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바로 작품으로…'천년 도자도시' 中징더전의 韓도예가들

입력 2026-09-03 07:02  

아이디어 바로 작품으로…'천년 도자도시' 中징더전의 韓도예가들
흙·유약·가마 풍부하고 물가도 저렴…작업실 차리고 레지던스 찾아 정착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이천도 작업 생태계 키워야"



(징더전[중국]=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흙과 유약, 도구를 구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해요. 작품 가격은 한국과 비슷한데 오히려 더 잘 팔리는 편입니다."
전통 도자기 산업 유적으로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중국 장시성 징더전에서 만난 한국인 도예가 이지민(28)씨는 지난달 31일 징더전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이씨가 징더전에 자리 잡은 것은 지난해 3월이다.
잠시 머물며 공부하려던 것이 아니라 작업실을 만들고 정착했다.
그는 "재료상과 도구를 파는 곳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고 가마 비용도 비교적 저렴해 작업실을 꾸리는 데 부담이 크지 않았다"며 "공모전과 전시회가 많고 시장이나 온라인을 통한 판매 경로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천년 도자도시 징더전에서는 이씨처럼 자신의 작업 세계를 넓히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한국인 도예가들을 더 만날 수 있었다.
도예가 이인경(35)씨는 학부 시절 징더전에서 잠시 공부한 인연을 계기로 2022년 징더전도자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 뒤 한국에서 작업하다가 다시 징더전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지원해 돌아왔다.
그는 "작가로서 경력을 쌓기 위해 다시 왔다"며 "조형 작업을 많이 하는데 이곳에는 유약 종류가 많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어 작업하기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작품을 시장에 내놓을 기회가 많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이씨는 "징더전에서는 다양한 마켓과 아트페어가 끊임없이 열린다"며 "여기서 쌓은 경력이 한국에서의 유명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판매 기회는 한국보다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전통 도자공예를 전공한 나지선(36)씨에게 징더전은 작업의 크기를 키워준 도시다.
나씨는 "한국에서는 작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징더전에 와서는 규모가 큰 작업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도자기 수리와 흙·옻칠을 결합한 작업을 하는 권수아(32)씨도 재료의 다양성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의 흙보다 우수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질이 다른 흙과 재료가 다양해 작업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인 도예가들이 공통으로 꼽은 징더전의 강점은 풍부한 재료에 더해 오랜 세월 축적된 전문적인 분업체계다.
징더전도자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0년 넘게 현지에서 연구와 작업 활동을 하는 유시형 후난여자대 디자인학 조교수는 "도자기를 만드는 시스템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로 남아 있는 도시"라고 설명했다.
징더전에서는 흔히 도자 제작에 '72개의 공정'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도자기가 72단계를 거친다는 의미라기보다 흙을 준비하고 형태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입혀 굽는 과정이 그만큼 세분화되고 전문화돼 있다는 의미다.
유 교수는 "흙을 만드는 사람, 성형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유약을 다루는 사람, 가마를 운영하는 사람까지 역할이 세분돼 있다"며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보다 각 분야 전문가와 협업하면서 하나의 도자기를 완성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원료상, 흙 공장, 성형 공방, 유약 전문가, 가마까지 필요한 기능이 가까운 곳에 모여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쉽다.
작가가 모든 기술과 장비를 갖추는 데 힘을 쏟기보다 필요한 기술을 빌리고 협업하면서 작품과 아이디어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인 작가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표 도자도시 경기 이천으로 향했다.
이지민씨는 "이천과 징더전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규모 차이가 너무 크다"면서도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오랫동안 투자해 관광 도시이자 도자기 도시로 만든 점은 부럽다"고 말했다.
나지선씨도 "이천은 징더전처럼 시장과 수요가 크지 않은 한계가 있는 만큼 도시 자체의 특성을 살려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징더전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젊은 작가들이 지역에서 작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천도 이미 좋은 기반을 가진 데다 작가 중심의 작업문화나 개인의 조형성을 중요하게 보는 것은 한국 도자의 큰 장점"이라며 "징더전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필요한 재료와 제작 기술, 가마, 후가공 등을 쉽게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활성화되고 전시와 판매, 물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작가들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징더전의 가마 불은 천년 넘게 이어졌지만, 그 불 앞에 앉은 사람들은 계속 바뀌고 있다.
과거에 황실의 그릇을 만드는 장인들이 이곳으로 향했다면 지금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넓히려는 젊은 예술가들이 찾아온다.
한국의 젊은 도예가들에게도 징더전은 더 이상 중국의 유명 도자기 산지만은 아니다.
새로운 재료를 시험하고 더 큰 작품에 도전하며 떠오른 아이디어를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작업실이 되고 있다.
jk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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