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분투칼럼] 아프리카 물안보, 물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입력 2026-10-08 07:00  

[우분투칼럼] 아프리카 물안보, 물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우분투칼럼] 아프리카 물안보, 물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 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의 물 위기는 단순히 물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강과 호수가 있어도 마실 물이 부족하고, 대형 댐과 정수장이 있어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 가뭄이 닥치면 물이 마르고, 폭우가 쏟아지면 도시는 잠긴다. 수도관이 깔려 있어도 누수와 전력 부족으로 수돗물이 끊긴다. 물은 있는데 쓰지 못하고, 시설은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아프리카가 직면한 위기는 물의 절대량보다 그것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공급하며 오래 관리할 수 있는 능력, 곧 물안보의 문제다.



물이 2026년 아프리카 정치의 중심 의제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프리카연합(AU)은 올해의 주제를 '아젠다 2063 달성을 위한 지속가능한 물 가용성과 안전한 위생 시스템 확보'로 정했다. 물과 위생이 AU 정상회의의 중심 의제로 전면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 2월에는 '아프리카 물 비전 2063과 정책'(Africa Water Vision 2063 and Policy)도 공식 출범했다.
현실은 절박하다. 4억 명이 넘는 아프리카인이 기본적인 식수에 접근하지 못하고, 약 7억 명은 적절한 위생 서비스를 누리지 못한다. 물이 부족하면 농업과 식량이 흔들리고 전력과 산업이 위축된다. 위생과 보건도 악화된다. 생존 기반이 무너지면 강제적 이주는 늘고 물과 토지를 둘러싼 갈등은 커진다. 이제 물은 환경정책의 한 분야가 아니라 보건이고 식량이며 에너지다. 산업과 일자리의 기반이자 국가의 안정과 평화를 좌우하는 정치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물 부족과 물안보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물 부족이 물이 얼마나 있는가를 묻는다면, 물안보는 그 물을 얼마나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가뭄과 홍수 뒤에도 공급할 수 있는가, 누수를 줄일 수 있는가, 주민이 요금을 감당할 수 있는가, 시설을 관리할 기술자와 예산이 있는가까지 포함한다. 시설을 몇 개 지었느냐보다 5년, 10년 뒤에도 제대로 작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 역설을 잘 보여준다. 막대한 수자원과 콩고강을 보유하고 있지만 2025년 조사에서 기본 식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인구는 43%, 기본 위생시설 이용률은 15%에 그쳤다. 분쟁과 피란, 홍수와 급속한 도시화가 겹치면서 식수 위기는 감염병 위기로 이어졌다. 지난해 콜레라는 25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번졌고, 올해는 에볼라까지 확산하고 있다. 강이 있다고 안전한 물이 저절로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물 자체가 부족한 북아프리카는 기술과 관리의 결합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모로코는 2030년까지 식수 수요의 약 60%를 담수화로 충당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담수화도 만능은 아니다.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농도 염수는 해양 생태계에 부담을 준다. 시설이 해안 도시에 집중되면서 내륙과 농촌의 물 접근성은 뒤처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규모가 아니라 지역 여건에 맞게 운영하고 유지할 수 있는 체계다.



