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아라비아반도 남서쪽 끝에 예멘이 있다. 로마인들은 이 땅을 '아라비아 펠릭스(Arabia Felix·풍요로운 아라비아)'라 불렀다. 7세기 이슬람 세계에 편입된 이후 북부 고원엔 시아파의 갈래인 자이드파가, 남부와 해안엔 수니파 샤피이파가 뿌리내렸다. 1960년대 북부엔 공화국이, 남부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1990년 하나가 됐지만 4년 만에 내전이 발생했다. 내전에서 승리한 북예멘 출신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통합에 실패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살레가 권좌에서 물러났고, 그 빈틈을 타고 후티 반군이 세력을 넓혔다.
후티의 정식 명칭은 '안사르 알라(신의 조력자들)'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닿은 북부 사다에서 1990년대 자이드파 부흥 운동으로 출발했다. 후티라는 이름은 지도자 후세인 알후티에서 따왔다. 2004년 후세인이 살레 정부와의 첫 '사다 전쟁'에서 사살되자 동생 압둘말리크가 뒤를 이었다. 이후 2010년까지 다섯 차례 더 싸우며 무장조직으로 성장했다. 2014년엔 수도 사나까지 점령했다. 후티를 이란의 꼭두각시로 보는 통념은 절반만 맞다. 이란은 무기와 훈련, 미사일·드론 기술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후티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 아래 출범한 레바논 헤즈볼라와 달리, 실전 경험과 부족 네트워크를 갖춘 예멘의 자생 세력이다.
후티와 사우디의 악연은 깊다. 2009년 국경에서 총을 겨눴다. 이어 2015년 후티가 사나를 넘어 남부 아덴까지 침범하자 사우디가 아랍 연합군을 이끌고 예멘 내전에 뛰어들었다. 국경 아래 친이란 무장세력이 커지는 것을 위협으로 여긴 것이다. 압도적 공군력이면 금세 끝날 줄 알았지만 오판이었다. 수년간 공습과 봉쇄는 예멘 주민을 지옥으로 내몰았지만, 후티를 꺾지는 못했다. 후티가 미사일과 드론 전력을 키우는 동안 반(反)후티 진영은 갈라졌다. 2022년 유엔 중재 휴전 이후 대규모 교전은 잦아들었지만, 원한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지난 7월 후티가 사우디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했고, 지난 19일에는 수도 리야드의 주요 시설과 석유 시설 등 사우디 본토까지 공격했다고 밝혔다.
후티를 세계에 또다시 각인시킨 것은 홍해다. 2023년 가자전쟁이 발발하자 팔레스타인 지원을 내걸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공격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아덴만과 홍해를 잇는 해상 관문으로, 인도양에서 수에즈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세계 해운의 길목이다. 미·영이 공습에 나섰지만, 후티를 무력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후티는 9월 항구 도시 모카를 점령하는 등 바브엘만데브 일대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마비되자 사우디는 동부 유전의 원유를 송유관으로 홍해 연안 얀부까지 빼내는 우회로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 송유관이 지난 11일 미상의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일시 중단됐고, 후티는 얀부의 석유 시설을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미국에 후티 공격을 요청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개입에 선을 그은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또 하나의 중동전쟁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미국이 후티를 치면 예멘의 수렁을 각오해야 하며, 거래하면 후티의 팽창을 묵인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손을 놓으면 사우디의 불만과 홍해의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예멘 북부의 반군으로 출발한 후티가 이제 중동의 변수가 됐다. 홍해의 다크호스가 중동의 판을 어디까지 흔들지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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