술관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관람객은 전시를 본 뒤 몇 걸음 옮겨 작가들의 작업실을 들여다보고 광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직접 구매한다.
작품의 생산, 전시, 소비가 한 공간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셈이다.
주중에는 시민 휴식 공간으로, 주말에는 관광객과 예술가가 뒤섞이는 문화공간으로 기능한다.
징더전에서는 타오시촨을 비롯한 여러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전통 장인과 현대 작가, 디자이너, 기획자, 컬렉터 등이 참여하는 전시와 상점도 이어지고 있다.
천년 도자산업의 흔적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공간에서 새로운 작품과 시장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이런 변화는 관광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징더전시에 따르면 세계유산 등재 이후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17% 늘었다.
온라인에서 '징더전 도예 체험' 관련 검색량은 31% 증가했고 호텔 검색량도 약 5배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유명 도자기를 구입하거나 박물관과 유적을 둘러보기 위해 징더전을 찾았다면 최근에는 직접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만들거나 며칠씩 머물며 공방과 시장을 경험하려는 방문객이 늘고 있다는 게 현지의 설명이다.



과거 징더전으로 사람을 불러들인 것은 황실의 주문이었다.
황실용 자기를 만들기 위해 장인들이 모였고 그들을 중심으로 가마와 공방, 시장이 형성됐다.
지금 징더전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은 달라졌다.
낡은 공장과 가마는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중국과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그 안에서 작품을 만든다.
시민과 관광객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직접 체험하며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 간다.
과거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시'였다면 이제는 도자기와 예술을 만들고, 보고, 체험하고, 소비하는 도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천년 도자산업의 유산을 박제하지 않고 새로운 창작자와 소비자를 불러들이는 자산으로 바꾼 징더전의 변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jk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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