사헬 지역과 아프리카의 뿔에서는 물이 곧 생명이다. 우물이 마르면 가축이 죽고, 목축민은 물과 방목지를 찾아 이동한다. 이동 경로가 농경지와 겹치면 갈등이 커지고, 생계의 붕괴는 강제이주와 무장세력의 활동 공간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지역에는 큰 단일 시설보다 비상용 지하수, 소규모 빗물저장시설, 태양광 펌프, 분산형 정수시설을 지역 여건에 맞게 결합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물안보가 곧 인간안보인 이유다.
도시화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부족한 물만이 아니라 오염된 물과 홍수도 위협이다. 가나의 GAMA(그레이터 아크라 광역권·Greater Accra Metropolitan Area) 사업은 식수 공급에만 머물지 않고 화장실과 하수 처리, 위생 개선을 하나의 체계로 묶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61만명 이상이 개선된 위생 서비스의 혜택을 받았고, 66만명 이상에게 깨끗한 물이 공급됐다. 르완다 키갈리가 도시 습지를 복원해 홍수를 줄이고 수질을 개선하는 자연기반해법(NbS)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위적 시설만이 인프라는 아니다. 자연도 잘 설계하면 도시를 지키는 인프라가 된다.
더 복잡한 문제는 물이 국경을 넘는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지표수의 약 90%는 국경을 가로지르고, 인구의 약 40%는 공유 대수층에 의존한다. 나일강은 대표적인 사례다. 에티오피아는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GERD)을 통해 전력 생산과 산업화를 기대하지만, 하류의 이집트에 나일강은 생존 그 자체다. 수단에도 안정적인 방류와 홍수 관리가 중요하다. 결국 누가 물을 더 가져갈 것인가라는 계산만으로는 갈등을 풀기 어렵다.
해법은 물의 분배를 넘어 편익의 공유로 나아가는 데 있다. 가뭄기 공동 방류 원칙을 만들고 수문·기상 데이터를 공유하며, 상류에서 생산한 전력을 하류 국가가 합리적인 가격에 안정적으로 구매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물의 양만이 아니라 전력, 농업 생산성, 홍수 조절에서 생기는 이익까지 함께 나누는 것이다. 공유자원은 공유데이터로, 공유데이터는 공동의 거버넌스로 이어져야 한다.
물·식량·에너지를 따로 다루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잠비아는 전력 생산의 약 80%를 수력에 의존해 왔는데 최근 가뭄은 이 구조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물이 줄자 전력이 부족해졌고 산업과 일상이 함께 흔들렸다. 관개를 늘리면 식량 생산은 늘지만 하류 유량은 줄 수 있고, 태양광 펌프를 무분별하게 보급하면 지하수 고갈을 앞당길 수도 있다. 하나의 해법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물정책은 물·식량·에너지를 하나의 체계로 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핵심은 시설을 더 짓는 데서 지속가능한 운영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데 있다. AU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6', 즉 모두를 위한 물과 위생의 보장과 지속가능한 관리를 달성하려면 매년 수백억 달러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돈만 늘린다고 물안보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설계하고 조정할 제도, 시설을 운영할 전문 인력, 합리적 요금체계, 안정적인 유지보수 예산, 정책을 뒷받침할 데이터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물안보는 시설의 숫자가 아니라 그 시설을 오래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의 힘에 달려 있다.
한국의 대(對)아프리카 협력도 달라져야 한다. 정수장이나 댐을 건설하고 끝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건설ㆍ운영ㆍ유지관리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 지원해야 한다. 북아프리카에는 재생에너지 연계 담수화와 물 재이용, 사헬지역과 아프리카의 뿔에는 지하수와 분산형 시설, 도시화가 진행되는 지역에는 상하수도와 위생·누수 관리, 공유 수계국에는 수문 데이터와 공동 운영체계가 우선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같은 시설을 더 많이'가 아니라 '지역에 맞는 시스템을 더 오래 남기는 협력'이다.
오는 12월 아부다비에서는 세네갈과 아랍에미리트(UAE)가 공동 주최하는 'UN 물 회의'가 열린다. SDG 6 이행을 가속하기 위한 자리다. AU가 올해 물과 위생을 대륙의 최우선 의제로 끌어올린 것도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제 물은 단순한 생존 자원이 아니라 성장과 평화를 만들어내는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물에는 적이 없다'는 나이지리아 속담이 있다. 누구도 물 없이 살 수 없기에 물은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세대만의 자원이 될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자원 시설이 아니라 관리되는 시스템이다. 아프리카의 물안보는 가진 물을 더 잘 연결하고, 오래 관리하며, 공정하게 공유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시설은 지을 수 있어도, 시스템은 함께할 때 만들어진다. 그것이 물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꾸고, 아젠다 2063을 실제로 움직이게 할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성수 교수
현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USC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 '현대아프리카의 이해' 외 다수, 외교부·법무부·한―아프리카재단·재외동포청 등 공공기관 정책 자문위원 및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